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안 될 거라던 ‘어쩌면 해피엔딩’, 한국적 감성이 성공 비결” [D:현장]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6.24 17:57  수정 2025.06.24 18:04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박천휴 작가 기자간담회

ⓒNHN링크

“처음엔 브로드웨이에서 작품이 안 된다는 말이 많았어요. 로봇이 주인공인, 거기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을 누가 보러 오겠냐는 얘기였어요. 하지만 오히려 이런 설정이 현지 관객들에겐 참신함으로 느껴졌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인 토니어워즈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6관왕 신화를 쓴 박천휴 작가는 24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커뮤니티 마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브로드웨이 공연이 성공한 이유를 설명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근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박천휴, 윌 애런슨 두 창작자가 공동 작업한 이 작품은 2014년 구상을 시작으로 2015년 트라이아웃 공연, 2016년 국내 초연을 거쳐 2024년까지 총 다섯 시즌 공연되면서 탄탄한 마니아층을 쌓았다.


영어 버전인 ‘Maybe Happy Ending’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작품의 구상 초기부터 현지화를 염두에 두고 접근한 윌휴 콤비의 오랜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지화에 맞게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결과 한국을 배경으로 한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반딧불이(Fireflies)’로 불리는 팬덤이 형성되었고,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흥행 궤도에 올랐다.


박 작가는 “한국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은 마니아 관객, 회전문 관객 등 재관람율이 높은 편이다. 한국만 그런 줄 알았는데 브로드웨이에서도 재관람율이 높은 편이라고 들었다”면서 “비슷한 면이 많은데 팬들이 팬덤명을 직접 만들었다는 점이다. 관객들 스스로를 한국에선 ‘헬퍼봇’, 브로드웨이에선 ‘반딧불이’라고 부른다. 또 (한국과 브로드웨이 모두) 같은 포인트에서 웃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눈물 흘려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토니상 수상의 원동력으로 한국 관객들의 힘을 꼽았다. 그는 “평소대로라면 브로드웨이 공연을 올리면서 대본이나 설정 등을 바꾸자고 하면 바꿨을 텐데, 한국에서 공감해주신 관객들을 만난 경험들이 쌓여있어서 고집을 부릴 수 있었다”고 한국 관객에 대한 고마움을 내비쳤다.


한국인 최초의 토니상 수상자 타이틀은 박 작가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는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초라한 뉴욕 집 식탁에 올려놓은 트로피를 아침 식사를 하면서 봤는데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 무게만큼 더 열심히하는 창작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다행히 윌 애런슨이라는 좋은 파트너가 있다. 늘 하던대로 (부담감에) 매몰되지 않고 서로 보완해가며 작품을 쓸 것”이라고 했다.


ⓒNHN링크

2026년 1월까지 확정된 브로드웨이 공연의 현재 티켓 가격은 최고 499달러(한화 약 68만원)에 달한다. 2026년 북미 투어까지 예고하고 있어 앞으로의 흥행 기록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뮤지컬이 토니상을 수상하고, 세계를 누비면서 ‘케이-뮤지컬’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다.


박 작가는 “케이팝이 명사화된 것과는 달리 아직 ‘케이 뮤지컬’이라는 용어가 전세계적으로 쓰이진 않지만, 극장에 가면 관객들이 ‘이 뮤지컬은 한국 뮤지컬’이라고 말해줄 때 굉장히 뿌듯하다. 배우들도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면서 “‘한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서 세계 관객들이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 같아서 이 정도면 ‘케이 뮤지컬’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뉴욕에서 활동해 본 창작자로서, 사실 한국처럼 창작 지원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며 “다만 로열티 등 창작자에 대한 처우가 조금 더 보완됐으면 한다. 또 ‘어쩌면 해피엔딩’이 브로드웨이 뿐 아니라 뉴욕의 다른 도시에서 공연하고 연계 프로그램들을 거쳤던 것처럼 한국도 서울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으로 가서 디벨롭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거나, 제작자들이 고민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박 작가는 10주년 기념 공연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공연은 10월 30일부터 2026년 1월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그는 “대본이 바뀌는 건 없다. 10년째 하고 있는 이 공연이 브로드웨이에서 호응을 얻었다고 해서, 브로드웨이 버전처럼 바꾸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 정서와 감수성을 지키면서 한국 관객을 만날 생각에 굉장히 설렌다”고 말했다.


애초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출발한 뮤지컬을 브로드웨이 1000석 이상의 대형 극장으로 옮겼기 때문에 브로드웨이 버전의 무대는 더 크고 화려해졌고, 오케스트라의 숫자도 늘어났다. 또 한국 버전에선 암시적으로 표현됐던 장면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추가하고, 반대로 일부 대사와 넘버는 과감히 축약하거나 생략했다.


간담회에 함께 자리한 투자·제작사 NHN링크 한경숙 프로듀서는 “브로드웨이 공연 무대는 한국 버전과 달리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이에 걸맞은 극장을 찾는 것이 숙제지만, 2028년을 목표로 현재 브로드웨이 버전을 한국에서 선보이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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