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들은 이 나라의 프로레슬링이 사양길로 접어든 시점을 1965년 11월 27일, 김일 선수의 주도로 이루어진 5개국 친선 국제프로레슬링 대회에서 발생한 장영철 선수의 ‘레슬링은 쑈’ 파문 이후로 강조한다.
그 사건은 일본의 오꾸마 선수와의 경기에서 새우꺾기 공격에 처한 장영철의 제자들이 링으로 난입하여 난동을 일으키고, 장영철 선수가 경찰서 조사에서 프로레슬링의 룰을 위반한 오꾸마의 행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룰이 일부 몰지각한 기자들에 의해 일방적인 쑈로 왜곡된 일이었다.
그 사건의 이면은 차치하고 이전까지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로 생각했던 국민들에게 프로레슬링은 잠시 쑈냐 아니냐의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내 국민들은 쑈가 아닌 스포츠의 룰로 인식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보낸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우리 프로레슬링계에 대변동이 일어난다. 즉 이전까지 한국프로레슬링을 주도하던 한국프로레슬링협회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개인 김일 선수의 독주체제가 성립된다.
전후 사정을 들여다보자. 먼저 이전 상황이다.
프로레슬링이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시기인 1965년 6월 일본과 세계무대에서 명성을 날리던 김일 선수가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귀국하고 김일 선수 주도하에 동년 8월 장충체육관에서 제 1회 극동지구 헤비급챔피언 전이라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대규모 대회를 치른다.
그 대회에서 챔피언으로 등극한 김일 선수가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환영행사를 치르며 국내 프로레슬링 선수를 초대하고,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장영철 계 선수들에 의해서 지금은 고인이 된 박송남 선수 구금사건이 발생한다.
2m에 육박하는 신장과 준수한 용모로 한국을 떠나 미국이란 더 큰 물로 진출하기 위한 그가 장영철 선수를 떠나 김일 선수의 휘하로 들어간 일이 그 배경이 된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박송남 선수의 경우만 그러했지만 거의 모든 선수들의 경우 김일 선수의 휘하로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던 터였다. 외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당시 김일 선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장영철 선수와의 의리의 문제로 쉽게 이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분수령이 된 대회가 바로 김일 선수의 주도로 이루어진 5개국 친선 국제프로레슬링 대회였고 김일 선수가 데리고 들어온 오꾸마 선수와 장영철 선수 사이에서 프로레슬링은 쑈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의 일이다.
이후 그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 된 장영철 선수는 프로레슬링 세계에서 조용히 사라지기 시작했고 김일 선수는 욱일승천한다. 사건 발생 바로 다음 달에 정권의 지원으로 지금의 창덕궁(비원) 안에 김일 도장이 세워지고 당시에 활동하던 거의 모든 선수들이 그의 제자로 훈련에 참여한다.
뒤이어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당시로서는 거금인 2억 원을 하사하여 김일 선수의 후원재단까지 설립하도록 배려해주었고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던 박종규 경호실장, 김종필 국무총리 등 막강한 인사들이 그 재단의 회장으로 취임한다.
결국 레슬링은 쑈 사건 이후 협회가 아닌 개인 김일 선수의 독주가 완벽하게 굳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의 프로레슬링은 한동안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던 프로레슬링이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그런 연유로 혹자는 프로레슬링의 몰락의 결정적인 계기를 신군부의 등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참으로 아연한 대목이다. 비록 전두환 대통령이 군 시절 프로레슬링과 관련하여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핀잔을 들은 바 있다는 일설이 있지만, 외형은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 본질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다.
이 부분에서 단체와 개인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싶다. 즉 단체가 아닌 한 개인의 독주가 그들의 괘씸죄에 걸려든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이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 국가를 경영하던 시기에 프로레슬링은 배고픈 국민들에게 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영철학과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 배고픈 단계를 벗어난 시점에 들어 선 신군부, 특히 정상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들어 선 신군부에게 있어 국민들에게 자신들보다 인기를 끌고 있는 한 개인이 있다면 또 그 밑바탕이 국고에 의해 지원된다고 한다면 그들의 시각에 어떻게 보였을까.
아마도 삼척동자라도 훤하게 예견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지금 우리프로레슬링을 살려야한다는 운동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때 우리의 꿈이요 희망이었던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바라며 차후에는 개인의 독주를 경계하고자 잠시 생각에 잠겨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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