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조남대의 은퇴일기③] “어! 기름이…” 미흡한 준비로 낭패를 당하다


입력 2022.07.05 14:12 수정 2022.07.05 10:13        데스크 (desk@dailian.co.kr)

여행은 즐겁다. 그러나 준비가 덜 된 채 떠나는 여행은 불안과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닥칠 수도 있다.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자동차 기름이 떨어져 멈춰서는 경우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고향 선산(先山)에서 형제들과 만나는 날이다. 3년 전 선산에 수종개량 사업을 하여 편백 1300여 그루를 심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받쳐놓은 지주목이 바람에 쓰러져 다시 세워주어야 하고, 나무가 굵어짐에 따라 꽉 조여진 끈도 손봐주어야 한다. 휴일을 맞아 동생들과 작업을 하기 위해 5시 반에 양평에서 출발하였다.


ⓒ

동생들은 대구에 살기 때문에 명절이나 제사가 아니면 특별히 시간 내어 만나기 어렵다. 비록 일하러 가는 것이지만 모처럼 형제들이 만난다고 생각하자 설레기까지 하여 가속기에 올린 발에 힘이 들어간다. 자랄 때는 동생들이 울면 엎고 달래주었던 것과 안방에서 커다란 이불 하나를 온 식구들이 덮고 살을 맞대어 잠자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어머니 49재를 지낸 후 처음 만나는 동생들을 위로하고 집안의 제일 맏형으로서 좀 더 포용력을 발휘하여 우애 있게 지낼 수 있도록 해 봐야겠다. 약속 시각인 8시까지 도착하려면 서둘러 달려야 했다.


전날 오후에 자동차 기름 게이지가 빨간 선 가까이 있어 주유할까 망설이다 휴게소 주유소의 기름이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것 같아 가다가 넣기로 했다. 5시 반 이른 시각이라 대부분의 주유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한 주유소는 불이 켜져 있어 ‘여기서 넣고 갈까?’ 생각하는 사이에 지나쳐 버렸다. 남양평 IC를 통해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올라 조금 달리자 기름을 보충하라는 경고음이 울린다. 서여주 휴게소가 얼마 남지 않아 신경 쓰지 않고 달렸다.


아직 6시가 되지 않은 시각이라 휴게소는 한산하다. 주유소에 갔더니 차량 들어가는 길을 막아 놓은 채 불도 꺼져있다. 경적을 울려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규모가 비교적 작은 휴게소인 데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것 같다. 24시간 차량이 통행하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유소가 영업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난감하다.


어쩔 도리가 없어 다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에 주유소가 어디에 있는지 검색해 보니 충주휴게소가 제일 가까운데 41킬로나 떨어져 있다. 기름 눈금은 빨간 칸으로 내려가 있는데 거리가 너무 먼 것 같다. 그렇다고 중간 IC에서 국도로 내려가 주유소를 찾아간다고 하여도 문이 열려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기름 경고등이 들어와도 30킬로 정도는 달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걱정은 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달리다 기름이 떨어져 자동차가 멈춰 서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보험회사에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할까?’. 그렇게 하다 보면 약속 시각인 8시가 지날 것 같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고 온갖 불길한 생각만 떠오른다.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해야 하는 데 불안하고 초조하게 운전을 하다 보니 마음만 조급해진다. ‘고속도로에 올라오기 전에 기름을 넣을 걸’하는 후회가 막심하다. 평소 커피는 가격에 신경 쓰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마시면서 자동차 기름 넣을 때는 리터당 가격을 따지며 찾아가는 것 보면 대단히 비합리적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다.


기름 눈금은 점점 밑바닥으로 내려가는데 휴게소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조마조마하다. 어떻게 하면 연료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궁리하다 2차선으로 들어가 100킬로 이하로 정속주행 하면서 내리막길에서는 기어를 중립으로 한 채 탄력에 의해 달려보기도 했다. 40킬로나 되던 거리는 30, 20, 10킬로로 짧아지면서 기름 눈금도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자 초조함은 반비례하여 높아만 간다.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운전을 하는 사이 휴게소에 겨우 도착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일단 주유소에 들어가 기름을 가득 채웠다. 자동차 기름 탱크가 60리터인데 60.733리터나 들어갔다. 탱크 용량보다 더 들어간 것으로 보아 기름이 완전히 바닥이 난 것이다. 기름을 다 넣자 ‘후∼유’하는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터진다. 그런데도 중간에 멈추지 않고 배고픔을 참아가며 휴게소까지 와 준 자동차가 한없이 대견스럽다. 그동안 제대로 보살피지도 않고 무심하게 타고만 다녔던 애마에게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휴게소에 들어가 우동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산 다음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이제야 차창 밖 연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산천의 아름다운 경치도 보이고, CD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 소리도 들린다. 여행은 이런 기분으로 해야 하는데 오늘은 미흡한 준비로 인해 큰 낭패를 겪을 뻔했다.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든지 미리 생각하고 점검을 하는 등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


“만사 불여튼튼”이라는 말도 있듯이 미리 준비하고 대처했으면 평안하고 즐거웠을 텐데 설마 하는 생각으로 불안하고 초조한 여행이 된 것이다. 지금이야 이런 마음가짐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며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항상 그렇게는 하지 못할지라도 여유를 갖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조남대의 은퇴일기'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