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의 역설…은행, 기업대출 늘려야 하는데 건전성 '뒷걸음'

정지수 기자 (jsindex@dailian.co.kr)

입력 2025.08.23 07:41  수정 2025.08.23 12:04

성장과 건전성 '두 마리 토끼' 과제

내준 대출은 줄었지만 부실은 커져

대기업 등 우량 차주 위주 공급할 듯

은행 직원들이 부실 기업대출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데일리안 AI이미지 삽화.

국내 주요 은행들의 기업대출 자산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은행이 기업에 내주는 대출 자체는 감소했지만,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부실여신은 오히려 늘어나면서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기업대출을 늘려야 하는 은행들이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기업대출 중 고정이하여신은 총 3조4857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25.6% 증가했다.


고정이하여신은 금융사가 내준 여신에서 3개월 넘게 연체된 대출을 가리키는 말로, 통상 부실채권으로 분류된다. 금융사들은 대출 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나누는데 이중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묶어 고정이하여신이라 부른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의 기업대출 고정이하여신은 올 상반기 말 기준 1조66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7.2% 늘었고, 신한은행은 8297억원으로 같은 기간 동안 50.0% 증가했다.


하나은행은 22.2% 증가해 7962억원, 우리은행은 37.8% 늘어 7938억원을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은행이 기업에 내준 대출의 총량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들 은행의 기업총여신은 올 상반기 말 기준 847조4568억원으로, 지난해 말 보다 4조960억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전체 기업대출에서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상승했다. 지난해 말 이들 은행의 평균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33%이었는데 6개월 만에 0.41%로 상승했다.


대출 총량은 줄었음에도 부실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진 것은 그만큼 부실의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기업들이 늘어난 탓이다.


기업대출을 늘려 여신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려는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정부가 가계대출 규제는 강화하는 동시에, 자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하기 위해 기업대출 확대는 지속적으로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은행권은 하반기에도 기업대출 영업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로 주택담보대출 등의 성장세가 점차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업금융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업대출 확대 주문이 자칫 부실 폭탄을 은행에 떠안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은행권은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에 두고 '옥석 가리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성장 가능성이 높고 재무구조가 탄탄한 대기업과 우량 중소법인을 중심으로 자금을 선별적으로 공급하며 건전성 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 은행의 성장 전략에 따라 기업대출을 확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부실 위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며 "당분간은 공격적인 확장보다는 안정적인 자산 관리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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