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을 위한 이재명의 사법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5.14 07:07  수정 2025.05.14 08:56

표가 된다면 무슨 공약이든 다 한다

혼자 힘으로 세상 바꾸어 놓겠다?

민주당의 보복엔 독기가 서려 있다

법원이 정치권력 시녀화 자초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3일 경북 구미역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선 출정식을 가졌다. 이날 출정식의 주어는 ‘빛의 혁명’이었다. 이 후보를 비롯해 민주당 사람들이 즐겨 쓰는 용어인데 아마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파면 구속을 주장하던 군중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들었던 형형색색의 응원봉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노무현 정권이 ‘시민혁명’, 문재인 정권이 ‘촛불혁명’을 내세웠으니 자기들도 ‘혁명’의 기치를 들어야 하겠다고 여긴 모양이다. 좌파 정치세력으로서 ‘혁명’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빛의 혁명’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을 넓게 비추는 문, 광화문이라는 이름 그대로 우리는 이곳에서 칠흑 같은 내란의 어둠을 물리쳤다.”

이 후보가 이날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곳에서 응원봉을 들고 싸워 ‘빛의 혁명’을 이뤘다는 뜻이겠는데, ‘촛불혁명’보다 더 어색하고 낯간지럽기까지 한 이름이다. ‘칠흑 같은 내란의 어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선포 촌극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에서 해제까지의 몇 시간 동안 우리 국민은 ‘내란’을 감지할 수가 없었다. 사회 분위기가 어두워지지도 않았다. 선동의 효과를 더해줄 극적이고 인상적인 네이밍(naming)이야 말로 좌파 정치꾼이나 지식인들의 장기(長技)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표가 된다면 무슨 공약이든 다 한다

“이번 대선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결이 아닌, 내란으로 나라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헌정질서·민생을 파괴한 거대 기득권과의 일전이다.……내란수괴를 재판에 넘기고 대통령직도 박탈했지만, 헌법까지 무시하는 내란 잔당의 2차·3차 내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저들의 반란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서 ‘내란죄’를 철회했으면서도 이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의 유력자들은 ‘내란’ ‘내란 수괴’ ‘내란 잔당’이라는 표현을 예사로 쓴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는 헌법 제27조 4항의 규정은 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이들은 초헌법적 존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미 대단한 권력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후보는 이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생지인 경북 구미에서 유세를 이어갔다.


“진영이나 이념이 뭐가 중요한가. 박정희 정책이면 어떻고 김대중 정책이면 어떤가.……유치하게 편 가르기, 졸렬하게 보복하기 같은 일은 하지 말자. 상대방을 제거하겠다고 쫓아가서 뒤를 파고 하는 일은 안 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이 후보 정치행태와는 아주 다른 말을 태연하게, 확신에 찬 표정으로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레몽 푸앙카레를 화제에 올리자 조르주 클레망소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훌륭한 사람이야. 세상의 평판으로는 그 사람 안에 한 사람의 변호사가 있다고들 하지. 그러나 그렇지 않아. 두 사람의 변호사가 있는 것 같아. 그리고 항상 상반하는 소송에 손대고 있어. 대단한 솜씨야”(장수철, 세계의 유모어).

혼자 힘으로 세상 바꾸어 놓겠다?

이 후보는 표가 되는 공약이라면 어떤 것이든 할 기세다. 그러자니 상충되는 공약도 하게 되는데, 이는 진정성이 결여된 공약(空約)일 가능성이 높다. 그간 이 후보가 이끌던 민주당이 어떤 식으로 입법을 전횡해 왔는지를 생각하면 그의 탕평정책, 관용정책 공약은 빛바래고 만다. 길게 말할 것도 없다. 31차례에 걸친 탄핵소추를 발의했고 그중 13건을 헌법재판소에 넘겼으나 인용된 것은 지금까지 단 1건(윤 전 대통령 탄핵)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유감표명조차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무더기 탄핵소추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기고만장이다. 이 후보의 진짜 얼굴을 어느 쪽인가.


진영과 이념에 구애되지 않겠다는 말도 허언(虛言)이 될 공산이 크다. 좌파 정치인이 우파 행세를 하는 것부터가 스스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지만, 진영·이념 탈피는 자기 존재의 부정이나 다름없다. 절대왕권을 장악한 군주가 아니라면 가능할 수 없는 것을 공약이라고 내걸다니! 오만한 탓인가, 아니면 표를 얻기 위한 감언이설인가?


“이재명에게 일할 기회를 주시면 단 한 사람의 책임자가 얼마나 세상을 크게 바꾸는지 증명하겠다.”

출정식에서 한 말인데, 절대 권력자가 되겠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민주당 출신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취임사를 통해 한 말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통합과 공존’ 따위의 허황한 말이나 해댔으니 정치는 실종되고 극심한 정치·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초래됐을 수밖에. 이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놓을 듯이 말했다. 망상이 아니면 작정하고 하는 헛소리다.

민주당의 보복엔 독기가 서려 있다

그가 집권에 성공할 경우 ‘정치보복’ ‘야당탄압’은 정해진 순서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온갖 구설수와 겹겹이 가로놓인 사법 리스크를 수단 방법 안 가리고 헤쳐 나와 마침내 정권을 장악한 사람이 너그럽고 인자한 리더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 고기를 구한다)이기 십상이다.


사실 유권자들을 상대하는 그의 표정과 말만 바뀌었을 뿐 그를 아버지로 떠받드는 민주당 실세, 유력자들의 태도에는 달라진 게 없다. 입법권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이를 방탄의 수단, 혹은 보복의 수단으로 휘두르는 그들의 행태에는 독기가 서려 있다. 특히 사법부에 대한 이들의 도발·압박·위협은 전대미문의 험악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 등 이 후보 선거법 위반사건 파기환송에 찬성한 12명의 대법관과 법원 관계자 다수에 대해 바로 오늘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재판이 진행 중인데 자기들 기대를 거스른 최고법원의 구성원들을 모두 국회로 불러 따지겠다는 것이다. 일찍이 이런 행패를 벌인 정치세력은 없었다. 대법원 측이 불참 의사를 통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청문회를 강행하겠다고 한다.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이미지를 난도질하는 게 목적이라는 뜻이나 다를 바 없다.


조 대법원장을 탄핵소추하겠다고 얼러대더니 그건 미룬 모양이나 그에 대한 특검법안은 발의했다. 세상에, 대법원의 판결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런 식으로 대응하다니! 국가 삼권의 한 축인 사법부를 거대 정당이 입법부의 이름과 권한으로 유린하는 형국이다. 심지어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박진영 전 부원장은 지난 1일 “3권분립이 막을 내려야 할 시대가 아닌가 싶다”는 말까지 했다. 이 후보를 위해서라면 국가의 권력구조 자체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발상이다.

법원이 정치권력 시녀화 자초하나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은 이뿐이 아니다. 대법관 수를 현재의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대법원 판결을 헌재 헌법소원으로 다퉈볼 수 있게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등도 오늘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해서 법안심사 1소위로 보낼 방침이다. 대법관 수를 확대하면 대통령 임명 몫도 늘어난다. 헌재가 대법원 판결을 다루게 되면 3심제가 4심제로 바뀐다.


이에 앞서 민주당은 대통령 당선 시 공판 절차를 정지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법사위에서 처리했다. 공직선거법에도 손을 대, 이 후보의 파기환송심 이전에 처벌 사유를 없애버리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이미 대선 이전에 열릴 예정이었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대장동 개발 특혜 사건 재판, 위증 교사 혐의 2심 재판 등이 선거 이후로 미뤄지기도 했다. ‘이재명을 위한 이재명의 법원’이 된 셈이다. 법원이 자초하고 있는 사법부의 정치권력 시녀화라고 하겠다.


그래서 말인데,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 단임제 헌법 규정을 없애 장기집권의 길을 열고, 3권 분립체제를 대통령에게로의 권력 일원화 체제로 바꾸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으로 입법부를 장악하고 그 민주당을 대통령이 마리오네트 다루듯 하는데 무슨 일이든 못 저지를까.


보수성향을 뚜렷이 드러냈던 학자·언론인·정치인들 여럿이 이 후보 캠프로 뛰어드는 것으로 봐서 판세가 기울긴 했나 본데, 글쎄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누가 알랴.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0

0

기사 공유

1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 슛돌이
    얼마 안남은 내란당 나팔수가 발버둥을 치는구나.
    2025.05.14  09:37
    0
    0
1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