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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박찬욱 "'헤어질 결심', 기교 없이 깊은 사랑 끌어내길 원했다"


입력 2022.07.16 10:02 수정 2022.07.16 10:02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탕웨이·박해일 주연작

"고전적이고 우아한,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화려한 귀환을 알린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을 만들게 된 이유다. 순수라는 뜻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깨끗한 사랑을 뜻하는 건 아니다. 정치적 메시지나 감독의 주장을 포함시키지 않으며 화려한 볼거리나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를 가지고 간결하게 구성해 깊은 사랑을 끌어내길 원했다. 이 방법이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질지 물음표였지만, 새로워 보일 수 있겠다란 느낌표는 있었다.


ⓒCJ ENM ⓒCJ ENM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최근 영화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100만 관객을 돌파, N차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탕웨이, 박해일을 각각 서래와 해준으로 캐스팅한 후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탕웨이를 캐스팅 하기 위해 처음부터 주인공을 중국인으로 설정했다. 보통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과 달리 그야말로 탕웨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로 창조된 셈이다. 해준 역시 마찬가지다. 박해일이 가지고 있는 기질들을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제가 아는 탕웨이는 '색계' '만추' 등 '황금시대'의 배우였어요. 각본이 완성되기 전, 이미 탕웨이를 만나 캐스팅 제안을 했어요. 하겠다는 의사를 받은 다음 각본을 더 썼죠. 그 단계에서는 탕웨이를 1대1로 만나 알아가는 과정과 각본 완성해가는 과정을 동시에 진행했어요.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장난기가 있고 조금 더 고집스러운 면도 있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해야 잘 할 수 있는 사람, 작업 방식은 이런 것'이라는 소신이 뚜렷했어요. 그런 면들을 각본 캐릭터에 반영했어요."


박해일은 극중 형사지만 언제나 정장을 입고 용의자에게도 예의가 있으며 거칠지 않은 형사다. 그야말로 '품위'가 있다. 한국 영화에서 보여줬던 거칠고 열정적인 형사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이 캐릭터는


"어느 영화에서 보여준 박해일이 아닌, 실제 박해일의 모습을 상상해서 썼어요. 담백하고, 깨끗하고, 상대를 배려해 주고 그런 인간 박해일을 캐릭터에 대입했죠. 해준은 '시민에게 봉사하는 직업'이란 경찰에 대한 확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거기서 모든 게 출발된다고 봤죠. 또 용의자일지라도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공정하게 다루고, 친절하게 대하죠. 뛰어다녀야 하니 예의상 검정 운동화는 신는 사고방식을 가진 고지식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의 윤리에서 배반하게 되는 처지에 놓일 때 딜레마와 고통이 커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탕웨이는 '헤어질 결심' 칸 초청 소감으로 "박찬욱 감독이 나의 인생의 일부를 완성시켰다"라고 감사함을 표했다. 박찬욱 감독은 탕웨이와 함께 작업하며 '우직한 배우'임을 느꼈고, 그 역시 감독상을 수상하며 "무엇보다도 박해일 그리고 탕웨이, 두 사람에게 보내는 저의 사랑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라고 말하며 각별한 애정을 내비쳤다.


"저와 처음 만나 작품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칸 영화제에서 상영이 끝날 때까지 인생 하나의 시기잖아요. 배우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충족이 있었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탕웨이는 한국어 대사를 달달 외워 앵무새처럼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문법 기초부터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미련하리만큼 우직하게 한국어를 배웠죠. 자기 대사만이 아니라 상대 대사들도 외워서 단어 하나하나 무슨 뜻인지 외워서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한국어는 비록 발음이 우리와 똑같진 않더라도 단어 하나, 조사, 어미 처리 하나까지도 자기의 의도가 담기고, 해석이 담긴 대사가 될 수 있었죠. 참 우직한 배우입니다."


ⓒCJ ENM ⓒCJ ENM

'헤어질 결심'에서 손으로 잡히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야만 건너편의 사물이 선명해지는 안개는 영화의 무드를 완성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영화는 가수 정훈희의 노래 '안개'에서 영감을 받았다. 안개는 가상의 도시 이포에게만 자욱한 것이 아닌, 서래와 해준의 사이를 감싸고 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의 마음부터 엔딩크레딧에 울려 퍼지는 정훈희 송창식의 듀엣곡 '안개'가 관객들의 마음이 자연스레 스며들도록 했다.


"곡이 발표된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가요 중 하나가 '안개'입니다. 정훈희 씨는 제일 좋아하는 여자가수고요. 가사 중에서도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라는 가사가 특히 더 제 심금을 울렸죠. 안개가 뿌옇게 끼어서 시야가 흐릿할 때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보이지 않는 뭔가를 열심히 보겠다는 의지와 노력을 느꼈어요. 감흥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말하자면 영화에서 안개도 나오고, 녹색인지 파랑인지 그런 색깔도 나와요. 여러 가지 불분명한, 불확실한 상태나 사물이나 관계, 감정 같은 게 다 노래에서 출발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헤어질 결심'은 전반부와 후반부, 한 일련의 사건과 진실로 인해 배경과 인물, 관계가 변주된다. 전반부 서래의 남편 사망사건을 바라보는 해준은 선입견을 배제하고 보지만, 비밀을 알게 된 후 2부에서는 선입견을 지우지 못한 채 서래를 의심한다. 부산에서 근무할 당시 후배 형사 수완(고경표 분)은 서래를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이포의 후배 형사 연수(김신영 분)는 서래를 '불쌍한 여자'로 바라본다. 관점을 달리하면 볼 수록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는 점이 '헤어질 결심'의 N차 관람을 부르는 이유다.


"해준은 어떤 사람이 의심스럽다고 해서 그 사람을 범인 취급하지 않아요. 어떤 증거도 없이 선입견을 갖는다고 해서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공무원으로서 바람직하고 공정함이 있는 것과 사적으로 끌리기 시작해요. 분명 자신도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잠복근무를 할 생각 없었는데 후배 형사가 ‘범인이 남자면 잠복근무하면서 관찰했을 거잖아요?’라고 하잖아요. 사적인 감정의 또 다른 반론인 거죠. 그리고 서래라는 사람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아요. 남편이 죽었는데 놀라지도 않고, 바로 일하러 가고, 반지도 빼잖아요. 확실히 의심이 가는 사람이지만 남편은 아내를 폭행하는 사람이라 관점으로 보면 다르게 보이죠. 또 '죽은 사람은 산 노인을 방해할 수 없다는 말'도 정당한 말이잖아요."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는 언제나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왔다. 욕망을 표현할 때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장면들로 설명을 주로 해왔다. 이번에는 섹슈얼하거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사랑이라는 본질에 집중했다. 에로틱한 장면이 없어도 두 사람의 관능적인 감정은 관객들에게 전달됐다.


"육체적인 것보다도 사랑, 관심, 이런 류의 관심이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성적인 즐거움을 유발하는지 알려주는 증거인 것 같아요. 제가 특별히 관능적으로 묘사하려고 애쓰진 않았습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단어와 서래와 해준이 구사하는 문어체다. 또한 중국인이라는 설정으로 한국어의 묘한 뉘앙스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적인 감상, 번역기를 통해 대화하는 사이의 침묵 등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해준은 스마트폰, 스마트 기기들을 한껏 활용하면서도 말투, 장소, 공간에서는 고풍스러운 구식 느낌을 만들어 대비시키려 했어요. 서래는 중국 사람으로서, 한국어를 책과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공부했기에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정확하지만 요즘 사람이 듣기엔 낯선 한국어입니다. 처음엔 웃음이 나올 수 있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뜻에 대해 조금 더 음미하게 되고요. '마침내'라는 흔한 단어인데 '운명적인, 올 것이 올 것 같은' 거창한 생각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효과를 만들고 싶어서 썼습니다. 해준은 서래의 표현대로 현대인치고는 품위 있는 사람답게 말을 하죠. 그래서 서래와 잘 어울리고, 같은 종족인 것을 알아보고요. ‘마침내’라는 단어가 어쩌면 부적절한 것처럼 사용했을 때 해준이 곰곰이 음미하면서 ‘저보다 한국말 잘 하시네요?’라고 하잖아요.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픽 웃고 말 것인데 해준은 같은 종족의 인간임을 느낀 겁니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서래와 해준이라는 두 사람의 감정의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그럴 듯한 주제의식이나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감춰져 있는 두 사람의 감정을, 관객이 잘 들여다 볼 때 알 수 있어요. 집중해서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잘 따라가며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천천히 음미해 주셨으면 합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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