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韓 뮤지컬③] “K-뮤지컬 과도기, 제도적 지원으로 글로벌 발판 마련해야”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7.16 07:30  수정 2025.07.16 07:30

분산된 뮤지컬 지원 체계 한계

K-뮤지컬, 국가 전략 산업으로 도약해야

ⓒ한국뮤지컬협회

한국 뮤지컬 산업은 지금 중요한 과도기에 놓여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성장하며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K-뮤지컬은, K-콘텐츠 열풍의 다음 주역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얻어냈다. 그리고 이 잠재력을 지속적인 글로벌 성과로 실현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창작 뮤지컬은 법적으로 순수 예술로 분류돼 국가의 공적 지원을 받는 대상이지만, 현실은 이러한 분류가 무색할 만큼 지원이 박하다. 대표적인 예로 ‘어쩌면 해피엔딩’이 있다. 이 작품을 처음 무대에 올린 지 10년이나 되었지만, 정부 지원은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외 공동 제작 지원 사업으로 일본 공연을 위해 받은 3억원이 전부였다. 이는 창작 뮤지컬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서 성공을 거둔,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현재 뮤지컬 산업에 대한 정책과 지원은 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다”며 “이러한 산발적인 구조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예술성과 산업성의 경계에 놓여 있는 과도기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뮤지컬 업계에선 K-뮤지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뮤지컬산업진흥법’과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가장 시급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뮤지컬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뮤지컬산업진흥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당시 발의된 법안은 뮤지컬 산업 진흥을 위한 기본 계획 수립과 지원 기구 설립, 전문 인력 양성, 창작 활성화 지원, 해외 진출 지원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본회의까지 가지 못하고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이 발의돼 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브로드웨이 공연 ⓒMatthew Murphy and Evan Zimmerman

영화, 음악, 드라마 등 다른 K-콘텐츠 분야가 이미 관련 산업 진흥법을 통해 국가적 지원을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뮤지컬 산업 역시 안정적인 성장을 위한 법적 근거가 시급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는 “공연을 만드는 일은 평균적으로 5년 이상은 걸리는,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긴 시간 매달려야 하는 일이지만, 창작자에 대한 대우는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훨씬 더 보잘것없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뮤지컬이 장기적으로 산업으로서 성장하고 안정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예측 가능하고 지속적인 국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뮤지컬산업진흥법’이 통과된다면, 현재 분절적으로 이루어지는 창작 지원 사업들이, 보다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고, 해외 시장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및 데이터 구축, 전문 인력 파견 지원 등 실질적인 도움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단순한 예술적 성과를 넘어, 한국 뮤지컬이 강력한 문화 수출 상품이 될 수 있음을 대외적으로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업계에선 이 성과가 그동안 민간 주도의 지원 사업에 주로 의존했던 뮤지컬 창작 생태계에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뮤지컬이 단순한 문화 예술 장르를 넘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산업’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춘수 대표는 “뮤지컬 산업의 진흥을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지원체계는 해당 기관들이 뮤지컬 시장의 실태나 정책 입안에 필요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이며 현 지원체계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정부는 ‘세계 5대 문화 강국 실현’과 ‘K-컬처 시장 300조원 시대’를 내걸면서 업계의 기대를 높였다. 현재 K-컬처 시장 규모는 150조원 수준으로, 300조원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2배가량 성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예술계가 최대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늘려나간다는 계획도 밝혔다. 세부적으로 문화예술 인재 양성, 창작공간과 비용 지원 강화, 인문학 지원 확대 등이 제시됐다.


사실상 개별 작품의 역량과 민간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에 공감하는 취지로 읽힌다. 이에 이재명 정부는 문화콘텐츠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원하겠다면서 ‘단회성 공모사업을 지양하고 콘텐츠 직접 출자·투자, 펀드를 전담하는 공공 기반 투자회사 설립 추진’을 약속했다.


신춘수 대표 역시 “뮤지컬 산업의 진흥과 발전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이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뮤지컬 산업진흥 전담 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전담 기관이 중심이 되어 정책을 기획하고, 현장과 연결된 지원체계를 수립함으로써 뮤지컬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