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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술자리 문법’


입력 2021.10.20 08:02 수정 2021.10.20 07:50        데스크 (desk@dailian.co.kr)

대선 후보로서는 실언이나 ‘전두환 터부’는 졸업해야

객관적 사실도 말 못하는 전체주의는 사회 질식케 해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국민의힘 경기도당에서 열린 경기도당 주요당직자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국민의힘 경기도당에서 열린 경기도당 주요당직자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계산된 발언인지 순진한 사람의 실언인지는 모르겠다.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잘못한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윤석열은 이번 주 초 부산의 한 지구당사를 찾은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과 정치인들(일반 국민들의 생각은 반반으로 갈릴 테니)을 놀라게 하는 말을 곧잘 하는 그가 또 ‘망언’을 한 것이다.


윤석열의 말이 대권을 향해 뛰고 있는 사람으로서 적절한 것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 전에 이 ‘망언’이란 심판의 언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망언(妄言)의 사전적 정의는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아니한, 망령된 말’이다. 미친 사람이나 하는 말이란 뜻. 윤석열이 미쳤다고 일부언론과 정치인들(거의 전부)이, 그야말로 망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망언이란 필자가 중고교에 다닐 때 주로 일본 정계 지도자들에게 쓰던 말이다. 그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민들로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전쟁 미화나 학살 정당화, 신사(神社, 일본의 사당) 참배 같은 기피(忌避) 입장과 행위를 대했을 때 분노와 항의 표시로 사용한 용어였던 것이다.


그 말이 이제 자기 생각과 다르게 말하는 사람에게 사용하는 조롱과 비난 용어가 됐다. 준엄한 외교적 의사 표시 언어가 천박한 정적 비난 언어로 격이 떨어져 버렸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표현의 격만이 아니고 그 언론의 자유를 속박하고 질식시킨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한 나머지 전문은 다음과 같다.


“왜 잘했냐... (전문가에게 국정을) 맡겼기 때문이다. 이분은 군에 있으면서 조직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맡긴 거다... 그렇게 맡겼기에 잘 돌아간 거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최고 전문가들을 뽑아 적재적소에 두고 시스템관리나 하면서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소통하고 챙길 어젠다만 챙기겠다. 법과 상식이 짓밟힌 이것만 바로 잡겠다.”


이것이 미친 사람의 말인가? 윤석열의 말을 올바로 비판하려면, ‘전두환은 12.12와 5.18이라는 대역죄뿐 아니라 7년간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 한 국정이란 것도 잘한 게 하나도 없다’, ‘대통령은 전문가에게 국정을 맡기기만 해서는 절대로 나라를 잘 이끌어갈 수 없다’라는 근거를 제시하고 조목조목 반박을 해야만 했었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세 야당 경선 후보들도 그렇게 하지 않고 판에 박은, 운동권 대자보 또는 여권 대변인 논평에 나오는 표현을 그대로 써서 ‘저런 망언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선 후보라고...’라는 식으로 공격을 했다.


정치 신인 윤석열은 ‘여의도 문법’ 적응을 거부하고 ‘술자리 문법’을 고수하기로 한 듯하다. 친정부 언론들과 라이벌 후보들이 하도 때리니까 조심하고 버벅거릴 뿐이지 여의도 정가에서 구사하는, 무리 없고 말썽나지 않아서 알맹이는 없고 물에 물 탄 듯한, 공식에 따른 말솜씨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거나 생리적으로 그런 기술이 맞지 않는 사람이란 인상을 준다.


‘주 120시간 근무 후에 맘껏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출 문제없다’, ‘코로나 시작이 대구 아니었으면 민란 일어났다’,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어야 한다’...


이런 ‘실언’ 시리즈는 그에게 객관적 시선을 갖고 전체 맥락을 읽어보면 부족하고 일부 오류인 부분은 있을지언정, 적어도 망언은 아니다. 그의 전두환 발언도 여의도 문법으로는 실언이다. 하는 것보다는 안하는 게 좋았다. 설사 홍준표의 추격을 따돌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강성 보수층 의식 발언이었다고 해도 좋은 전략은 아니었다.


그렇긴 하더라도 전두환이 나라의 중요한 업무를 사계(斯界, 해당되는 분야)의 권위자에게 맡기고, 특히 물가를 잡으면서 경제를 크게 발전시켰다는 건 전문가들과 그 시대를 산 일반 국민들이 피부로 인정하는 공(功)이다. 통계가 그것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한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1980~90년대 대한민국 대융성의 계기가 된 88 올림픽 유치와 민주화의 문을 열어젖힌 6.29선언(노태우가 발표했지만 전두환의 결심 아니었으면 불가능)도 있다.


쿠데타와 광주 비극의 과(過)가 너무 크고 전두환을 좋게 말하는 건 대한민국 사회에서 터부(Taboo, 특정 집단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금하거나 꺼리는 것)가 돼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일 뿐이다. 그러나 술자리 같은 데서는 예전에도, 지금도 장삼이사(張三李四, 평범한 사람들)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거리낌 없이 말하는 ‘전두환의 치적’이다.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만 스스로 전체주의 감옥에 갇혀 있다. 이들의 가슴에는 ‘잘못한 게 많은 사람이지만 잘한 것도 있다’는 말이 들어 있는데, 머리는 ‘잘한 건 하나도 없는 죽일 놈이다’라는 말에 지배 당하고 있다. 게다가 전자를 말하면 큰일 난다, 기자 생명 정치 생명 끝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1+1=2만이 정답이 아니다. 0도 맞고 3도 맞는 답이다. 2만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사회는 북한이다. 그런 질식의 문법을 걷어내자고 하는 게 위선과 교조(敎條, 역사적 환경이나 구체적 현실과 관계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인 듯 믿고 따르는 것)의 진보좌파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다.


진보좌파는 객관적 사실도 말하지 않으려 하고 그것을 말하려는 사람을 미친 놈 취급한다. 보수우파 대선 주자라는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고 있다는 게 2020년대 한국 정치의 답답하고도 초라한 현주소다. 제발 전두환 터부를 졸업하라!


윤석열의 ‘술자리 문법’은 한국 사회에서 지금은 득보다 실이 많다. 그러나 광인(狂人)의 말은 아니다.


ⓒ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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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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