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정치적 올바름①] 디즈니·넷플릭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겠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3.02.22 08:08  수정 2023.02.22 08:09

콘텐츠 창작의 필수된 PC

"이 프로그램은 사람이나 문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학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53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팬'은 원주민을 '레드 스킨'이라며 비하하는 내용이 담겨있어 원주민의 문화를 조롱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OTT 디즈니플러스는 ‘피터팬’ 론칭 당시 7세 이하의 어린이를 위한 동영상 콘텐츠를 메뉴에서 삭제하고 이 같은 경고문을 띄웠다.


남부 농장의 흑인 노예를 조롱한 1941년 작품 '아기 코끼리 덤보'와 아시안 고양이가 눈이 찢어진 채 등장한 1970년 '아리스토캣', 해적을 노란색과 갈색의 얼굴을 가진 야만인으로 표현한 실사 영화인 1960년 작품 '로빈슨 가족'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용인됐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표현이 된 것이다.


이는 인종·성·성적 지향·종교 등의 차이를 구실로 차별적이고 편견이 담긴 언어를 쓰지 말자는 신념이나 정치·사회 운동을 뜻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창작 산업에서 화두가 되면서 과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현재의 사회 문화 감수성과 맞지 않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현재 미디어 산업에서 어떤 콘텐츠는 정치적 올바름(이하 PC)을 잘 구현했다는 이유로 칭찬을 받는가 하면 어떤 콘텐츠는 PC 하지 않기 때문에 뜨거운 감자가 돼 창작자 입장에서는 여러 각도에서 PC를 내부적으로 검열해 내놓고 있다.


전 세계 문화 콘텐츠 시장을 선도해온 디즈니는 2005년 전 CEO 밥 아이거(Robert Iger)가 취임과 함께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요 가치로 삼고 있다. 디즈니에서 왕자로부터 구원받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려왔다는 비판을 수용해 '겨울왕국'에서는 연대해 서로를 구원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렸고 '모아나'에서도 영웅이 되기 위해 백마 탄 왕자는 필요 없었다. 원작의 캐릭터를 재해석하기도 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저주를 걸었던 마녀 '말레피센트' '101마리 달마시안'의 빌런 '크루엘라'가 대표적이다.


마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영웅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색 안배는 필수며, 성소수자나 장애인들도 배경이 아닌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한다. '미녀와 야수', '토이스토리4',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터널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는 성소수자들이 전면으로 등장했다.


글로벌 OTT 기업 넷플릭스 역시 PC를 지향한다. 넷플릭스에서 성소수자가 주역인 콘텐츠가 만들어질 때면 이슈에 이해도가 높은 제작자나 스태프가 투입되는 것이 암묵적인 공식이다.


또한 전 세계 구독자로부터 콘텐츠의 만족도를 충족시키기 미국이 중심이 아닌, 로컬의 문화를 반영한 콘텐츠를 제작해 호응을 받아왔다. 한국의 콘텐츠 경우 '킹덤'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시다.


넷플릭스는 2021년 ‘다양성/포용 보고서’를 발간해 자사가 얼마나 사회구성원 모두를 반영하려고 노력했는지 어필하기도 했다.


'PC하다'는 말이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나 혐오에 한정돼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나 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개념이 잡혀가고 있어 콘텐츠가 선한 영향력이 고려되고 있는 것은 반갑다. 그러나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로 자리 잡고 있고 과도한 'PC주의'가 콘텐츠의 완성도나 재미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23년 5월 개봉 예정인 '인어공주'는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해 일부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흑인 캐스팅을 반대하는 이들은 인어공주를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이 창조했기에 원작 파괴라고 지적했다. 기존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팬들은 #내 에리얼이 아니야(#NotMyAriel)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보이콧운동을 전개했다.


디즈니 측은 “덴마크 사람 중에도 흑인이 있으니 덴마크 인어도 흑인일 수 있다”라며 캐스팅 번복은 없음을 강조했다.


2021년 개봉한 '이터널스'는 정치적 올바름을 반영한 새 히어로들이 등장했다. 테나는 퇴행성 질병을 앓고 있으며, 세르시는 아시아계 영웅, 파스토스는 성소수자, 아카리는 흑인이자 언어 장애를 갖고 있으며 스프라이트는 어린이 혹은 왜소증을 대변한다는 해석이 있었다. 시도는 좋았지만 영웅과 더불어 스토리 자체가 PC주의 메시지가 흘러넘쳐 재미가 반감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PC주의 주입'이라면서 'PC 묻었다'라는 조롱도 존재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글로벌 그룹이 주도하고 있는 PC주의는 이제 트렌드가 아닌, 상식과 현상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억지로 끼워 맞춘 PC주의는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흥행적으로도 힘을 못 쓰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완성도와 더불어 고민이 더 필요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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