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기본권’, 창작자는 ‘내 작품의 권리’ [뮤지컬 협회 분화, 무엇을 바꾸나②]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11.07 06:39  수정 2026.11.07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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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협회, 11월부터 체불·안전사고 전수조사

창작자협회, 최소 창작비 권고 기준·2차적 이용 권리 정비 추진

정부 표준계약서 보급 10년 넘었지만 ‘권고’에 머물러…이행률 추정치 6%대

한국뮤지컬배우협회(이하 배우협회)와 한국뮤지컬창작자협회(가칭·이하 창작자협회)의 과제는 출발점이 다르다. 배우협회가 체불과 부상, 보험 미가입처럼 배우가 일하면서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 문제에 무게를 둔다면, 창작자협회는 창작비 기준과 저작권 귀속 같은 작품에 대한 권리를 앞세운다. 다만 두 협회가 짚은 문제는 결국 같은 곳으로 모인다. 정부가 10년 넘게 표준계약서를 보급해 왔는데도 현장에서는 계약서가 늦게 쓰이거나 쓰이지 않고, 쓰이더라도 협상력이 약한 쪽에 불리하게 채워진다는 점이다.


배우협회에 들어온 제보와 상담은 체불, 계약 불이행, 안전사고 전반에 걸쳐 있다. 정영주 배우협회 이사장은 “체불과 안전사고 부분이 특히 취약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11월부터 배우들을 상대로 관련 내용을 전수조사하기로 이번 주 결의했고, 검토를 마치는 대로 설문과 상담을 통한 조사에 착수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 지원 범위에 대해서는 상담부터 소송 지원, 협회 명의 대응까지 “모든 부분을 협회가 공동 대응해 줘야 하는 게 맞다”며 “체불은 한 명만 당하는 경우가 없고 작품 전체의 스태프와 배우가 피해를 입는 것인 만큼 법률 대응은 당연한 필수 조건이어야 하고, 나아가 법·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하는 것이 협회의 최종 목표”라고 했다.


한국뮤지컬배우협회 정영주 이사장 ⓒ정영주 제공

정 이사장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은 것은 보험이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2020년부터 의무 가입으로 바뀌었지만, 산재보험은 2012년 도입 때부터 예술인이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임의가입 방식에 머물렀다. 지난 9월 국회 토론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자는 15만명을 넘었지만, 산재보험에 가입한 예술인은 3740명에 그쳤다. 정 이사장은 “제작사가 보험을 신고하지 않으면 배우는 부상을 당하고 재활하는 과정의 모든 비용을 홀로 감당하고, 그사이 일을 잃어도 고용보험이 신고되지 않아 실업급여 혜택도 받지 못한다”라며 “산재보험은 예술인이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받을 수조차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현재는 공연 기간에만 적용되는 특약 보험 형태로 보장되는 경우가 많아 연습 기간이 사각지대로 남는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는 “제작사도 문제이지만, 기본적인 것을 요구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이 가장 큰 문제”라며 “기본권을 요구하는 배우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핵심 과제”라고 했다.


제작사 측은 보험 문제를 두고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먼저라는 입장이다. 한승원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이하 제작사협회) 회장은 “예술인 고용보험은 제작사가 취득 신고와 보험료 납부 등 법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 하는 영역이며 회원사들은 이를 준수하고 있다”며 “반면 프리랜서 예술인 산재보험은 현행 제도상 본인이 직접 가입하도록 설계돼 있어, 제작사들은 이를 적극 안내하고 가입을 독려하는 한편 연습과 공연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비해 제작사 차원에서 민간 상해보험 등 별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현장의 공백을 보완해 왔다”고 말했다. 산재보험 가입을 예술인 개인에게 맡기는 구조에서는 연습 기간과 부상 이후의 보장 수준이 제작사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무대 사고는 실제로 큰 피해로 이어져 왔다. 2012년 12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공연 중 프리랜서 무대제작 스태프가 10m 높이에서 떨어진 무대장치에 머리를 맞아 전두엽 일부를 잃는 사고가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정식 고용된 근로자가 아니고 산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 스태프는 소송을 거쳐 2014년에야 서울행정법원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았다. 최근에도 서울의 한 대형 공연장에서 프리랜서 출연자가 무대 장비에 부딪혀 사지가 마비되는 사고가 있었다. 국회에는 공연 제작사와 공연장 운영자에게 출연자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공연법 개정안(대표 발의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계류돼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예술인복지재단)은 올해부터 예술인 파견 사업 ‘예술로’ 참여자의 산재보험료를 사업 기간 동안 전액 지원하고,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대상도 산재보험 가입 예술인으로 넓혔다. 고용노동부는 문화예술 종사자의 산재보험 의무 가입을 추진하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현재 보험료의 50%를 지원하는 데서 나아가 내년에는 본인 부담 없이 가입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최저 출연료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정 이사장은 “최저 출연료는 프로덕션과 작품 규모에 따라 달라지고 매우 복잡한 관계가 얽혀 있다”며 “기준점이 되는 연습 기간의 처우와 식대에 대한 기본적 권리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표준계약서에 대해서는 “더욱 정교하고 견고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협회는 앙상블과 신인 배우의 목소리를 반영할 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정관과 조직의 기초는 선배들이 앞장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현 이사진 외에 추가 이사진과 대의원을 구성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신인·앙상블을 대변할 배우들에게 대의원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협회가 존속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들에게 있다”고 했다. 사단법인 인가 이후에는 배우 실태조사, 표준계약서 확산을 위한 교육, 인식 개선 콘텐츠 사업을 먼저 추진한다. 교육·콘텐츠 사업에 대해서는 경력이 단절된 배우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며 “배우들은 그동안 무대 위의 삶에만 집중해 왔지만,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기 쉽다. 내 권리를 제대로 지킬 방법을 알고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주연급 배우의 역할에 대해 정성화는 “가장 좋은 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며 “지금 웬만한 제작사들은 그런 일이 없지만, 간혹 배우들을 굉장히 악독하게 다루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관련 행사가 있을 때 같이 힘을 실어주는 것이 우리 배우들이 해야 할 일”이라며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체부는 2013년부터 공연예술 분야 표준계약서를 보급해 왔고, 2019년에는 무대 기술 스태프용 표준근로계약서와 표준용역계약서를 추가했다. 2020년 6월부터는 개정 예술인 복지법에 따라 문화예술용역 계약을 반드시 서면으로 맺어야 하고,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 그러나 표준계약서 사용은 법적 의무가 아니어서 현장 정착은 더뎠다. 2014년 한국뮤지컬협회는 뮤지컬계 표준계약서 이행률을 6%대로 추정했는데, 신규 제작사가 들어와도 대부분 기존 주요 제작사의 계약서를 따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방송 분야는 2013년 제정한 출연 표준계약서를 지난해 7월 12년 만에 전면 개정해 미방영·편집 영상의 재활용에도 출연료를 지급하도록 했지만, 공연 분야 개정 논의는 그보다 더디다. 이성훈 쇼노트 대표는 올해 4월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뮤지컬 분과 회의에서 표준계약서 제정 이후 10년이 넘었다며 창작자 권익 보호를 반영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창작자들이 문제로 꼽은 것은 계약 구조다. 창작자협회 창립준비위원회를 이끄는 작곡가 다미로는 “한 작품을 완성하려고 1년 넘게 작업했는데도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창작료를 제안받는 사례가 지금도 꾸준히 들려온다”고 말했다. 그는 첫 포럼 발제에서 15~20년 전보다 티켓 가격은 크게 올랐지만 신인 창작비는 오히려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두세 작품 만에 업계를 떠나는 신인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2013년부터 표준계약서를 보급해 왔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고 계약금과 로열티 칸이 비어 있어 협상력이 약한 신인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불공정 계약은 법률을 위반한 계약만 뜻하지 않는다”며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라도 기여도와 위험 부담, 수익 배분에서 현저한 불균형이 있다면 그 공정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뮤지컬창작자협회 창립준비위원회 위원장 다미로 ⓒ다미로 제공

문제는 작품 개발 단계부터 시작된다. 다미로는 “현장에서는 서로 믿고 하는 작업이라는 이유로 계약서 없이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특히 신인은 작품 참여 기회를 잃을까 걱정해 계약서를 먼저 요구하기 어렵다”며 “공연 일정이 임박해서야 계약서를 받고, 이미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기 때문에 불리한 조건인 줄 알면서도 서명하게 된다”고 말했다.


수개월간 리딩과 쇼케이스를 거쳤더라도 공연이 무산되면 보상 기준이 없어 창작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공연 무산이 언제나 제작사 잘못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사전 계약으로 책임과 보상 기준을 정해야 한다”며 계약 체결 시점, 창작료 지급 시기, 무산 시 보상 기준, 로열티 정산 방식을 명확히 하는 ‘계약의 선행’을 출발점으로 꼽았다.


포럼에서 공유된 관행을 보면 계약금은 보통 1000만원 안팎, 로열티는 1~2% 수준이다. 로열티를 매출이 아닌 ‘순수익금’ 기준으로 책정하거나 공연이 끝나고 수개월 뒤에야 정산하는 사례, OST·대본집·MD 수익 배분이 계약에서 빠지는 사례도 거론됐다. 최소 기준을 두고는 성종완 작가가 프로야구 신인 연봉 하한선처럼 계약금 800만원, 로열티 1.5%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안한 반면, 한아름 작가는 중소 프로덕션마다 재정 사정이 달라 일괄 기준이 오히려 신인의 진입을 막을 수 있다며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표준계약서부터 만들자고 주장했다.


다미로는 “구체적인 금액은 검토 중이라 공개하기 어렵다”면서 “협회 차원의 최소 창작비 기준을 마련해 제작사와 프로듀서에게 권고 기준으로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의 노동 대가는 보장돼야 한다”며 로열티는 극장 규모와 객석 수, 공연 횟수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창작비와 로열티는 서로 대체되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뮤지컬창작자협회 포럼에 참석한 뮤지컬협회 이종규 이사장 ⓒ연합뉴스

저작권 귀속도 핵심 쟁점이다. 포럼에서 김성수 작곡가는 “저작권을 제작사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사용권(대여)’만 부여하는 개념을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아름 작가는 작가와 작곡가의 창작물을 공동저작권으로 묶어야 한 사람과의 계약 해지로 작품이 흔들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다미로는 이 문제를 추가 논의할 사안으로 남겨두면서도 방향은 분명히 했다. 그는 “제작사가 처음부터 아이템을 개발해 의뢰한 작품과 창작자가 직접 개발한 작품에 제작사가 참여한 경우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며 “어떤 형태든 저작권을 사실상 영구적으로 귀속시키거나, 재공연·영상화·음반 등 2차적 이용 권리를 계약 초기부터 일방적으로 제작사에 귀속시키는 방식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권리를 무조건 창작자에게 귀속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제작사의 투자와 기여를 인정하면서 창작자의 권리가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례집에는 공모전 당선 뒤 계약서에 공고에 없던 ‘저작권 30년 양도 및 2차적저작물작성권 양도’ 조항이 추가돼 재단이 시정명령을 내린 사례도 실려 있다.


해외 진출이 늘면서 생긴 문제도 있다. 다미로는 “국내 개발 단계에서 해외 공연 조건을 정하지 않았다가 해외 진출 과정에서 창작자에게 불리한 조건이 제시되는데, 창작자는 이미 맺은 계약이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해외 라이선스 저작권료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문제도 지적했다. 협회는 해외 공연 권리와 수익 배분을 국내 공연 계약에 일괄 포함하기보다 해외 진출이 구체화되는 시점에 별도로 협의하는 기준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브로드웨이 등 해외 계약 관행을 참고할 필요는 있지만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두 직군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도 있다. 포럼에서 이진욱·박정아 작곡가는 배우 콘서트나 유튜브 홍보 콘텐츠에서 창작곡이 창작자도 모르게 쓰이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두 협회 모두 책임을 배우 개인보다 콘서트를 여는 쪽에서 찾았지만 강조점은 조금 달랐다. 정영주 이사장은 “함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창작자들도 저작권 관리 단체에 정식 등록 절차를 밟고, 배우 콘서트를 제작·운영하는 단체도 정당한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미로는 “배우협회와 직접 협의하기보다는 콘서트를 주최하는 제작사와 프로듀서의 저작권 인식과 사용 절차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단순히 사용료를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는 자신이 만든 넘버가 어디에서, 어떤 목적으로, 어떤 형태로 쓰이는지 알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허락 절차와 이용 내역 안내, 정산 기준을 정착시키겠다며 “배우와 창작자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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