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스토리텔링 '도구' 아닌 '목적' 되는 주객전도 경계해야
"비판적 의견 입막음하는 폐쇄적 문화, 기술 오남용 부추겨"
첨단 기술의 화려한 스펙터클은 역설적으로 무대 본연의 아날로그적 질감과 상상력의 여백을 지우고 있다. 기술이 친절해질수록 연극적 약속은 힘을 잃고, 관객은 수동적인 시청자로 전락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EMK뮤지컬컴퍼니
무대는 배우의 신체와 관객의 상상이 비어 있는 공간에서 만나 완성되는 예술이다. 그러나 최근의 무대는 모든 공간을 영상으로 빈틈없이 채우며 관객이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 최승연 평론가는 “연극은 근본적으로 배우 신체와 비어 있는 공간이 만드는 예술이며 무대가 그 제의적인 본성을 복원했을 때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콘셉트를 맞추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LED로 배경을 도배하는 무대가 많은데, 이는 연극성을 복원하는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과잉 친절’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초연한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의 경우 호젓한 산속 캠핑카부터 웅장한 경복궁 근정전, 그리고 바티칸 교황청까지 시대와 장소를 종횡무진하는데, 이 시공간 변화를 LED 스크린 활용에 크게 의존한다. 때로는 무대 전체가 LED 영상으로 뒤덮이며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지만, 이는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대 특유의 공간감 대신 실사 영화 촬영 현장을 보는 듯한 이질감이 앞서면서, 관객이 극 중 장소의 정취를 스스로 느껴야 할 ‘상상력의 틈’을 영상이 봉쇄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술이 스토리텔링의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 되는 순간 관객은 ‘연극적 경이’가 아닌 ‘기술적 감상’에 그치게 된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과거에는 의자 하나만으로 왕좌를 상상하게 했다면, 현재는 고화질 LED가 궁전의 세밀한 기둥까지 묘사하며 관객의 상상력을 거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창작자가 관객의 지적 능동성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떠먹여 주는 방식과 다름없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빈약한 서사나 연출의 한계를 화려한 영상 스펙터클로 덮으려는 시도 역시 주객전도 현상의 전형이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일부 대작들은 고화질 LED 무대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드라마보다 시각적 효과가 앞섰다는 평단의 날카로운 반응을 얻었다. LED 패널을 연극 최초로 시도했다고 홍보했던 ‘파우스트’는 화려한 영상이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고 배우의 실재감을 잠식한다는 지적을 받았고, ‘한복 입은 남자’ 역시 거대 자본이 투입된 대작의 위용을 영상으로 과시하려 했으나 “영화적 문법에 매몰됐다”는 호불호 갈린 평가 속에 연극성 회복이라는 숙제를 남겼다.
최승연 평론가는 “품질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LED만 깔아버리는 무대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작품의 세계관과 기술이 유기적으로 맞지 않는 과잉된 시도는 무대 예술의 본질을 흐릴 뿐”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이 서사를 극대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빈약한 연출의 한계를 덮으려는 ‘눈속임’으로 전락할 때, 관객은 공연 관람이 아닌 대형 스크린 시청에 그치는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OHO Theatrical Dept.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자성적 목소리는 실제 제작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상징인 ‘명성황후’는 30주년 공연에서 과거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LED 화면을 과감히 걷어냈다. 제작진은 이를 두고 “디지털화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배우 연기의 힘과 무대의 생동감이 약해졌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한 결과”라고 밝혔다. 기술이 예술의 본질을 앞설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창작진이 스스로 인정한 상징적인 사례다.
역설적으로 최근 관객들을 가장 열광시킨 것은 철저한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었다. 영상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회전 무대와 인형극, 배우들의 유기적인 결합만으로 구현한 초현실적인 세계는 유료 점유율 98%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거뒀다. 특히 퍼펫티어들이 직접 움직이며 구현한 정교한 동선과 리드미컬한 움직임은 기술이 채울 수 없는 연극적 경이로움을 선사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최승연 평론가는 “무조건 LED로 가는 것보다 각 공연의 콘셉트에 맞게 연극성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는 무대화 고민이 창작진에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결국 관객이 원하는 것은 고화질 스크린이 아닌, 무대 위에서 실제 세계가 ‘변형되고 생성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연극적 본질의 회복이다.
기술 오남용에 대한 건강한 비판이 제기되지 못하는 산업 구조적 문제도 심각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한 무대가 너무 많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제작사와의 관계 때문에 실명을 거론하며 비평하는 것도 금기시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평론가는 “평론가들 사이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내면 보복, 협박성 전화가 오거나 입막음을 시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평론가를 독립적인 비평가가 아닌, 홍보팀 정도로 생각하는 폐쇄적인 문화가 존재한다. 이러한 환경이 기술의 오남용을 부추기고 건강한 무대 예술의 발전을 위한 담론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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