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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헌법재판소(헌재)가 왜 필요한가


입력 2023.03.27 07:07 수정 2023.03.27 0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과정은 위헌이지만 결과는 유효”

헌법을 압도하는 거대정당의 힘

사법영역까지 파고든 정치논리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모습.ⓒ 연합뉴스

법은 상식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우면 이미 법이 아니다. 그러니까 고도의 법률 지식으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은 ‘국가적·사회적 규율’의 지위를 갖기 어렵다는 뜻이다. 평균적인 국민이 이해 못하는 법이 어떻게 국민 생활을 지배하는 규범이 될 수 있겠는가. 당연히 판결도 상식과 사회적 통념에 벗어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법과 법관을 신뢰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과정은 위헌이지만 결과는 유효”

사회구조와 인간 생활의 양상이 엄청나게 복잡해진 만큼 법과 제도도 극도로 번잡해진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되는 법률과 법관의 판결은 가능한 한 명료해야 한다. 법관이 복잡하고 현란한 논리로 자신의 판단을 합리화하는 식의 판결은 국민적 승인과 신뢰를 받기 어렵다. 오히려 국법질서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불신을 초래할 뿐이다.


사실 법관의 판결은 제도 안에 이미 불신의 소지를 안고 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우리 헌법 제103조 규정이다. 판결은 마땅히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그런데 ‘양심’은 엉뚱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엉뚱하다.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바른말과 행동을 하려는 마음.”


‘양심’의 사전적 의미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대단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의식이라는 데 있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 데로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것인데 으스스하기까지 하다. 법관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판결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헌법은, 우리가 왜 법관의 양심을 진리나 선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답은 주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이야기를 하려다가 서두가 필요 이상으로 장황해졌다. 헌법 재판관 역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법관이다. 헌법재판소법 제4조에 그렇게 명시돼 있다. 그 ‘양심’과 ‘독립’이 해괴한 결정을 낳았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는 점에서 ‘해괴’하다는 것이다.


지난 23일 헌재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 권한쟁의 심판 결정을 내렸다. 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민형배 무소속 의원을 비교섭단체 몫으로 안건조정위원에 선임한 게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해 위헌이다. 2. 국회의 자율성과 정치적 형성권을 존중해 법안의 무효확인 청구는 기각한다. 3.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낸 별도 심판 청구에 대해선 ‘청구인 적격이 없어’ 각하한다.

헌법을 압도하는 거대정당의 힘

입법 절차에서 위헌 행위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후의 과정은 무효가 되는 게 당연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의 양향자 의원이 검수완박 관련 입법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안건조정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 6명으로 구성된다. 제1교섭단체에 속한 조정위원의 수와 이에 속하지 않는 위원 수를 동수로 한다. 그 이유는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 안건’을 심의하기 위해 구성되는 위원회이기 때문이다. 의결 요건은 ‘재적 조정위원 3분의 2 찬성’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이 아닌 법사위원은 무소속의 양향자 의원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검수완박에 반대한다는 ‘입장문’이 카카오톡 등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전파됐다. 이에 역시 법사위원이던 민주당의 민형배 의원이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 박광온 법사위원장(당시)은 그를 포함, 민주당 3, 국민의힘 2, 무소속 1의 안건조정위를 구성했다. 최연장자로서 위원장을 맡은 김진표 의원(현 국회의장)의 주도로 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의 검수완박 관련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안을 곧바로 의결, 법사위 전체회의에 넘겼다. 법사위 소위부터 국회 본회의까지 각 단계별 소요 시간의 합이 단지 34분이었다. 말 그대로 전광석화였다.


민주당 민 의원은 최장 90일까지 심의할 수 있는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탈당해 무소속이 됐고, 박 법사위원장은 그를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했다. 헌재의 결정에 따르면 이것이 위헌이었다. 그런데 헌재는 ‘국회의 자율성과 정치적 형성권을 존중해 법안의 무효확인 청구는 기각’했다. 입법이 원인무효가 됐는데 그 결과물인 개정 법률은 유효하다는 황당한 결론을 ‘헌법수호’의 최고 기관인 헌재가 내린 것이다.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이 민주법치주의는 절차의 정당성·합법성 위에 성립한다. 위법의 과정을 통해 합법의 결과가 도출될 수는 없다. 이 모순을 헌재가 황당한 논리로 국민 앞에 내밀었다. 국회의 자율성·형성권을 핑계로 삼았는데 이는 국회가 헌법 위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국회’를 존중해서 그런 엉터리 결정을 한 것은 아닐 터이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공룡 정당의 이익에 최대한 부합하는 결론을 내리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사법영역까지 파고든 정치논리

헌재에서 ‘검수완박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시킨 재판관 5명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국회의 다수 정당이 헌법과 국회법의 조문 및 취지를 위배하는 방식으로 입법을 하더라도 일단 본회의를 통과하면 그 법을 무효화시킬 수 없다고 선언했다. 대의민주정치의 근간을 부정한 것이다. 민주헌정의 안정성 확보를 책임지고 있는 기관의 자기 배신이기도 하다.


한 법무장관의 권한쟁의 심판 청구에 대해서도 그 5명의 재판관이 각하 결정을 내렸다. 법리에 따른 판단이었다기보다는 이념 정향 혹은 정치적 입장에 따른 판단이었다고 여겨진다. 헌재는 구조적으로 정치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편먹기’ 행태에는 멀미가 날 지경이다.


이런 헌재를 왜 두는지 모르겠다. 정치적 대립과 투쟁은 정당들만으로 충분하다. 굳이 그 싸움을 사법의 영역에까지 끌어넣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헌재 책임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헌재 발(發) 정쟁은 현실이다. 꼼수탈당 민 의원과 민주당은 대단한 전과라도 올린 양, 당 복귀를 추진한다고 들린다. 게다가 한 장관에 대해서는 ‘탄핵’을 운위하기까지 한다. 거대 정당이 못할 게 뭐 있느냐는 투다. 기고만장도 유분수지!


헌법과 헌정의 권위‧신뢰를 지켜내기는커녕 되레 훼손하는 헌재는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탈법‧위법적 입법행태를 자랑하는 정당도 존재의 명분과 이유가 희박하다. 임기 중 마지막 국무회의의 개의 시간을 늦춰가면서까지 국회통과 법안을 기다려 서명·공포한, 그때의 대통령도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사람들이나 세력을 믿고 살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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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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