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디애니페스트 추혜진 프로그래머 "작품을 알리는 일, 가장 큰 숙제” [상상의 실험실, 한국 독립애니②]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0.16 14:22  수정 2025.10.16 14:22


한국 애니메이션이 세계 시장에서 점차 존재감을 키우고 있지만, 그 성과의 바탕에는 산업의 중심이 아닌 ‘작은 현장’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서울인디애니페스트(Seoul Indie-AniFest)는 지난 20년간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의 흐름과 생태를 지탱해 온 심장 같은 공간이다. 상업 애니메이션이 대규모 자본과 흥행 구조 속에서 성장했다면, 인디애니페스트는 그 바깥에서 창작의 자율성과 도전정신을 지켜왔다.


21회를 맞은 올해,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9월 18일부터 23일까지 6일간 총 129편을 상영하며 규모 면에서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애니메이션 WIP(Work in Progress) 쇼케이스, AI 세미나 등 제작과 유통, 기술을 잇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단순한 상영의 틀을 넘어 창작 생태계의 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특히 첫 공개와 피칭, 멘토링, 해외 배급까지 이어지는 연계 시스템은 독립 애니메이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모델로 평가된다.


‘팝팝’ 연출자이자 인디애니페스트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인 추혜진 프로그래머는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이런 작품을 보여줄 공간이 거의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외국에서 어렵게 DVD를 구해와 상영회를 열거나, 1995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같은 곳에서 겨우 볼 수 있었을 정도였죠.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한국 창작자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모아 보여주자’는 취지로 2006년에 인디애니페스트가 탄생했습니다. 주류와 다른 문법을 가진 창작자들이, 재료·기법·외형적 측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죠.”


ⓒ'광장' 스틸컷

인디애니페스트는 상영 무대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의 배급과 확산까지 신경 쓰고 있다. 해외의 유명한 감독이나 프로듀서를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청하거나 국내와 해외 배급사와의 협업하는 등이 이 전략의 일환이다.


“올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제작하는 코믹스 웨이브 필름의 카즈키스나미 이사를 심사위원으로 모셨습니다. 해외 배급과 연결해 보자는 목적이 있었고, 실제로 김보솔 감독의 '광장'을 본 뒤 배급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영화제가 단순히 작품을 상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배급과 확산까지 지원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디애니페스트가 배급사 씨앗과 협력해 활동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독립 애니메이션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재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품을 발굴하고 시장과 연결할 수 있는 전문 프로듀서의 부재가 아쉽다는 의견이다.


“감독 역량은 충분히 뛰어나지만, 좋은 프로듀서가 부족합니다. 작품 기획과 배급 전략을 세워줄 프로듀서가 많아져야 좋은 작품이 꾸준히 발굴되고 확산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이 ‘아버지와 딸’ 이후 지브리의 스즈키 토시오와 함께 ‘붉은 거북’을 만든 사례가 그걸 잘 보여줍니다.”


독립 애니메이션의 흐름 속에서는 늘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해 온 감독들이 존재해 왔다. 어떤 이는 작품을 통해 대중적 접점을 넓혀가며 산업과 맞닿았고, 또 다른 이는 철저히 자기 세계를 고수하며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한지원 감독처럼 대중적으로 확장 가능한 스타 감독도 필요하고, 정유미 감독처럼 ‘내 작업’을 고집하는 외길형 감독도 중요합니다. 성공 사례가 하나 만들어지면 일종의 붐을 일으키고, 그 스타 감독이 다른 창작자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거죠. 2000년대에는 이성강 감독, 2010년대에는 연상호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요. 지금은 정유미, 정다희 감독이 지금도 칸이나 베니스 같은 해외 영화제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작품의 양과 질은 꾸준히 성장했지만, 이를 관객에게 어떻게 도달시킬 것인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다. 특히 상업 배급망에서 소외되기 쉬운 독립 애니메이션의 경우, 형식과 길이에 따라 개봉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아 대안적 경로를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에 대해 추 프로그래머는 단편의 IP 전략이 유효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 독립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알릴 것인가’입니다. 장편은 배급과 마케팅이 어려워 개봉 장벽이 높고, 25~30분짜리 중편은 영화제 상영엔 길고 장편 개봉엔 짧아요. 그래서 시리즈화나 옴니버스 등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죠.”


독립 애니메이션의 성패는 결국 작품 자체만이 아니라 그 작품을 둘러싼 생태계의 활력에 달려 있다. 창작자와 관객 모두가 세대별로 끊임없이 새로 유입되고 섞여야, 실험의 흐름이 일시적 불꽃에 그치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추 프로그래머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꾸준히 새로운 창작자와 관객이 유입되는 것이 중요해요.. 젊은 세대의 창작자가 들어오고, 기존 세대와 섞이면서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구조가 유지되어야 독립 애니메이션이 계속 살아 숨 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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