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은 주말이면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서 몇 년 사이에 서울의 명동보다 더 사람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출판 일로 책 속에 파묻혀 사는 신성대 사장은 출판사 일과 십팔기 보존회 일을 동시에 보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주일에 두 번씩은 국방부 전통의장대 무예사범으로 조선의 국기 ‘십팔기“를 지도 보급하느라 만나려면 미리 약속을 해야 했다.
동문선출판사 사장 신성대씨, 그는 문무를 겸한 사람으로 십팔기보존회 회장이다.
-십팔기를 하는 무예인이자 한국의 인문학 출판을 선도해나가는 동문선 출판사 사장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계신데...?
"예, 제가 좀 남다른 이력을 가졌습니다. 출판사를 하기 전, 젊었을 때는 외항선 기관사로서 7년 동안 배를 타며 해외를 돌아다녔습니다. 저의 첫 직업이었지요. 77년부터 외항선 선원생활을 했는데, 당시로서는 일반인, 특히 젊은이들이 꿈꾸기 힘들었던 외국을 수없이 돌아다녔습니다. 덕분에 견문도 많이 넓혔더랬습니다.
그러다가 84년에 선원생활을 마치고 두 번째 직업으로 출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나라를 다니면서 느낀 점이 많았는데, 우리나라가 동양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동양문화권에 무척 낯설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통문화와 동양, 특히 중국문화에 대한 책을 많이 출판하게 되었고, 지금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인문학 전반에 걸쳐 교양 및 학술도서를 주로 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출판하였습니까?
"22년 동안 약 7백종의 책을 펴냈습니다만, 도무지 성에 차지 않고 나이는 먹어가고, 이러다 만권도 못 채우고 죽어야 되나 싶어 마음이 조급합니다."
-간혹 베스트셀러도 펴내신 걸로 압니다만, 동문선이라면 주로 안 팔리는 인문학술서를 많이 펴내기로 소문이 났던데,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어찌 버티시는지요.
"하하, 재주가 없기도 하고 미련하기도 해서 사옥은 고사하고 아직 변변한 집 한 채, 자가용 한 대 마련 못해서 부끄럽습니다. 간혹 잘 팔리는 책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반대중과는 거리가 먼 전문서적을 많이 내었습니다. 돈만 보면 모조리 책 만드는 데 밀어 넣는 바람에 빚만 자꾸 늘리고 있습니다.
´태산은 티끌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옛말을 좋아해 사양 않고 받아주다 보니, 결국 잘 안 팔리는 책들뿐이네요. 그래도 어쩝니까? 누가 내어도 나왔어야 할 책들인데... 그래도 후회는 안합니다. 어렵지만 사명으로 알고 계속해야지요. 대개 돈 보고 인생을 살지만, 책만 보고 사는 인생도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도서목록을 보니 무예에 관한 책이 꽤 눈에 띄는데, 인문학과 무예서. 좀 의외입니다.
"예,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 취향도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 70년 중학생 시절부터 해범 김광석 선생님으로부터 십팔기를 배웠습니다. 물론 철없을 때니까 그저 치기로 했었지요. 그런데 출판을 하면서부터 또 한분의 스승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분은 당시 문화재전문위원으로 계시던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님이십니다. 덕분에 십팔기가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임을 깨닫게 되어, 두 분의 작업으로 조선시대 국기였던 십팔기 교본인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을 우리나라 최초로 실기해제하여 펴내게 되었지요.
여기서부터 전통무예 십팔기에 대한 관심이 세간에서 조금씩 일어나게 되었고, 계속해서 해범 선생님을 졸라 십팔기를 각론으로 해제한 《권법요결》《본국검》《조선창봉교정》 등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이 책들은 현재 한국 무예계의 필독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무협, 일본의 무사도, 서양의 기사도에 관한 책들도 잇달아 펴냈습니다."
동문선출판사 신성대 사장이 집필한 "무덕(武德)"
-직접 책도 집필하셨는데, 무슨 내용입니까?
"부끄럽습니다. 제가 쓴 책을 제가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무덕(武德)-文의 문화, 武의 문화》라는 책입니다. 제가 36년 동안 무예를 익히면서 가졌던 의문점과 매번 후학들의 똑같은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기가 번거로워 아예 책으로 묶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펴낸 책입니다. 십팔기의 역사뿐만 아니라 무예 전반에 대해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것들에 관한 글들을 모은 겁니다.
하다 보니 조금 욕심이 생겨 무예문화와 우리 민족성에까지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지금에 와서 굳이 용도 폐기된 옛 무예들을 익혀야 하는지? 무예정신이란 무엇인가? 어떤 길이 올바른 무예인의 길인가? 문무겸전의 진정한 의미는? 등등에 대한 의문에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일부는 <데일리안>을 통해 발표도 했었지요."
-많이 팔렸습니까? 반응은 어떻습니까?
"원래 이쪽 책들 초판도 다 팔기 어려워요. 그래도 4쇄나 찍었습니다. 절반 정도는 서점에서 팔려나갔고, 나머지는 그냥 공짜로 나눠 주었습니다. 내가 쓰고 내가 낸 책이라 영 책값 받기가 쑥스러워서요. 문중 사람들이나 이 방면에 얼굴 아는 사람들한테는 그냥 드릴 수밖에요.
또 책 내용이 이제까지 학계나 무예계에서 전혀 언급된 적이 없는 충격적인 내용들이어서 그런지, 기존 무예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도 많아 심한 비난성 비판도 많이 받았고, 좋은 공부 많이 되었다는 감사도 많이 받았습니다. 요즘은 학계나 무예계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무예계보다 오히려 문화 예술계가 더 호의적이네요.
무예계는 아무래도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어쨌거나 이런 문제를 다룬 첫 책이었고, 비난도 하면서 결국 그분들도 “우리 무예인들도 이제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다는 보람이 있습니다."
-어떤 글들이 왜 문제가 되었습니까?
"글들 중 <태권도와 택견은 무예가 아니다>라는 글이 가장 심한 논란을 불러왔고, 그 외의 글들도 전통무예를 한다는 사람들로부터 야유성 비난이 많았습니다. 특히 24기니 하는 유사 십팔기단체들로부터는 지속적인 비난이 있었고요. 대부분 그동안 역사적 사실을 모르거나 덮어둔 채 생업의 수단으로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가르치는 무예가 아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고유한 우리 무예라고 속였기 때문이죠. 제 책 때문에 그 치부가 들춰지니까 펄쩍하는 겁니다.
하지만 뭐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 수천 년 역사책을 다 뒤져도 십팔기 이외의 무예가 기록으로 남은 예가 없으니까요. 지금부터라도 그 연원을 바로잡아 솔직하게 알리고, 널리 좋은 기예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을 다듬어 나가야겠지요. 욕을 하면서 닮는다고 하더니, 결국 공부를 하면서 따라오더군요. 무예동작도 지금은 거의 유사하게 십팔기를 따르고 있습니다. 또 지금은 태권도, 합기도, 검도 등 다른 무예를 하는 분들도 십팔기를 배워가기 시작하고 있어 조만간 전 무예계에 십팔기가 보급될 것입니다."
-십팔기보존회 회장을 맡고 계신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87년도에 두 분의 스승께서 《무예도보통지 실기해제》란 책을 펴내고, 발표회도 가지고, 매스컴에 자주 소개되자, 그 책을 본 대학생들이 찾아와 우리 문화를 지키겠다며 가르쳐주길 원하기에 스승께서 시내에다 도장을 다시 열어 가르쳤습니다. 그 바람에 전국 대학에 십팔기동아리가 만들어졌었지요. 벌써 21년째 이어가고 있고 해마다 전국대회도 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개천절을 기념해서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초청으로 <해범 김광석 한국무예발표회>를 가졌는데, 너무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이후 이곳에서 3년에 걸쳐 정기 공연을 가졌더랬습니다. 이를 계기로 십팔기시연단이 만들어지고, 약 1천여 명의 동아리 출신 회원들과 2백여 명의 대학교수들로 보존회가 결성되어 지금까지 십팔기를 알리고 보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차츰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전통무예 붐이 일어나고, 저희 보존회뿐만 아니라 십팔기를 흉내 낸 온갖 유사단체들도 생겨나게 되었지요. 학회도 생기고, 덩달아 십팔기가 각종 문화콘텐츠나 관광 상품으로 개발되기도 하고, 텔레비전 사극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요."
-그 외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보존회에서 각 학교나 도장, 동아리, 특기적성교육, 해외 십팔기사범 파견, 각종 축제 초청 공연 등을 통해 십팔기를 보급하고 있으며, 저 개인적으로는 수년 전부터 국군전통의장대의 십팔기 지도를 맡고 있으며, 대학에서 전통무예를 주제로 특강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십팔기를 가지고 직접 뛰는 일은 젊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요즘은 문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도가양생법을 보급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 또래 주변 사람들을 보면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 것들을 알려주고 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며 이렇게 귀한 것을 널리 보급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다그칩니다. 조금씩 소문이 났는지 양생법에 관한 강의 주문도 들어오고 있어, 앞으로 이 방면에 대한 책도 한 권 쓰려고 준비 중입니다. 역시 똑같은 말 되풀이하기 싫어서요."
◇ 신성대(辛成大)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대한십팔기협회부회장,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 우리나라 전통무예 붐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십팔기와 양생기공을 지도 보급중. 저
-십팔기를 흔히들 중국무술로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에 답하기 전에, 먼저 용어에 대한 것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단 한 번도 무술(武術)이나 무도(武道)라는 말을 사용한 적 없습니다. 삼국사기에서부터 조선왕조실록 끝까지 무예란 용어만을 사용했습니다. 일제 식민시대를 통해 들어온 예도(禮道) 문화가 이 도(道)자를 붙이게 만든 겁니다. 서예만 하더라도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은 서도(書道)라 하지요.
우리 문화에서 문무(文武)를 대변하는 용어가 있는데 바로 서예(書藝)와 무예(武藝)입니다. 이외에 예(藝)자를 붙여준 예가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예술(藝術)이란 용어는 서양의 아트(Art)를 번역하면서 생겨난 말이지요. 이런 것들을 예전에는 잡희(雜戱), 또는 잡기(雜技)라 일렀는데, 천하게 여겨 통틀어서 잡것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중국에는 역사상 십팔기(十八技)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십팔기는 임란, 병란을 겪으면서 약 2백 년 동안 조선왕조가 심혈을 기울여 체계화한 조선의 국기입니다. 영조 때 사도세자가 잠시 섭정할 때 완성되었지요. 그래서 정조대왕이 왕명으로 십팔기라 이름지었습니다. 이후 모든 역사서엔 십팔기(무예십팔기, 무예십팔반)으로 기록했습니다.
을사조약으로 조선군이 해체되면서 십팔기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그 이름만 전해져 오다가 일제시대에는 검도, 유도, 카라데(해방 후 태권도로 개명) 등 식민무예에 밀려나고, 해방 후에는 중국무술로 오인되기도 하여 제 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유일한 전승자인 해범 선생에 의해 간신히 그 명맥을 이어와 오늘에 이른 것이지요. 그래도 지금은 예전에 비해 십팔기가 우리 것이라는 사실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동안 일한 보람이 있어 다행입니다."
-십팔기가 조선의 국기였다면 오늘날에도 우리 국군이 이를 이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예, 당연한 지적이십니다. 흔히 이전까지는 창을 휘두르면 중국무술, 칼은 들면 일본 검도를 연상했습니다. 우리 무예는 태권도나 택견, 즉 오직 맨주먹으로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천년 동안 이 나라를 맨주먹으로 지켰다는 이야기가 되잖습니까? 물론 그럴 수는 없지요.
대저 나라가 있으면 군대가 있고, 당연히 온갖 병장기와 그것을 다루는 기예가 없었을 리 만무할 터, 바로 그 무예가 십팔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은 밥 먹고 나면 매일 훈련을 하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조선 시대에는 십팔기였습니다. 이것으로 군사를 훈련시키고 무과시험도 보았지요.
현대 한국군은 해방되면서 일본군 정신과 미국식 제도로 만든 것이지요. 이제 자기 무예를 알았으니 마땅히 그 전통을 이어가야지요. 그게 역사의 단절을 메우는 것이기도 하고요. 일제 식민시대에 강제로 심어진 식민무예가 아직도 군(軍), 관(官), 경(警), 학교에 뿌리내려 전해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민족 운운 하는 교육기관일수록 이 식민무예 교육에 더욱 열심인데, 이는 아직도 우리의 주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본업을 팽개치다시피 하면서 십팔기를 보급하고자 하는 목적은?
"흔히 우리나라를 글공부만 하는 선비의 나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사실은 문무겸전이 우리 정신입니다. 신라의 화랑정신도 문무겸전의 정신이고, 그것이 곧 통일정신입니다. 무(武)를 천시하고 문(文)만을 숭상하던 조선의 역사와 정신을 생각해보시면 무덕(武德)이 우리 민족성에 얼마나 중요하고 또 결핍되어 있는지 짐작이 갈 겁니다.
그리고 이 십팔기는 아주 소중한 한국의 무형의 문화자산입니다. 일본의 무사도, 중국의 무협문화를 생각해 보시면 당장 그 가치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과거 일본 카라데(空手道)가 태권도로 개명하여 한국의 대표적 문화상품으로서 국가에 기여한 점을 생각해보시면 앞으로 십팔기가 우리 민족에게 안겨다 줄 진취적인 무예정신과 문화상품, 국가이미지재고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까?
한정된 유형의 문화상품에 머물지 말고 이처럼 무형의 문화자산을 발굴하는데 국가적인 힘을 쏟아야 합니다. 새로운 유형자산 개발이나 이벤트성 국제행사를 개최하는 데에는 엄청난 돈이 듭니다. 하지만 조상들이 이미 국력을 쏟아 개발해놓은 무예 십팔기를 알리고 바로 세우는 데에는 거의 돈이 안 듭니다. 그냥 문화재로 지정만 해주면 절로 큽니다. 그렇게만 해주면 전 세계로 나가 국가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도 가져다 줄 겁니다."
-십팔기가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물론입니다. 전 세계에서 고대병장무예를 십팔기처럼 완벽하게 정리해놓은 나라는 조선왕조뿐입니다. 따라서 십팔기는 세계 유일의 고대 종합병장무예입니다. 그것도 당시 동양3국이 한반도에서 두 차례나 대규모 전쟁을 치르고 난 후에 이 세 나라의 무예를 받아들여 우리 실정에 맞게 종합적으로 체계화한 18가지 실전무예입니다. 따라서 동양무예의 정화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도 나름대로의 무예가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모두 민간무예입니다. 각 문중이나 도장들에서 호신 또는 수양을 위해 개발한 것들로 각 문파마다 서너 개씩을 전하고 있습니다. 절대 국가에서 만든 무예가 아닙니다. 국가에서 그런 작업을 한 예도 없었고요.
따라서 하루빨리 십팔기를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도록 국가에서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나라의 자산, 나라의 무예를 나라에서 나몰라하면 어쩝니까? 머지않아 반드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국부를 살찌울 문화자산인데 말입니다. 다행히 저희 보존회의 2백여 명의 교수들이 이제 곧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리 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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