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中 지원받아 중국센터 설립통해 국제적 위상 제고
제재대상 신장兵團 인사 초청해 공중보건 관련 교육 제공
중국과 긴밀한 유대 관계가 오히려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
美, 中 하버드 ‘조종’해 첨단기술 접근·안보법률 우회 판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하버드대를 정조준해 연방정부 보조금 지원 중단에 이어 외국인 유학생 등록을 받지 못하게 하는 등 연일 공격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그 근저에는 반(反)이스라엘(親팔레스타인)주의에 못지 않게 하버드대의 ‘친중 행보’에도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중국이 하버드대를 ‘조종’해 미국의 첨단기술에 접근하고 미국의 안보 법률을 우회해 중국에 대한 비판을 완충하고 있다고 우려한다는 것이다.
미 하버드대가 오랫동안 자산으로 삼아 온 중국과의 긴밀한 유대관계는 ‘트럼프 2.0 시대’에 되레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지난 23일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가 ‘친중 성향’이 매우 강하며 중국 공산당을 배후로 삼은 ‘소프트파워(soft power·연성권력) 공작’이 이 대학 캠퍼스에 시나브로 만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하버드대는 너무나 오랫동안 중국 공산당이 하버드대를 이용하도록 내버려뒀다"며 "공산당의 지령으로 캠퍼스에서 자경단(自警團)이 (조직적) 괴롭힘을 벌이는 데도 (하버드대는) 이를 못 본 척했다"고 비판했다. 하버드대는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즉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하버드대는 중국 대학 및 연구기관들과 협력하며 중국센터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기부금 유치 및 국제적 위상을 확보해 왔다. 하버드대가 2014년 홍콩의 항룽(恒隆)그룹으로부터 3억 5000만 달러(약 4817억 4000만원)를 기부받고 보건대학원 이름을 ‘하버드 T H Chan(陳曾熙·항룽그룹 창업자) 보건대학원’으로 바꾼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금 3억 5000만 달러를 주선한 그의 아들 로니 찬(陳啓宗)은 중·미교류재단(CUSEF)의 이사라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이 단체는 미국에서 외국정부 대리인으로 분류돼 로비활동시 별도 등록이 필요하다. 미국의 국제 인권감시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 왕야추(王亞秋) 연구원은 “중국 당국의 억압과 감시문제는 실제로 심각하다”면서도 “이를 빌미로 외국 유학생 전체를 배제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특히 하버드대에는 1928년 설립돼 중국학을 주로 연구해온 옌칭(燕京)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도 있다. 그동안 중국 등 아시아에서 받아들인 연구진이 2000명이 넘을 정도로 중국과의 유대가 깊다. 하버드대(2024∼2025학년도 기준)에 따르면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은 6793여명으로 전체 학생의 27.2% 수준이다. 이중 중국인 유학생은 20%에 달한다.
미 정부는 지난 2020년 신장(新疆)위구르족과 무슬림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침해 혐의로 준(準)군사조직인 신장생산건설병단을 제재명단에 올렸는 데도 하버드대는 이에 아랑곳없이 이 병단의 인사들을 초청해 공중보건 관련 교육을 제공하는 등 이들의 연수를 지난해까지 허용했다고 맹비난했다.
하버드대는 중국 최고 지도부의 자녀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외동딸인 시밍쩌(習明澤·33)를 비롯해 국 8대 혁명원로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손자이자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당서기(정치국위원)의 아들인 보과과(薄瓜瓜·38) 등이 유명하다.
중국 최고 권력자 자녀들이 하버드대 인맥의 중심에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중국 정계에서는 한때 하버드대가 유학생 학부모 모임을 열면 중국 정치국 회의가 연기된다는 ‘조크’까지 유행했을 정도다.
2009년 8월 저장(浙江)대 외국어학원 동시통역학과에 입학한 시밍쩌는 이듬해 2010년 5월 하버드대로 유학해 2014년 학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추천’(楚晨)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으며 조용하고 겸손한 태도를 견지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릴 때 영국 유학을 떠난 보과과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과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캐나다에 정착했다. 그는 철없는 망나니 아들로 유명하다. 12살 때부터 영국에서 가장 비싼 사립학교 중 하나인 해로스쿨을 다녔고, 옥스퍼드대와 하버드대 유학시절엔 호화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는 아버지의 ‘물주’로부터 전용기를 제공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보과과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23일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 “인재는 한 나라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며 “해외 유학생에게 슬픈 소식이며, 미국인도 결국 아픔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 남는 유학생은 미국인을 위한 순 자산을 만들어낼 것이고, 귀국하는 유학생은 미국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미국 소프트파워의 기반은 할리우드가 아닌 강의실”이라고 역설했다.
중국은 국가정책 차원에서 하버드대 인재를 영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과의 관세전쟁과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최고급 두뇌 유치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노 과학자인 찰스 리버(66) 전 하버드대 화학·생물학과장이 명문 칭화(淸華)대 교수진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버 교수는 돈을 받고받고 중국 정부의 인재 영입을 도우며 이를 숨긴 혐의가 드러나 2023년 4월 미 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인물이다. 당시 그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이공대와 계약을 맺고 월 5만 달러와 연간 15만 달러의 생활비, 연구소 설립비 150만 달러 등을 지원받은 혐의를 받았다.
미 보스턴 글로브에 따르면 리버 교수는 칭화대의 선전(深圳) 국제대학원에서 ‘최고 교수 직급’(highest faculty rank)을 가진 교수로 직무를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환영식에서 리버 교수는 “선전의 역동성과 혁신 정신은 이곳에서 글로벌 과학 허브를 공동으로 만들어내겠다는 나의 비전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말했다.
하버드대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생 단체들이 학내 정치활동을 감시하고 있다는 논란도 있다. 지난해 4월 셰펑(謝峰) 주미 중국대사의 연설에 항의하던 하버드대 학생운동가가 중국인 교환학생에게 물리적으로 쫓겨난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 의회는 "베이징과 연계된 학생회가 교내 정치활동을 감시해왔다"고 우려했다.
깊은 유대관계(?)를 맺은 덕분에 하버드대 총장은 중국에서 정상급 환대를 받는다. 드루 길핀 파우스트 전 총장(2015년 3월)과 로렌스 바카우 전 총장(2019년 3월)은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시 주석과 만났을 때 대등한 좌석배치 의전을 받았다. 시 주석은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중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2017 5월 방중한 이해찬 특사와도 마주앉는 자리가 아니라 홀로 상석에 앉아, 한국 내에서 한 국가의 정상이 보낸 특사에 대한 ‘홀대 논란’을 낳았다.
중국은 한술 더 떠 홍콩과 마카오를 통해 등록 거부된 하버드대 유학생 인재 유치에도 나섰다. 홍콩과학기술대(HKUST)는 하버드대 재학생 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무조건 합격과 간소화한 입학절차, 학업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마카오 교육청소년개발국은 하버드에 재학중인 중국인 학생들에게 직접 연락해 상당과 지원을 제공하며, 마카오내 대학으로의 편입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하버드대와의 ‘유착설’에 강하게 반발했다. 마오닝(毛寧)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중국은 일관되게 교육 협력의 정치화에 반대한다”며 “중국 유학생의 정당하고 합법적 권익을 굳게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가 제재 대상인 신장건설병단에 연수프로그램을 제공한 데에 대해선 “중국에 대한 공격과 먹칠에 반대한다”며 “미국의 제재는 불법적이며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캠퍼스 내 반유대(친팔레스타인)주의 근절 등을 이유로 교내 정책 변경 및 정부의 학내 인사권 개입 등을 요구했지만, 하버드대가 학문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거부하자 하버드대에 대한 파상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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