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는 이름표의 무게…한국 뮤지컬 60년이 답하는 정체성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9.05 14:08  수정 2025.09.05 14:08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미국 토니상 6관왕을 차지하고, ‘위대한 개츠비’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한국 제작사의 이름으로 오르는 등 K-콘텐츠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 뒤편에서는 ‘K’라는 이름표의 무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NHN링크

지난 2일 열린 ‘뮤지컬포럼’에서는 ‘K-뮤지컬’이라는 인위적 규정을 넘어, 한국 뮤지컬 60년 역사가 축적한 고유의 본질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제는 ‘K’라는 수식어에 기댈 것이 아니라, 한국 뮤지컬만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세계로 나아갈 것인지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한국 뮤지컬의 역사는 1960년대 ‘혼종성(Hybridity)’에서 출발한다. 1961년 창단된 예그린악단은 서양의 뮤지컬 양식을 받아들이되, 한국적 소재와 정서를 녹여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1966년 초연된 ‘살짜기 옵서예’는 이러한 노력의 첫 결실이자, 한국 창작 뮤지컬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이후 한국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최신 작품을 발 빠르게 수입하며 양적 성장을 이룸과 동시에, 서구의 문법을 우리 식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한국 뮤지컬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구축했다. 화려한 쇼나 스펙터클에 치중하기보다, 인물의 깊은 감정선과 서사를 촘촘하게 쌓아 올리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주인공의 고뇌와 성장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관객이 인물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한국 뮤지컬의 가장 큰 특징이자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서사 중심의 특징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팬덤 문화를 탄생시켰다. 특정 배우나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관람하는 ‘N차 관람’은 이제 한국 공연계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팬들은 단순히 작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 회차 미묘하게 달라지는 배우의 연기와 감정선을 포착하고 해석하며 작품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이는 제작사에게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생명력을 길게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처럼 깊이 있는 서사와 이를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의 유기적인 결합이야말로 ‘K-뮤지컬’이라는 현상을 만든 실질적인 동력이다.


최근의 괄목할 만한 해외 진출 성과는 한국 뮤지컬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더욱 활발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어떻게 K-뮤지컬을 알릴 것인가’를 넘어, ‘무엇을 K-뮤지컬이라 부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당면한 것이다.


‘뮤지컬포럼’에서도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는 “K-뮤지컬의 정의는 관객의 몫”이라며 창작자들이 인위적인 규정에 얽매이기보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 뮤지컬의 글로벌 확장은 하나의 정형화된 모델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 전략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처럼 한국 제작사가 주도적으로 IP를 개발하고 브로드웨이 현지 창작진, 배우들과 협업해 세계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제작 시스템 수출’ 모델이다. 이는 한국 프로듀서들의 기획력과 제작 노하우가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두 번째는 ‘어쩌면 해피엔딩’이나 ‘마리 퀴리’처럼 국내에서 검증된 창작 뮤지컬의 라이선스를 판매하거나, 현지 언어와 배우에 맞게 번안하여 공연하는 ‘콘텐츠 현지화’ 모델이다. 특히 이 모델은 아시아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며, 한국 뮤지컬 특유의 서정성과 감성이 국경을 넘어 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일본, 중국 등에서 공연된 다수의 작품들은 현지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꾸준히 재공연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 뮤지컬은 때로는 현지 시장에 깊숙이 스며들고, 때로는 세계 뮤지컬의 중심을 직접 겨냥하는 유연하고 다각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K’라는 이름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가진 고유의 매력과 완성도를 통해 세계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다.


포럼에서 제기된 ‘뮤지컬산업 진흥법’ 제정의 필요성 또한 이러한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 이제는 K-팝, K-드라마와 같은 성공 방정식에 기대기보다, 뮤지컬 산업 자체의 안정적인 토대를 마련하고 창작 생태계를 강화하여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60년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한국 뮤지컬만의 힘, 즉 깊이 있는 서사와 열정적인 팬덤, 그리고 유연한 세계화 전략이 바로 ‘K’라는 이름표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고 나아갈 원동력이 될 것이다.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는 “긴 호흡과 안목으로 차근차근 지원, 개발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대극장 뮤지컬’ 방법론을 다각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해외에 진출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와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과는 보편성과 ’K‘적인 것의 결합, 융합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무엇이 ’K‘인가에 대한 질문이 상당히 많은데, 전반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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