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 위해 법안·보조금으로 기업 투자 유치 '속도전'
소득세 감면 및 반도체 인프라 구축에 전방위 지원…유럽·일본·대만도 '경쟁'
韓은 이제야 반도체법 공감대 형성…"치킨게임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 지원 늘려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AP/뉴시스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 확보를 위한 각국의 움직임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막강한 보조금 및 세제혜택을 무기로 다국적 기업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연방정부가 '반도체지원법'을 내세워 주요 제조사들에게 어필하면, 각 주정부에서 각종 명목의 다양한 세액공제·인프라 지원을 더해 실질적인 공장 유치를 끌어내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협업플레이'로 속속 성과를 내는 것과 달리 한국은 정부 법안조차 국회에 막혀 있는 실정이라 반도체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반도체, 전기차 공급망 강화를 위한 각종 법안들을 쏟아낸 이후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투자 쏠림이 가속화되고 있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8월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반도체 시설 투자 인센티브(390억 달러)를 포함해 약 527억 달러(약 69조원)의 재정지원과 투자세액공제 25%를 담고 있다. 막강한 보조금 및 세제혜택을 부여해 반도체 제조 기반을 내재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연방정부가 '반도체지원법'으로 주요 제조사들의 투자를 끌어내고 있다면, 각 주정부들은 파격적인 세제혜택으로 자기 지역 '기업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오하이오주의 경우, 인텔의 반도체 투자에 많게는 2조원 규모의 세제혜택을 부여했다. 현재 인텔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에 2개의 첨단 반도체 생산공장(팹)을 건설 중이다. 투자금액은 200억 달러(약 26조원)로, 장기적으로 총 1000억 달러(8개)를 투자할 예정이다.
이에 오하이오 주정부는 인텔의 소득세 면제 기간을 기존 15년에서 30년으로 늘렸다. 이로써 인텔은 연간 3000만 달러, 30년간 총 15억 달러(약 2조원)의 세금이 공제된다.
대만 파운드리업체인 TSMC는 반도체 공장 건설로 애리조나주로부터 2억 500만 달러를 지원받는다. 반도체 공장 용수 공급도 보장받는다. 이를 위해 애리조나주 피닉스 시의회는 인도 구축, 수자원 인프라 시설, 폐수 처리시스템 등 인프라 건축 지원 등을 승인했다.
이 같은 지원에 힘입어 TSMC는 지난해 말 애리조나주에 대한 반도체 투자 규모를 기존 보다 3배 늘리겠다고 했다. 투자 규모는 기존 12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약 52조원)으로 증가했다. 늘어난 투자에 발 맞춰 주정부의 각종 지원 범위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인텔 본사 앞에 있는 로고.(자료사진)ⓒ로이터/연합
텍사스주는 삼성전자의 신규 팹 신설에 총 10억 달러(1조 3000억원) 규모의 재산세를 감면할 방침이다.
테사스주 테일러시에 세워지는 삼성전자 신규 팹은 내년 가동을 목표한다. 이 곳에서는 5G, 인공지능(AI), 고성능 컴퓨팅(HPC) 등 첨단 반도체가 생산된다. 투자 규모는 170억 달러로 장비구매에 110억 달러, 부동산 개발에 60억 달러가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텍사스주는 삼성이 처음 10년간 납부한 재산세의 90%를 환급하고 이후 10년 동안에는 85%를 감면해주는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시정부도 최대 10년간 부동산 및 유형 재산의 가치 상승분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면세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
뉴욕주는 D램 제조사 마이크론이 뉴욕주 북부 지역인 클레이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55억달러(약 7조8000억원) 규모 지원금을 지원키로 했다. 클레이 신공장 건설로 마이크론은 자사와 협력사 등을 합쳐 총 4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각국의 내로라 하는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확정하면서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힘을 합쳐 '통 큰'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을 장악할 때까지는 이 같은 명목의 대규모 보조금·세제혜택을 살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은 대규모 지원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어 투자 기업들의 고민이 작지 않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주요 반도체 생산 제품과 생산량, 주요 고객과 더불어 생산 장비와 원료명을 기재해야 하며 또 미국이 원하면 반도체 생산·연구시설까지 공개해야 한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삼성전자 제2 파운드리 공장 부지.ⓒ삼성전자
"반도체는 못참지" EU·일본·대만 등도 보조금 전쟁 참전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 싸움은 미국, 중국 뿐 아니라 유럽연합, 대만, 일본으로 확산되고 있다.
EU는 지난해 말 2030년까지 430억 유로(약 59조원)를 지원하는 반도체법에 합의했다. 대만도 연구개발(R&D) 투자에 25%를, 시설 투자에 5%의 세액을 공제하는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자국 기업 8곳이 주축이 된 '라피더스'에 정부가 700억 엔을 투자한다.
반도체 패권 다툼 속 각국이 조 단위 보조금 혜택으로 '기업 모시기'에 성과를 내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아직도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현 수준 보다 상향하는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여야 이견으로 아직까지 표류중이다. 다만 업계는 반도체 역량 강화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진 만큼 조만간 합의를 이룰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표류중인 반도체법을 하루 빨리 통과시키는 한편 해외 투자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민·관이 긴밀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첨단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 잇따른 팹 설립으로 벌어질 반도체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을 전략을 짜야한다고도 강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각국의 지원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과감한 지원과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한국 반도체가 해외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산업·외교측면에서도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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