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할 수 없는 금융감독원장의 일성(一聲) [기자수첩-증권]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5.09.10 07:01  수정 2025.09.10 07:01

"투자자 보호" 연일 강조하는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금투업계 CEO 첫 대면식서 "CEO 의지" 언급하며 핀잔

"투자는 셀프"…업계는 최종결정 '개인 책임' 강조

CEO 의지 탓하기 전에 금융당국이 먼저 구체적 방안 제시해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자료사진) ⓒ뉴시스

"최고 경영진(CEO) 의지와 실천에 달려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8일 금융투자업계 CEO들을 한자리에 모아 새초롬한 한마디를 남겼다. 투자자 보호 강화를 거듭 강조하며 사실상 책임이 CEO에게 있다고 했다. 취임 후 첫 대면식에서 핀잔부터 쏟아낸 셈이다.


증권사들이 발행어음 및 종합투자계좌(IMA) 인가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상황에서 금감원장이 'CEO 책임론'에 불을 지폈으니, 업계는 후속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썩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원장은 "회사 위험 및 내부통제 역량에 따라 우수 회사에는 자율관리 기회를 부여하는 등 감독 수준을 차등화해 회사 자율성·책임성을 유도해 나가겠다"고 했다. CEO들이 직접 투자자 보호 드라이브를 걸어 결과를 제시하면, 평가를 거쳐 감독 수위를 낮춰주겠다는 구상이다.


이 원장은 CEO뿐만 아니라 업계 종사자들의 책임감도 강조했다. "가족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면 판매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자 원칙"이라는 설명이다.


반복되는 불완전 판매 논란 등을 감안하면, 이 원장이 강조하는 투자자 보호 강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다만 변호사로 일해 온 그가, 일부 사모펀드를 '먹튀'로 규정한 그가, 업계의 '기본 사고방식'조차 용인하지 않는다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투자는 셀프'.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배우자가 주식 관련 질문을 쏟아내면 이렇게 답한다고 했다. 책임은 투자를 결심한 당사자가 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에게 못 권할 상품은 팔지 말라는 금감원장과 가족에게도 투자는 셀프라고 선 긋는 금융투자업계의 간극은 메워질 수 있을까.


금융당국이 꼼꼼하게 책임을 따져 묻기 시작하면, 업계는 투자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외에 달리 택할 길이 없다.


현실적으로 모든 위험을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우니 엄청난 분량의 약관을 고객에게 제시해 직접 읽고 서명토록 하는 방식이 유일한 출구이지 싶다.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비대면 거래 비중이 날로 높아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투자자 보호 강화 취지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금융투자상품에 가입하려면 몇 번의 동의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약관을 살피다 보면 '이걸 누가 다 읽나'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결국 '동의' '동의' '동의'를 체크하고 만다. 지금보다 '동의' 몇 번 더 한다고 투자자 보호가 강화될 리 없다.


투자자 보호 강화를 어떤 식으로 구체화할지 금융당국이 아이디어부터 제시할 필요가 있다. CEO 의지는 그 이후에 꼬집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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