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현상은 오랫동안 다수의 시청자가 콘텐츠 종류와 국가를 막론하고 제기한 문제다. 2024년 글로벌 온라인 과외 플랫폼 프레플리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0%는 자막이 있는 콘텐츠를 시청한다고 밝혔고 그 이유로 오디오의 문제를 꼽았다. 한국에서도 영화 '파과'와 '로비', 드라마 '나인 퍼즐' 등의 작품이 낮은 대사 전달력으로 관객의 지적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대사가 들리지 않는 원인이 배우의 부정확한 발음과 작은 목소리 탓으로 여긴다. 실제로 일부 작품에서는 배우의 부족한 발성과 대사 소화력으로 작품의 몰입을 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사가 들리지 않는 현상을 단순히 배우 개인의 역량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여러 가지 외부 조건이 작용한다.
우선 기술적 문제다. 작품의 스케일을 키우고 시각적 효과를 돋보이려 배경음에 힘을 실을 경우, 상대적으로 배우의 대사가 묻힐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SF, 액션, 스릴러 등의 장르에서 자주 발생하는데, 실제로 '비상선언'은 배우 이병헌이 직접 조종대를 잡으며 트라우마에 맞서는 장면에서 대사가 들리지 않아 몰입을 방해했고, '헌트'의 경우 극의 마지막 대사 '넌 다르게 살 수 있어'가 '넌 되게 섹시했어'로 들리며 작품의 감정선을 깨뜨렸다.
현장의 연출 방향 또한 문제다. 최은아 음향 편집기사는 2020년 출판한 도서 '영화하는 여자들'을 통해 "동시녹음 마이크 자체가 멀다"며 "붐 마이크가 화면에 들어오면 NG이니 일단은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배우들이 현장에서 했던 연기를 후시녹음을 다시 하려고 하면 힘들어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OTT 환경도 문제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등 OTT 콘텐츠는 모바일이나 가정용 TV 스피커로 감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적으로 양질의 음향 기기가 설치된 극장 환경에 비해 오디오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믹싱 단계에서는 극장 기준으로 음량이 설계되는 경우가 많아서 가정용 음향 기기로는 이를 온전히 전달받기 어렵다.
이러한 복합적 이유는 자막 의존 현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24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한글 자막을 제공하는 국내 프로그램에 대한 선호도는 20.6%로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OTT의 경우에는 한글 자막과 함께 시청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29.4%에 달했다. 이는 시청자들이 자막 없이는 대사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콘텐츠 제작 현장이 이미 자막이 제공된다는 전제 하에 대사 설계와 연출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배우의 딕션, 믹싱 방식, 그리고 시청 환경까지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진정한 몰입감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들리는' 콘텐츠가 귀해진 만큼 제작진의 섬세한 믹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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