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청, 매개체 감시·방제 5개년 계획 수립
AI 기반 실시간 감시·방제 정보 통합 추진
해외유입·신종병원체 대비한 선제적 대응 강화
최근 세계는 급변하는 물결 속에 다양한 생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등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중립, 디지털 첨단 기술을 접목한 4차 산업혁명 등 저마다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 역시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 중입니다.
데일리안이 기획한 [D:로그인]은 정부와 공공기관 신사업을 조명하고 이를 통한 한국경제 선순환을 끌어내고자 마련했습니다.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 거치는 [로그인]처럼 이들 신산업이 한국경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조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기온 상승과 강수량 변화, 도시화에 따른 생태계 교란은 매개체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전염병 역시 점차 일상 속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국내 평균기온은 1.4도 상승했다. 이로 인해 일본뇌염 주의보 발령 시기는 16일 빨라졌고 진드기 매개 감염병인 쯔쯔가무시증의 주된 매개체인 활순털진드기 역시 그 분포 지역이 남부를 넘어 전국으로 확대됐다. 국내 토착병뿐 아니라 해외유입 감염병도 늘고 있다.
뎅기열, 오즈바이러스, 오로푸치열 등 해외 신종·변종 감염병이 공항·항만을 통해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기존처럼 유행 발생 후 뒤따라 조치하는 방식으로는 국민 건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방역 강화로는 대응할 수 없는 구조적 위기를 드러낸다. 기존 매개체 대응체계는 화학약제에 의존한 일률적 방제, 수동적 감시에 머무르고 있었다. 또 감시와 방제가 연계되지 않은 채 매개체의 생태 변화나 해외유입 병원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체계도 미흡했다.
질병관리청이 내놓은 ‘감염병 매개체 감시·방제 중장기계획(2025~2029)’은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출발했다. 기후변화와 감염병 시대에 걸맞은 국가 차원의 선제적 대응체계를 갖추기 위한 정책적 전환 선언이기도 하다.
계획은 AI와 IoT 기반의 실시간 감시, 감시-방제 연계, 친환경 종합방제, 시민 참여형 모델 등 기존 방식과는 결이 다른 새로운 방역 전략을 제시한다. 감염병 발생 이후의 조치가 아니라 감염병 전파 이전 단계인 매개체 수준에서 위협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팬데믹 이후 한층 더 높아진 국민의 보건안전 요구에 대한 제도적 응답이자 기후위기 시대에 감염병 대응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조치로 풀이된다.
30개 이상 권역 감시망…AI로 실시간 분석
정부는 기존 16개 권역으로 운영되던 매개체 감시 거점을 2029년까지 30개 이상으로 늘리고 인공지능(AI) 기반 자동분석 장비를 활용한 ‘스마트 감시체계’를 구축한다.
AI-DMS(모기 자동분류 장비)와 밀도 자동 계측장비(DMS)는 현장에서 포집된 모기를 실시간으로 분류해 하루 이내에 분석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기존 수작업 감시 방식에 비해 속도는 10분의 1로 단축되며, 분석 정확도는 약 95%에 달한다.
스마트 감시 장비는 단순히 속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존에는 채집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약 일주일 이상 소요됐으나 이제는 신속한 방역 의사결정과 대응이 가능해진다. 질병청은 AI-DMS 장비를 국내 감시망뿐 아니라 해외 협력국가로도 확대 도입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과 공동 감시 및 정보 공유 체계를 갖춰 국제 감염병 차단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항만·공항 중심 집중감시…‘원헬스’ 기반으로 확장
질병청은 해외 병원체 유입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제주를 비롯한 기후취약지역과 항만·공항 등에 ‘집중감시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특히 아열대성 모기인 이집트숲모기, 열대집모기 등 국내 유입 가능성이 높은 종에 대한 실시간 탐지가 핵심이다.
이와 함께 인간·동물·환경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원헬스(One Health)’ 기반 감시체계를 도입한다.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농진청 등 관계부처와 협력해 고공 포집기 공동활용과 감염병 연계 분석을 수행할 예정이다.
질병청은 일본, 브라질 등에서 보고된 오즈바이러스, 오로푸치열 같은 신종 병원체의 국내 유입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일부는 진드기나 등에모기 등 기존 국내 감시망 밖에 있는 매개체가 감염 경로가 될 수 있어 전통적인 감시 방식에서 벗어나 생태적 감수성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감시 포인트를 확대하고 있다.
감시·방제 일원화…“데이터 기반 맞춤형 방제로 전환”
이번 로드맵은 감시와 방제를 단절된 업무가 아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것을 지향한다. 그 핵심은 ‘근거 중심 방제’다.
질병청은 2029년까지 전체 방제의 50% 이상을 감시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감시정보는 방제지리정보시스템(GIS)에 기록돼 방제의 시기·대상을 정밀하게 조정하고 결과는 데이터로 추적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방제 방식은 과학적 효율성뿐 아니라 예산 절감 효과도 크다. 방제를 해야 할 시점과 장소를 정확히 파악해 자원을 집중 투입할 수 있으며, 방제 약제의 무분별한 사용도 줄일 수 있다. 질병청은 향후 해당 시스템을 기반으로 방제 성과와 주민 민원 데이터까지 연계해 종합적 평가 체계를 운영할 방침이다.
생태 맞춤형 방제로 환경오염 최소화
그동안 방제는 성충 모기를 대상으로 화학약제를 일괄 살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환경오염 우려와 내성 증가 문제를 야기해왔다. 실제로 2024년 기준 국내 방제 예산 중 약 68%가 성충 화학제에 집중돼 있다.
이에 질병청은 물리적·생물학적 방제 방식이 결합된 ‘한국형 종합방제(IVM)’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대표적 사례로는 유충 서식지 제거, 기피제 사용, 친환경 약제 활용 등이 있다. 유충 중심 방제로 감염병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고 시민 불편과 예산 낭비도 줄일 수 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나아가 질병청은 방제 효과 평가 체계도 도입한다. AI 기반 감시 장비와 함께 수집된 데이터는 방제 전후 매개체 밀도 변화를 비교해 방제 효과를 수치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하며, 장기적으로는 특정 방제 기술의 적정성과 친환경성까지 평가해 표준화된 모델로 정립할 계획이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제도 확대
감염병 매개체 대응에 있어 지역사회의 역할도 강화된다. 질병청은 시민이 모기 발생지나 진드기 서식 정보를 직접 신고하고 이를 방제조치에 연계하는 ‘시민참여형 방제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식은 감시 사각지대를 줄이고, 방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질병청은 “국민이 실생활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모바일 앱 등을 통한 간편신고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참여형 방제는 공동체 기반 감염병 대응 체계 구축의 시작으로 평가된다. 단순히 신고만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역 수칙 안내, 지역 방역의 우선순위 조정 등도 가능하게 해 자발적 방역 참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감염병 예방, 일상 속 실천과 정책 전환 동시에
예방 수칙도 다시 강조된다. 모기 매개 감염병으로는 일본뇌염,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바이러스감염증 등이 있다. 이 중 일본뇌염과 말라리아는 국내에서 상시 발생 중이다. 진드기 매개 감염병은 SFTS(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쯔쯔가무시증, 라임병 등이 있다.
모기를 피하기 위해선 물이 고인 곳을 제거하고 방충망 관리와 긴 옷 착용, 기피제 사용이 권장된다. 야외 활동 시 진드기를 피하려면 풀밭에 직접 앉지 말고 활동 후엔 몸과 반려동물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일본뇌염과 황열 같은 일부 감염병은 예방접종이 가능하며, 말라리아 위험지역 방문 전에는 예방약 복용도 권장된다.
질병청은 이번 중장기 계획이 ‘감염병 전파의 사전 차단’을 목표로 한다고 강조했다. 감염병 유행이 발생하기 전, 매개체 단계에서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방제까지 연계하는 일련의 시스템을 통해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이제는 발병 이후의 치료가 아닌, 감염 전 단계에서의 차단이 국가 방역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셈이다. 질병청은 앞으로도 첨단 기술과 지역사회 연계를 통해 스마트 감시·방제 체계를 정착시키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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