“임수정의 양정숙, 우려 했지만 보고 나니 ‘이게 맞구나’ 싶어…
인간에 대한 통찰, 표현 정확했다. ”
영화 ‘이끼’, 드라마 ‘미생’, 그리고 디즈니플러스 ‘파인: 촌뜨기들’(이하 ‘파인’)까지. 윤태호 웹툰의 영상화는 ‘실패’가 없다. 윤태호 작가는 “내 이야기엔 판타지가 없어서”라고 겸손하게 그 이유를 설명했지만, 디테일한 취재를 바탕으로 쓴 탄탄한 작품과 창작자의 의도를 믿어주는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파인’은 1977년, 바닷속에 묻힌 보물선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근면성실 생계형 촌뜨기들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담아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윤 작가가 2014년 연재한 웹툰이 원작으로, 원작의 매력을 고스란히 옮겨 담아 팬들까지 만족시켰다.
2014년의 작품이 지금 다시 세상에 나오는 것에 대해 걱정도 하고, 설렘도 느끼며 ‘파인’의 공개를 기다렸다. 작품 이후 쏟아진 ‘긍정적인’ 반응에 윤 작가 또한 감사함을 느꼈다.
“원작과 같은 부분, 또 다른 부분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해주실지 두근두근했다. 기억에 남는 반응은 정윤호에 대한 반응이다. ‘사투리를 장착하니 연기를 잘한다’, ‘연기력이 강화가 됐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초반에 유노윤호 ‘레슨’ 밈도 많이 나오고, 그가 시청자 반응을 초반에 이끌어주셨다고 생각했다.”
호불호가 갈린 결말에 대해서도 윤 작가는 만족했다. 시즌2를 겨냥해 ‘열린’ 결말로 끝을 맺은 ‘파인’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은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던 것. 그러나 윤 작가는 웹툰과 드라마는 다를 수밖에 없다며 드라마 ‘파인’의 선택을 이해했다.
“제 결말이 썩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제가 가진 허무함이 좀 있다. 이 정도 악인들이라면 셧다운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애초에 시작을 할 때부터 그렇게 끝내야겠다 싶었다. 시리즈물에서는 확실히 많은 부분을 생동감이 있게 키워내신 것 같다. 원작보다 훨씬 읽어낼 것이 많았다. 각자 판단하실 여지가 더 많이 생긴 것 같다. 반응도 검색해 봤을 때 원작보고선 ‘기분이 꿀꿀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었다. 세상을 향해 욕망을 가진 것을 비난받는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모두가 비난받을 필요는 없다.”
배우 류승룡부터 양세종, 김종수, 장광 등 베테랑 배우들의 활약에도 감사를 표했다. 싱크로율을 떠나, 웹툰 속 캐릭터를 더 풍성하게 해석하고 표현해 준 배우들의 노력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로는 임수정을 꼽으며, 원작과는 다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양정숙을 완성한 것에 감탄했다.
“극 중 양정숙은 직업적 편견으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이익에 밝은 사람이고 카랑카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대사를 쓰고 표정을 그렸다. ‘이끼’의 여자 이장님 같은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파인’ 촬영장에 커피차를 가지고 갔었는데, 그때 처음 (임수정이) 연기하는 걸 봤다. 우아하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 제 나름대로는 걱정을 했다. ‘양정숙이 우아한 캐릭터는 아닌데’ 싶었던 거다. 그런데 다 보고 나니까 마땅히 ‘이게 맞구나’ 싶었다. 양정숙이라면 자신의 출신 성분을 지우려고 애썼을 것 같더라. 정말 완벽한 연극을 꿈꿨을 것 같다. 이 시리즈가 훨씬 인간에 대한 통찰, 표현을 더 정확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윤 작가는 ‘파인’을 비롯해 드라마 ‘미생’, 영화 ‘이끼’ 등 자신의 작품이 영상화에 늘 성공하는 것에 대해 “현실적인 이야기라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웹툰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 대신, 현실에 발을 붙인 이야기로 공감을 끌어낸 것이 영화, 드라마 시청자들에게도 닿을 수 있었던 것. 그러나 현실적인 캐릭터를 완성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제 작품에는 판타지가 없다. 기본적으로 설정값이 있는 작품들이 있다. 판타지는 특히 설정값을 높게 두고, 사후 실험을 하는 일이 많은데 제 작품은 기본적으로 땅에 발을 붙이고 있다. 많은 변주가 필요하지 않다. 저는 스토리를 배울 때 플롯을 배운 적이 없다. 최근 3장 구조라는 게 있다는 걸 챗 GPT를 통해 배웠다. 저는 스토리를 쓸 때 인물을 중심에 두고 만든다. 주요 캐릭터를 나이 순서대로 적은 다음에, 그들의 출생 연도부터 시작해 일생기를 모두 적는다. 심야 통금 같은 경우, 이 사람은 실제 경험한 사람, 학생 때 들은 사람, 아버지께 들은 사람으로 구분을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사에 반영이 된다. 실재하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 아이디어 자체가 사실 플롯이더라. 신경을 끄고 있지만, 내재가 돼 있던 건데 그 정도로 캐릭터에 집중한다.”
원작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드라마 ‘파인’을 함께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팀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영상화 과정에서 한 번도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고 말한 윤 작가는, 대신 필요한 설명이나 아이디어는 아낌없이 제공하며 작품의 ‘성공’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번에도 연출자인 강윤성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작품의 특성 때문이라고 영상화의 성공 비결에 대해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렇듯 디테일한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강윤성 감독님과는 원작을 가지고 가시면서 뒤섞은 부분이 있었다. 선후를 바꾸거나, 그런 것에 대해 실례가 아닌지에 대해 물어봐 주셨다. 너무 매너가 좋으셨다. 혹시라도 시즌2가 나올지 모르니, 거기에 대한 아이디어도 이야기했었다. 선자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혹은 삭발을 해야 하는데 어디까지 감당해야 할지 등 영상에서 어느 정도 표현해 줘야 비슷할지에 대해 확인도 해주셨다. 결말 부분에 대해서도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는 지점이 없는지 물어봐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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