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공평 아닌 따뜻한 공정', 남녀 갈등도 따뜻하게 풀어낼 수 있다."
최재천 교수가 '양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정한 사회,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선 '양심'을 발휘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출간된 '양심'은 팀최마존이 제작한 '최재천의 아마존' 300여 편 중 '양심'이라는 키워드와 연관된 7편을 선별,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무삭제 버전의 내용을 글로 새롭게 풀어낸 도서다. 잊힌 '양심'의 의미를 되짚고, 재조명해 보고자 기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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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양심'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최재천 교수는 1996년 방송된 예능 '이경규의 양심냉장고'를 언급하면서 "당시엔 '양심'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쓰였다. '양심에 털 난다'는 말은 아직 생물학적으로 이해가 되진 않지만, 그만큼 그 단어가 많이 쓰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느 순간 양심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있더라"라며 "단어가 사라지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용도가 사라진 경우, 또 다른 경우는 다른 단어로 대체가 되는 것이다. 양심은 대체 단어가 생긴 건 아니다. 억지로 찾아보면 '쪽팔리다' 정도일까. 결국 대체 단어가 생긴 게 아니니 용도 폐기가 된 것인데 안타깝다"라고 안타까운 현실을 짚었다.
최 교수는 '양심'이 공정의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영광스럽게 서울대학교 졸업 축사를 맡게 됐는데 고민 끝에 '양심'을 떠올렸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다시 고민한 끝에 그냥 '양심'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 축사에서 수학 공식을 하나 제안했다. '공평+양심=공정'. 부족한 사람이 누릴 수 있게끔 해주려면 적극적인 양보가 필요하다. 늘 받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양보를 탄압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하신 분이 있다. 누릴 만큼 누리고 사는 사람이 불합리한 일을 당하거나 가지지 못한 자를 떠올릴 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불편한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있다면,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교수에게도 양심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제가 혼이 많이 났다. 과거 4대강 사업 반대를 비롯해 호주제 폐지에 기여한답시고 헌법 재판소에 가서' 자연계에 호주가 있으면 그 호주는 암컷일 거라고 했다가 어르신에게 혼이 나곧 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1년 동안 전화기를 못 쓴 적도 있다.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제가 제법 여러 가지를 했더라. 설명이 잘 안 된다. 숨고 싶고, 또 숨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가 나섰더라. 약간 후회하는 듯싶다가 보면 제가 또 제일 앞에 있는 거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며 감옥에 가는 것 빼곤 어지간한 탄압은 받았다. 그러면서도 가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생각을 해보니 내 마음속 타고 있는 작은 양심이라는 촛불을 끄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얼어 죽을 양심 때문에 번번이 나서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서울대 축사에서 했었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TV를 보다가, '커피 한잔만 덜 마셔도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말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기도 한다고. 그는 포유동물은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며 "어려서부터 그 마음을 잃지 않게 유지시켜줘야 하는데, '그런 거 신경 쓸 때냐. 공부나 하라'는 말을 듣곤 한다. 계속해서 이런 사회 분위기를 끌고 가면 우리 삶은 점점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고 양심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최 교수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양심이 이야기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말하고 싶다. '양심적으로 살아라'라고 말하거나 도덕 교육으로 될 일은 아니다. 적어도 단어가 사라지는 것은 막고 싶었다"라는 바람을 밝혔다.
어지러운 시국, 필요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이어지고 있는데 최 교수는 "꼭 이런 상황을 예견한 건 아니다. 서울대 축사 때부터 이런 화두를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정말 정치인들의 입에서 '양심'이라는 단어가 많이 튀어나오고 있다. 흥미롭다. 그분들 중 어떤 분은 제가 생각하는 양심에 부합하는데, 또 어떤 분은 자격이 없어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긍정적인 일인 것 같다. 제가 생각하는 양심의 기준에 따라 나라일을 하는 분들이 움직인다면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녀 갈등 또한 이 관점에서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대남' '이대녀'의 갈등으로 표현되는 갈등은 아주 철저하게 공평 수준에도 다투는 것 같다. 남자들은 '지는 군대도 안 가면서'라고 외치지 않나. 그런데 굳이 그렇게 공평을 가를 필욘 없다. 모든 남성이 가는 것도 아니다. 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군대에 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방위로 갈 수도 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필요한데,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다. 이 논의는 공평 수준에만 그친다. '유치한 공평이 아니라, 따뜻한 공정'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남녀 갈등 문제를 조금만 따뜻하게 풀어내면 양쪽이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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