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방송된 KBS <해피투게더>의 ‘웃지마 사우나’ 코너에서, 박명수가 유재석의 할아버지가 ‘일본의 앞잡이’라고 농담을 던지자 유재석이 “박명수의 할아버지께서 아주 큰 무역업을 하신 분”이라고 받아치며 “세계적으로 이렇게 큰 무역을 하신 분은 없다.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응수해 폭소가 터져 나왔다.
사실 유재석·박명수의 친일파 개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두 콤비는 2년 전 <무한도전>에서도 서로의 할아버지를 친일파에 빗대어 일본식(창씨개명) 이름이 ‘야마모토’ ‘나카무라’였다고 말하는가하면, 4개월 전 <해피투게더>에서도 “신고정신이 워낙 투철하셔서 독립군을 신고하는데 공을 세웠다”고 수위가 높은 농담을 주고받은 바 있다.
물론 이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웃지마 사우나’는 즉석에서 대본 없이 출연자들의 순발력 있는 애드리브로 꾸며지는 즉석 콩트다. 자연히 때때로 수위 높은 돌출발언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유재석이 코너 말미에 ‘항상 콩트는 콩트일 뿐, 오해하지 마시길’하는 멘트를 복창하며 마무리 짓는다. 유재석과 박명수가 다소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그만큼 서로 친하고 격의 없는 사이이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방송에서 주고받는 발언이라면 좀 더 신중해야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친일파와 관련된 발언은 최근 국민 정서상 민감할 부분인데다, 비록 콩트일지라도 인신 모독적이고 명예훼손적인 요소가 다분하다는 점에서, 과거에도 일부 시청자들은 이를 지적하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유재석·박명수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가족들을 개그의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버릇없는 손자’들에게 졸지에 친일파로 낙인찍혀 웃음거리로 이용당한 조부들은 손자들 같은 개그맨이 아니지 않은가.
이것은 비단 <해피투게더>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이 트렌드가 되면서, MC나 출연자들의 돌출발언이나 비속어, 인신공격적인 요소들이 넘쳐나는 ‘예의 없는 방송’들이 속출하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의 경우, 출연자들의 잦은 막말과 선정적인 진행으로 자주 논란에 오르내리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특성상 김구라-신정환 등 MC들이 거친 입담으로 게스트를 공격하고 중구난방으로 수다를 떠는 콘셉트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황보·신지같은 출연자들도 거침없는 언행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발언이 방송에서 ‘삐~’효과음으로 처리되거나, 상대방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자칫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폭로성 발언들이 속출하기 일쑤다.
이 같은 ‘예의 없는 예능’은 가식 없는 솔직함으로 인하여 대중에게 어필하는 매력도 크지만, 한편으로 문제는 이런 설정이 반복되면서 제작진이나 출연자들이 점차 발언 수위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지고, ‘막말 불감증’에 걸리기 쉽다는 것.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하더라도 최근 방송의 아이템이나 발언의 수위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그러나 즉흥적이고 출연자들의 애드리브에 기대는 요소가 높아지는 것과 비례하여 발언에 대한 신중함이나 책임감은 오히려 점점 떨어지는 듯 하다. 문제성 발언이나 위험한 멘트를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방송하여 노이즈 마케팅을 부채질하는 제작진의 행태도 아쉬움을 남긴다. ‘콩트는 콩트니까’ 무슨 언행을 하건 다 개그로 웃고 넘기라는 것은, 오히려 방송의 품위를 모독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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