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이재명의 정치 명운 결정된다
재판 지연시키기 신공 자랑하더니
피고인의 인기에 구애되지 말아야
내일(1일) 오후 3시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정치적 명운이 결정된다. 대법원이 28일 그의 공직선거법위반사건 상고심 선고 기일을 그렇게 공지했다. 1심에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2심에선 무죄 선고를 받았었다. 내일 대법원은 상고기각, 파기환송, 파기자판 가운데 하나의 판결을 할 것이다.
대법이 선고일을 지정한 날 대장동 위례 백현동 성남FC사건 공판을 마치고 나오던 이 후보는 “(대법원이) 법대로 하겠지요”라고 말했다. 정말! 법대로만 해주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법을 굽히고 비트는 마술만 벌이지 않는다면 국법의 엄중함을 국민이 함께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이 후보 입장에서는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릴 만도 하다. 당내 경선에서 89.77%라는 놀라운 득표력을 과시하며 민주당의 22대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내일 이재명의 정치 명운 결정된다
따라서 대법원이 그에 대한 경선 투표 유권자들의 이 엄청난 지지에 구애됨 없이 소신 판단을 할 수 있을지가 국민 초미의 관심사다. 어느 쪽으로든 대법원이 공정하고 엄정한 판단을 했다고 국민으로부터 인정받게 되면 한국의 권력분립제도는, 적어도 사법부에 관한 한 안정 기반을 확보했다고 믿을 수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엄청난 갈등과 이로 인한 정변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사법부의 건재에 큰 위안을 받으며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그렇다고 사법부의 역할이 늘 긍정적이었다고 보긴 어렵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법원의 판결이 국민의 기대와 희망을 그때마다 구현해냈다고 할 수 없다.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법원과 법관이 정치에 함몰되거나 포획된 양상을 보인 적이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사법부 구성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법원의 이 후보 사건 재판에 대한 이례적인 결정들을 보면서 국민들의 기대가 더 커진다고 여겨진다.
헌정사가 77년에 이르렀지만, 정치는 여전히 미숙 단계에 있다. 진실을 말하자면 ‘미숙’에도 못 미치는 지리멸렬 상태다. 이제 집권당의 지위를 잃은 국민의힘은 그간 두 번이나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당 출신 대통령이 파면당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물론 국민의힘과 그들이 성립시킨 정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 자체가 스스로 타락한 게 더 큰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회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소속의 108명을 뺀 192명이 적대 또는 비판적 정당 소속이거나 무소속이다. 개혁신당 3명은 좌파가 아니라는 점에서 제외하더라도 183명의 적개심 가득 찬 의원들에 포위된 국민의힘이 옴치고 뛸 여지는 전혀 없다. 정당정치의 작동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 국회는 민주당 이 후보의 독무대가 되어왔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과 의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그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국회와 입법과정을 장악했다. 그리고 그 힘을 가지고 정부의 국정운영에 난관을 조성했다.
재판 지연시키기 신공 자랑하더니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사법부에 대해서까지 그 힘이 미치도록 갖은 수법을 다 구사했다. 이 후보는 22년 9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으나 현란한 재판 지연 기법을 발휘함으로써 1심 재판으로만 26개월을 끌었다. 선거법 제270조(선거범의 재판 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에는 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정해져 있지만 법원도 피고인 측도 이에 개의치 않는 행태를 보였다.
그에 대한 1심 판결은 작년 11월 15일에야 났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633 강행규정’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각급 법원에 권고문을 보내고 나서도 2개월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간에 그는 재판 연기, 재판 불출석, 장기간의 단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재판을 지연시켰다. ‘정치재판’ ‘야당탄압’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윤석열 퇴진’ 압박을 벌이기도 했다.
1심 재판을 16개월이나 끌다가 선고도 하지 않고 사표를 내버린 판사도 그의 재판 지연전술을 도왔다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검찰의 주 1회 재판 요청을 외면하고 재판기일을 2주 1회씩 잡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힐 만했다. 어쨌든 재판부가 바뀌고서야 판결이 나왔다.
2심 재판에 임해서도 이 후보 측은 증인 무더기 신청, 자신이 제출한 항소장 접수 통지서 수령 회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등으로 재판의 발목을 잡았다. 그가 지레 겁을 먹은 것과는 달리 2심 재판부는 지난 3월 26일 그에게 무죄를 선고,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 후보는 이와 관련, “진실과 정의에 기반해 판결해 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에게 ‘진실과 정의’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2심법원(서울고법 형사 6-1부)이 선고 이틀만인 3월 28일 소송기록을 대법원에 송부했다. 이후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이유서 등의 제출이 완료됨에 따라 지난 22일 이 사건을 2부에 배당하고 곧바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예상외의 신속한 대응이었다. 전원합의체는 즉시 심리에 착수했고, 이틀 만에 2차 심리를 가지는 등 급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28일, 마침내 선고 기일을 5월 1일 오후 3시로 지정했다.
피고인의 인기에 구애되지 말아야
어떤 쪽으로 판결하든 대통령 선거에 대한 충격을 가능한 한 줄일 수 있는 날을 잡기로 했다고 이해된다. △대선 후보 등록일이 5월 10~11일인 만큼, 후보들과 소속 정당들이 판결 내용을 수용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열흘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선고 날짜를 대선 이후로 늦추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사법부의 정치 예속화를 자인(自認)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통령 불소추 특권’을 들어 재판을 중단시키려고 시도할 상황도 감안했을 법하다.
판결 여하에 따라 정치 상황에 대격변과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그건 순전히 정치권의 책임 몫이다. 사법부와 법관들이 그에 구애(拘礙)되는 순간 3권 분립의 대원칙도 사법부의 독립도 무너지고 만다. 권력의 분립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전제로 성립한다. 어느 쪽에도 종속됨이 없이 서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때 권력분립이 가능해진다. 법률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양심을 팔고 궤변으로 이를 덮으려고 하는 행태를, 법관들은 제발이지 공자(孔子)가 사이비(似而非)를 미워한 것처럼 해주기를 소망한다.
<사족>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덧붙여 둘 게 있다.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선 출마를 결심한듯하다는 언론보도다. 민주당 사람들이 험하게 비난하고 협박하는데 어지간히 쇼크를 받은 모양이다. “이재명은 되고 한덕수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격인데 이처럼 창피를 모르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지금은 격동과 위기의 시대다. 무엇보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우리에게 불안감을 넘어 공포감을 안기고 있다.
다른 모든 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경제리더로서의 탁월한 경륜과 역량을 갖춘 한 대행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고 하는 것은 정치권이 함께 반길 일 아닌가? 민주당은 이미 ‘당의 아버지’ 이 전 대표를 대선 후보로 확정한 상황이니까 경쟁상대에 대해 덕담을 해주는 게 도리다. 아직 경선이 끝나지 않은 국민의힘에선 김문수·한동훈 두 사람 가운데 누군가 후보로 선출될 것이다. 그 후보와 한 대행이 자유우파와 중도 국민들의 응원 속에 벌일 용호상박(龍虎相搏)이 정말이지 기대된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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