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비평 문화②] 대중성에 관계성까지…스스로 눈칫밥 먹는 평론가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3.03.30 14:01  수정 2023.07.04 12:28

좋은 '안목'은 평론가의 필수 덕목

"대중문화 전체 비평은 오만...얕은 수준의 소개 뿐"

비평가에게 있어서 안목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비평할 대상을 선택하는 것부터, 이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평가하는지가 비평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그런데 최근 드라마, 영화, 음악 분야에 있어서 대다수의 평론가들이 이 ‘안목’을 가졌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흥행하는 작품에 대한 단순한 감상문, 홍보를 위한 추천사 등은 결코 비평이 될 수 없는 이유다.


ⓒ픽사베이

대중문화계에서 제대로 된 비평이 사라지는 최우선 이유는 관계성이다. 많은 평론가들이 친분이나 광고를 위해 ‘주례사 평론’을 일삼는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기획사, 제작사의 입맛에 맞춘 홍보성 기사로 의심할 만한 글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특정 가수에 대한 평가를 할 때는 ‘팬덤’의 영향력에도 굴복하는 경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영화 평론가 A씨는 “평론가들이 스스로 눈칫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는 “평론가들의 글이 대중에게 노출될 수 있는 창구가 사라지다 보니 온라인 매체를 통해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매체와 비평 대상 사이의 관계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처지”라고 항변했다.


같은 맥락에서 비평 쓰기를 멈춘 평론가도 있다.


강태규 음악 평론가는 언론에 칼럼을 기재하며 음악 비평을 이어나갔지만, 언제부터인가 글쓰기를 멈췄다. 그는 “아무래도 소속 가수가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못하고 균형감각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 “최대한 무게중심을 잡고 공정하게 쓴다고 하더라도 이미 내 환경이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비평이 사라지는 또 다른 이유로 방대한 정보화 시대로의 변화도 언급된다.


웹진 리드머 편집장인 강일권 평론가는 “대중이 취할 수 있는 정보가 지극히 제한적이던 과거와 달리 약간의 검색만으로도 방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다. 물론 그 정보의 팩트 체크와 질적 판단에 대해선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젠 전문가가 특정 장르 하나만 집중적으로 살펴서 비평하기에도 빠듯한 시대”라고 말했다.


ⓒ오늘도힙합합

그런 와중에 국내에선 음악을 비롯해 영화, 드라마, 예능 등 대중문화를 모두 포괄한 ‘대중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강일권 평론가에 따르면 ‘대중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이 쓰이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는 곧 ‘전문성의 부재’로 이어지고, 전문성 없는 비평은 비평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강일권 평론가는 “대중문화 전체를 비평한다는 건 오만에 가깝다”면서 “실제로 대중문화 평론가라는 직함을 단 이들의 비평을 보면 비평이라고 할 수 없는 얕은 수준의 소개에 그친다. 비평의 수준이 대중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강태규 평론가 역시 “홍보성, 감상문 수준에 그치는 경우는 비평가로서의 자질과 역량 부족이라고 봐야한다.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금방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비평을 하기 위해선 굉장히 논리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강태규 평론가는 “평론가도 일종의 직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안정성을 찾기 힘든 것이 젊은 비평가, 영향력 있는 비평가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로 볼 수 있다”면서 “비평을 해서 본인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전문성이 결여된 평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태규 평론가는 “젊은 비평가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만큼 여러 가지 담론이 펼쳐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면서 “여러 젊은 비평가들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경쟁이 이뤄진다면 주목받는 비평가 그룹이 생겨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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