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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삶


입력 2021.11.25 15:17 수정 2021.11.25 15:18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장르만 로맨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끝자락이면 로맨스 영화가 생각난다. 최근 배우 조은지가 ‘장르만 로맨스’라는 작품으로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맨스와는 전혀 다른 결의 영화다.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장르만 로맨스’다. 범상치 않은 관계로 엮인 교수와 제자, 이혼한 아내와 출판사 사장, 그리고 아들과 옆집 여자가 그리는 유쾌 발랄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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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인 김현(류승룡 분)은 슬럼프에 빠져 신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는 불륜이라는 유책 사유로 이혼한 전 부인 박미애(오나라 분)에게는 아들(성유빈 분)의 양육비를 지급해야 하고, 외국에 있는 부인과 딸의 유학비도 보내줘야 한다. 출판사 편집장이자 절친한 친구인 순모(김희원 분)에게 신작 출간에 대한 압박을 받던 중, 자신의 강의를 듣는 유진(무진성 분)의 습작을 읽게 되고 현은 신작 출간을 위해 공동 집필 작업을 제안하게 된다.


영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고충과 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때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현은 7년째 슬럼프에 시달리며 압박을 받는다. 잘 나가는 후배는 부커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고, 젊은 작가들은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켜져만 간다.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다. 두 번째 부인은 딸의 유학으로 외국에 나가있어 기러기 생활을 하며 외롭게 홀로 지낸다. 이혼한 전처에게 매달 생활비와 양육비를 보내는 것도 힘겨운데 공부에 관심 없는 사춘기 아들은 끊임없이 골치를 썩인다. 현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신체적으로 기력은 떨어지고 사회적으로도 설 자리가 줄어든 중년 남자의 위기와 고충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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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삶을 조명한다. 영화는 전·현 부부와 친구, 애인부터 이웃과 사제지간 그리고 동료에 이르기까지 얽히고설킨 다채로운 인물들을 보여주며 다양한 관계를 담는다. 10대 아들은 첫사랑에 아파하고 20대의 젊은 세대들은 사랑과 진로문제로 고민하며 50대들은 이제 곧 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방황한다. 인물들이 겪는 고민을 유쾌한 웃음으로 코믹하게 보여주지만, 각자가 느끼는 삶의 무게와 고민은 결코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현과 유진, 미애, 순모, 아들 성경 등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헤어짐을 겪으며 한 차례 성장한다. 영화는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별 없는 시선도 눈에 띈다. ‘장르만 로맨스’에서는 부부, 이웃, 친구 등 우리 주변의 흔한 관계를 중심으로 보편적이고도 특별한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그중에서도 이혼, 재혼, 동성애 등의 코드가 자극적이지 않게 그리고 과장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이 그러하다. 사람마다 사랑의 표현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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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과거에 비해 이혼, 재혼, 동성애에 대해서도 많이 관대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차가운 시선이 여전히 남아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현은 ‘색과 색이 섞였을 때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색은 그대로 남아있다’라는 명대사를 통해 보편적이지 않은 관계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는 단순히 코미디라고 하기엔 무게감 있고 블랙코미디라고 하기에도 유쾌함이 가득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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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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