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사라지는 비평 문화①] 칭찬 일색 ‘주례사 평론’ 판치는 시대


입력 2023.03.29 14:01 수정 2023.03.29 14:01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치열했던 비평 문화의 현주소

칭찬일색 평론·근거 없는 비판...논쟁 힘든 구조

“작가 귄터 그라스가 독일 통일 후 ‘광야’를 발표한다. 독일은 책이 깔리는 날 비평가들의 평이 언론에 일제히 나온다. 사람들이 비평을 보면서 자기 견해를 형성하는 등 건전한 비평이 이어진다. 정말 유명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광야’를 가치 없는 책이라며 찢는 그림이 독일의 슈피겔에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TV 프로에서 토론도 이어지는 등 비평 문화가 있다.” -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유시민 발언 中


ⓒtvN ⓒtvN

예술의 감상자가 작품의 가치 평가를 논하는 비평은 문화예술계에서 중요한 요소다. 이 가치 평가는 단순히 ‘좋고 나쁨’을 담는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근거와 논리를 수반한 설득력 있는 주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해당 분야에 표면적인 특징들을 넘어, 오랜 기간 쌓인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이 동반되어야 한다. 동시에 또다른 생산적 논의를 이끌어 내기도 해야 한다.


국내 비평 문화는 과거 치열했다. 앞서 유시만이 언급했듯이 소설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어떤 콘텐츠가 나오면 비평이 이어졌다. 때론 조용하게 때론 사회적 논쟁으로까지 진행되며 존재감을 보였다. 그런데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치열함은 사라졌다. ‘주례사 평론’ ‘주례사 비평’이라는 말이 나왔다. 새롭게 출발하는 한 가정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찬사 일색인 주례사에 빗대, 작가와 작품에 대해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것에 대한 비아냥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주례사 평론은 여전히 문단의 해결과제로 남았고, 이런 분위기는 비평이 필요한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산됐다.


이성혁 평론가는 젊은 비평가들이 모인 ‘요즘비평포럼’ 당시 “출판사가 어느 작가의 책을 내고, 평론가에게 상찬하는 평론을 부탁한다. 자본과 비평의 합작하는 모습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주례사 비평이란 말이 나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평이라는 것은 비판, 매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잠재성을 끌어올려 비평가가 증폭시키는 것”이며 “주례사 비평은 상업, 권위 등이 비평과 연결되어 있어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런 일이 있으면 비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의 좋은 점을 언급하는 것을 모두 ‘주례사 비평’으로 매도할 순 없다. 작품의 좋은 지점을 짚어주는 비평 역시 평론가들의 역할이다. 다만 좋은 점을 언급할 때는 이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한데, 여기서 말하는 주례사 비평은 ‘좋은 게 좋은 거지’식의 평가로 점철되는 경우다. 과도한 의미부여와 상찬, 그리고 상품 선전과 홍보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비평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나마 문학이나 미술계에서는 이 같은 비평 행태를 비판하고, 건강한 비평 문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의 분야에 있어서는 비평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없는 듯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 영화, 드라마 평론가가 없는 건 아니다. 현재도 이 분야에 많은 평론가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 중에서 비평을 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JTBC ⓒJTBC

힙합 전문 웹진 리드머의 편집장인 강일권 평론가는 대중문화 분야에서 비평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평론가 명함을 단 이들은 많지만 정작 비평을 쓰는 이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비평이 대중에게 보이는 창구도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순간부터 평론가들은 음악 사이트나 일부 매체에서 요구하는 짧은 감상글이나 소개글, 혹은 에세이 정도만 쓰는 분위기가 됐다”면서 “혹자들은 이것 또한 비평의 종류라고 하지만, 그런 말은 자기기만이나 변명처럼 들릴 뿐이다. 비평과 에세이, 소개글은 엄연히 구분된다. 돈이 되지 않아도 꾸준히 써야 하는 사람들이 쓰지 않으니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평이 논쟁을 이끌어내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지경에 와있다. 과거에는 문단이나 영화, 음악 등에 걸쳐 비평가의 글이 대중의 호응을 받거나, 비판을 받으면서 생산적인 논쟁들이 만들어지곤 했다. 건강한 논쟁은 분명 필요하다. 누군가 책을 내면 이를 비판하고, 방어하는 과정에서 토론이 이뤄지고 이는 곧 다른 작가나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칭찬 일색인 평론, 근거 없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논쟁 자체가 만들어지기 힘든 구조다.


2007년 심형래의 영화 ‘디 워’를 두고 벌어진 진중권과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당시 진중권은 이 영화에 대해 “스토리는 형편없고 CG만 보인다” “애국심 호소 마케팅에 의존한 졸작이다”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이후 진중권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 대중의 방어가 이어지면서 ‘소리 없는 혈투’를 방불케 하는 긴 싸움이 이어졌다.


물론 당시 진중권 평론가의 비판 역시 장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고 관련 지식이 충분치 않았다고 보는 시각도 많지만, 적어도 어떤 담론을 형성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이 사건 이후 전문 비평가들에 비해 대중 비평가들에게 힘 쏠림이 있었고, 이후 유튜브나 블로거들의 비평 흐름을 활발하게 만들어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오롯이 작품을 가지고 생산적인 논쟁을 이끌어낸 적이 있는지, 단순히 상업적 이용에 그치지 않는지 다시금 고민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