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질서의 범람 속, 편리함과 효율성이 대신할 수 없는 ‘기억과 관계’의 가치
새것은 빠르게 익숙한 자리를 밀어낸다.
아이의 손에는 인형 대신 태블릿PC가 들리고, 가족의 자리에는 과거의 관계를 대신하는 새로운 관계가 들어서기도 한다. 그러나 새것이 등장했다고 해서 오래된 기억과 마음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5’와 넷플릭스 영화 ‘남편들’은 서로 다른 장르와 관객층을 겨냥하지만, 새것과 새 관계 앞에서 밀려난 존재들이 다시 자기 자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토이 스토리 5’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토이 스토리 5’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50만 2934명을 동원해 개봉 첫 주차에 이어 2주차에도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영화는 보니가 어린이용 태블릿PC 릴리패드에 빠지며 장난감들이 창고로 밀려나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픽사 대표 시리즈가 오랫동안 다뤄온 질문, 즉 아이가 자라면서 장난감을 떠나는 순간을 이번에는 디지털 기기의 등장과 연결한 것이다. 릴리패드는 보니에게 새로운 놀이 방식이자 또래와 어울리기 위한 도구다. 장난감들의 위기는 아이의 성장과 관계 방식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남편들’ 스틸컷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남편들’도 새 관계 앞에서 밀려난 존재를 중심에 둔다. 영화는 전남편 황충식(진선규 분)과 현남편 이민석(공명 분)이 납치된 아내와 딸을 구하기 위해 손잡는 액션 코미디로 출발한다. 표면적으로는 전남편과 현남편의 공조극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남편들’이라는 제목은 두 남자만을 뜻하지 않게 된다. 신흥 마약세력 마도준(김지석 분)의 복수극, 도준의 아내 혜란(이다희 분)의 납치 계획, 구세대 조직 보스 김용강(윤경호 분)의 개입, 각자의 아내들과 딸까지 얽히며 남편과 아내, 가족과 세대의 관계가 계속 확장된다.
두 작품은 새것을 단순히 부정하지 않는다. ‘토이 스토리 5’에서 릴리패드는 보니의 시간을 빼앗는 악역이라기보다, 보니가 또래와 어울리기 위해 선택한 새로운 세계다. 보니는 인형들과만 노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끼고, 부모가 사준 릴리패드는 그 불안을 해결해줄 수 있는 도구처럼 보인다.
‘남편들’에서도 현남편 민석은 더 세련되고 안정적인 현재의 가족 질서를 상징한다. 그는 충식보다 젊고, 딸에게 더 그럴듯한 선물을 준비할 수 있는 인물이다. 반면 전남편 충식은 서툴고 허술하다. 딸에게 건넨 짝퉁 스마트워치는 민석이 준비한 진짜 워치 앞에서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충식의 방식을 단순히 낡고 모자란 것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허술해 보였던 짝퉁 스마트워치는 이후 딸의 위치를 찾는 단서가 되고, 충식은 어설프지만 딸을 향한 마음과 행동으로 가족 구출극의 한 축이 된다.
‘토이 스토리 5’ 역시 새것의 승리나 옛것의 귀환만을 말하지 않는다. 카우걸 인형 제시는 보니가 자신들을 멀리하는 현실 앞에서 혼란을 겪지만, 첫 주인 에밀리와의 기억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며 장난감을 떠나도 그 시간이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아이가 자라면서 인형을 놓는 일은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놓아주는 순간에도 함께한 시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체’ 스틸컷 ⓒ쇼박스
앞서 연상호 감독의 ‘군체’도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군체’가 초연결 시스템을 통해 기술이 인간의 판단과 이해를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면, ‘토이 스토리 5’와 ‘남편들’은 같은 질문을 더 일상적인 물건과 관계의 층위로 내려온다. 하나는 패드 앞에서 밀려난 인형을, 다른 하나는 현남편 뒤에 놓인 전남편과 허술한 물건을 바라본다. 세 작품 모두 새 기술과 새 질서가 등장한 뒤, 그 바깥에 남겨진 것들이 정말 사라져야만 하는지를 묻는다.
이 영화들이 말하는 것은 기술에 대한 반감이 아니다. 릴리패드는 보니에게 새로운 놀이 방식이고, 스마트워치는 가족을 더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는 기기이며, ‘군체’의 초연결 시스템 역시 인간이 오해를 줄이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편리함이 관계 자체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생긴다. 관계는 효율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기억은 새 물건이 등장했다고 곧바로 지워지지 않는다.
‘토이 스토리 5’와 ‘남편들’이 바라보는 것은 새것의 등장 이후에도 남는 것들이다. 보니가 인형을 멀리해도 인형들이 남긴 시간은 마음속에 남고, 민석의 존재 역시 충식을 완전히 지우지 않는다. 새 기술과 새 관계는 삶을 바꾸지만, 오래된 마음과 기억은 완전히 교체되지 않는다. 밀려난 것들은 사라지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현재를 움직인다. 그때 오래된 관계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의 관계를 다시 잇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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