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기 세종대학교 대우교수 기고
전시작전권, '환수' 아닌 '전환'이라 불러야
우리가 6·25 때 미군에 '부탁'해서 시작
대한민국에 '한도 없는 보장성 보험'과 같아
신정부 출범 이후 한미관계는 물론 국내 문제에 있어 가장 큰 논제로 떠오른 것이 '전시작전권(戰時作戰權) 환수' 문제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강화 정책에 대응해 우리 정부가 통상 협상의 조건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막연하게 정치 논리의 전작권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실체적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환수'가 아닌 '전환'이다. 환수란 용어는 그 자체로서 '빼앗긴 문화재 환수'라는 말처럼 마치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권한을 미군이 강점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이조차 오로지 정치 선동의 일환일 뿐이다. 당초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기간 중인 1950년 7월 14일에 우리 정부가 침략세력과의 심각한 전력 차를 극복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당대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군에게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부탁'함으로서 시작됐다.
물론 16개 유엔군을 주도했던 미군 지휘부에게 있어 몰락 직전의 상태였던 한국군의 지휘권은 그 '상징성' 이외 큰 의미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전투력은 물론 병력과 군사장비에서 미군의 작전을 지원할 만한 역량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당시 국군은 광복군 출신, 일본군 출신, 중국 국민당 군 출신 등 다양한 출신 성분을 가진 이합집산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 뿐더러 사상 검증도 미흡하여 좌익 세력들이 대거 잠입해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적(敵)은 당초 전 세계 공산화를 목표로 소련으로부터 철저한 사상교육과 훈련을 받은 인민군, 일본과의 전투 경험을 가진 팔로군 출신들이라 해방직후 급조된 국군과는 전투력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있었으며 소련의 막대한 무기를 지원받은 상태라 우리가 대응하기에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고 군의 지휘체계는 말할 수 없는 지경에 봉착해 있던 상황이었다.
예를 들어 1950년 11월 말 중공군의 대규모 참전과 대공세 상황 속에서 당시 7사단장과 8사단장은 부대를 버리고 단독 탈출 후 서울에서 체포되기도 했으며 1951년 5월 '현리전투'에서는 3군단장이 부하들을 남긴 채 비행기를 타고 빠져나오기도 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美 제8군사령관이던 '밴 플리트' 장군은 어이없어 하며 전투불능의 3군단을 해체해 버렸다.
한미 간 군사동맹의 상징과 같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체결(1954.11.17. 발효)'했으며 이 조약을 계기로 작전지휘권은 '작전통제권'으로 용어가 변경되었다.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작전통제권은 유엔군사령관에서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이전되었는데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 및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임하고 있어 행정적으로 이전만 되었을 뿐이다. 1994년 12월 1일 작전통제권은 '전시작전권'과 '평시작전권'으로 분리되었으며이중 '평시작전권'은 우리 군이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 수행 경험 및 감시정찰 자산 부족 등 제반 여건의 미흡으로 작전수립계획·연합정보관리·연합위기관리 등 6가지 항목의 '연합권한위임사항(CODA, Combined Delegated Authority)'는 여전히 연합사령관에게 귀속돼 있다. 즉 주요 훈련이나 부대의 이동은 연합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며 이는 곧 화약고와 같은 동북아 지역의 안보 환경을 고려하여 전쟁 발발 방지 및 쿠데타와 같은 돌발적인 군사 행위를 막는 목적도 내포하고 있다.
신정부 출범과 미국의 관세 강화 정책에 맞물린 상황 속에서 곳곳에서 전작권 이양에 대한 불안 목소리가 커지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전작권 환수 문제와 관련해 한미 간 협의가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초 현 대통령이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다 전작권 환수 자체를 공약사항으로 내세웠던 만큼 의심의 눈초리를 여전한 실정이다.
아니나다를까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1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재명 정부 임기 내에 전작권 전환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직후 "시한을 정하는 것은 대통령실 내에 있는 시간은 전혀 아니다"라고 부인했으나, 혼선이 빚어지면서 국민적 의구심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9일 미국 상원군사위원회에서는 '국방수권법안(NDAA)'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여 '주한미군 감축 제한'과 '전작권 전환 금지'를 통과시켰다. 즉 전작권 전환의 문제는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고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사안인 만큼 국민들의 우려처럼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와 통상과 국방이라는 분야는 국가 존속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지닌다. 외교는 국제관계를 지탱하며 통상은 국내 경제를 부흥시키는 원동력이며 국방은 이들을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보험 초창기에 가입한 보험은 해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보상의 범위와 한도가 신규 보험보다 월등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작권은 외교관계 범주의 '동맹'의 한 형태인 한미상호방위조약처럼 참전에 대한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고 적의 전쟁 도발 즉시 '미군의 참전 의무'를 강요한다. 즉 전쟁 당사자가 미국과 미군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차적 증원의 문제만 있을 뿐 주한미군 숫자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전작권이 미군에게 있는 것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 '한도 없는 보장성 보험'과 같은 존재이다. 그 보험의 약관을 중국이나 러시아가 대신해 줄 수도 없으며 그럴 의향도 전혀 없다. 무조건 유리한 약관을 가진 보험을 스스로 해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한치 앞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들이나 할 짓에 불과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더욱 정교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은 '중국 압박 정책'을 기조로 하는 트럼프 행정부에게 세계 5위 수준의 한국과 국군의 가치를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전시작전권은 즉각적으로 세계 1위와 5위의 군대를 지위하는 막대한 권한이다. 이러한 강력한 군대의 작전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군사력 2위 러시아와 북한, 3위 중국과 북한의 연계라는 동북아시아 안보환경 속에서 오히려 미국의 안보를 지켜 줄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방위분담금이라는 아주 협소한 문제로 인해 '외형적'으로는 미군이 무조건적으로 국군을 도와주는 형태이나 실질적으로는 미국에게 있어 동북아 역내에서 '군사적 공백'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바로 한국과 국군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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