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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잃어버린 5년 ②] 세계가 인정한 토종원전인데…해외수주 '0건'


입력 2022.01.19 07:00 수정 2022.01.18 21:52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23조' UAE 원전 수주 따낸 한국

10여 년간 토종원전 수출 실적 전무

탄소중립 시대 원전 주목하는 세계

한국만 탈원전 정책으로 '역주행'

2018년 3월 26일 UAE 바라카 원전 1·2·3·4호기의 모습.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바라카 원전 1호기 건설 완료 기념행사에 참석 및 건설 현장 근로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뉴시스 2018년 3월 26일 UAE 바라카 원전 1·2·3·4호기의 모습.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바라카 원전 1호기 건설 완료 기념행사에 참석 및 건설 현장 근로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 여파는 처참했다. 세계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원전업계는 폐업과 구조조정으로 고사 직전까지 몰렸고 해외원전 수주 실적은 0건으로 탈원전 5년간 성적표는 낙제점이었다. 원전업계에만 국한된 폐해가 아니었다. 원전 가동률이 저조해지면서 국내 최대 전력공기업인 한국전력은 빚더미에 올라 부실기업이 될 위기에 처했고 그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쓰나미처럼 국민에게 몰려오고 있다. 탈원전으로 잃어버린 5년을 되짚어봤다.

한국은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4기를 수주하며 토종원전인 APR1400을 해외에 첫 수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수주액만 200억 달러(23조원)에 달하는 등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UAE 원전 수주 소식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려웠던 한국 경제에 든든한 심리적 도약대가 됐다.


국내 원전업계가 60년간 축적된 핵심 원자로 기술과 건설·운영 노하우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UAE 바라카원전에 투입된 APR1400 모델은 이후 2019년 8월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설계인증(DC)을 최종 취득하기까지 했다. 미국 외 노형이 설계인증을 받은 것은 APR1400이 최초 사례로, 한국형 원전이 세계무대에서 경제성과 안전성을 입증받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수한 원전 노형을 갖고도 해외 원전 수출에 실패를 거듭했다. 문재인 정부는 활발한 스킨십 외교를 통해 해외원전 수주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임기를 4개월 앞둔 현 시점 한국형 원전 수출 실적이 '0건'인 점은 이를 대변해준다. 본국에는 원전을 짓지 않으면서 원전 세일즈에 나서는 이중적인 행태에 각국의 시선이 곱지 않다.


탈원전 선언 후 원전 수주 연거푸 '쓴잔'

문재인 정부가 2017년 6월 탈원전을 선언한 뒤 가장 먼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그해 12월 일본 도시바는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법인 뉴젠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전력을 선정했지만 이듬해인 2018년 8월 돌연히 지위를 해지했다.


도시바는 한전의 지위를 박탈한 이후 캐나다 원전기업 브룩필드, 중국 국영 원전기업 중국광핵집단(CGN)에 뉴젠 매각을 타진했지만 불발됐다. 이후 도시바는 한전에 다시 협상 기회를 주지 않고 뉴젠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정부는 사우디·체코·폴란드 원전에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사우디는 한-미 원전 협력을 계기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고, 체코·폴란드도 별다른 희소식이 없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과 신규 원전 건설 취소로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는 국내 원전 산업계는 해외 원전 수주 가능성마저 사그라지면서 고사 위기에 빠졌다.


한국이 첫 원전 수주에 성공했던 UAE에도 탈원전 불똥이 튀었다. 2018년 11월 UAE 원전 운영권 일부가 프랑스에 넘어가며 수주국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렸다. 통상적으로 원전 건설 발주 국가는 수주국에 운영과 유지 관리를 맡기는 것이 관례다. 원전은 설계수명이 평균 60년인 만큼 기술과 경험을 가진 건설자가 가장 안정적으로 운영과 관리에 임할 수 있다. 한국이 탈원전을 선언한 후 이러한 관례가 깨졌다.


다만 올 들어 원자로 수주는 아니지만 원전의 부속시설 건설사업을 따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이 수주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의 2차 건설사업 부문 계약 체결을 위한 단독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계약이 성사되면 터빈 건물 등 2차 측 80여 개 건물과 구조물 건설을 맡는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상 러시아 1차 하청업체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따르고 있다.


한국 원전수출 기반 붕괴…中·러시아에 주도권 뺏기나
로사톰이 지은 러시아 원전. ⓒ로사톰 로사톰이 지은 러시아 원전. ⓒ로사톰

탄소중립 흐름 속 절대적 대안으로 꼽히던 재생에너지의 부작용으로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세계는 다시 원전을 주목하고 있다. "원전이 기후변화 대응 운동의 주류가 되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10~20년 내에 약 100여 기의 원전이 새로 건설 시장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러한 흐름 속 한국은 원전 수출 강대국 대열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 2009년 12월 UAE로부터 200억 달러 규모 원전을 수주하는 감격을 맛본지 12년이나 지났지만 원전 수출 실적이 전무한 초라한 성적표가 이를 방증한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수주 후속타는 나오기 어렵고 경쟁국에 원전 시장을 모두 뺏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현재 세계 원전 시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토대로 공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원전 굴기가 무섭다. 중국은 향후 10년간 해외 30여 곳에 원전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며, 자국 내에서도 15년간 150개 달하는 원전을 새로 지을 예정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도 신흥국을 중심으로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50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해 러시아 원전건설사 로사톰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주요 수출국들은 원자로 건설뿐만 아니라 연료공급, 유지보수,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전(全) 주기적 서비스 제공으로 접근하고 있어 탈원전을 추진하는 한국으로서는 치명적인 경쟁력 손실로 작용하고 있다.


한 대학의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높은 석탄 발전도 의존도를 줄이고 기후 위기에 대비하자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라 탄소배출을 줄이는 과정에서 원전이 대안으로 선택되고 있는 분위기"라며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최고 원전 기술이 해외 시장에서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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