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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욱의 저격]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진보 진영의 성인지 감수성


입력 2021.01.28 07:00 수정 2021.01.28 05:27        최현욱 기자 (hnk0720@naver.com)

박원순·오거돈에 침묵했던 민주당인데

다른 당 성추행 사건 맹비난할 자격 있나

'친고제 폐지' 주장하던 정의당 행보도 아리송

가해자가 전직 대표인 사건은 고발하지 말라?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을 논의하기위해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전략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이 회의 시작에 앞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을 논의하기위해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전략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이 회의 시작에 앞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진보 진영의 성인지 감수성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마치 성경 구절처럼 '피해자'를 우선하며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고 일말의 관용도 베풀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던 그들인데, 정작 현실에서 하는 행동을 살펴보면 이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부하 직원 성추행 파문부터 시작해 최근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가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뒤 사퇴한 사건까지, 끊임 없이 반복되고 있는 진보 인사들의 성비위 사건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를 살펴보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진다.


최근 들어 가장 황당했던 대목은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세간에 공개된 이후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내놓은 논평의 내용이다.


그는 논평에서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며 "정의당은 입장문에서 발표한 것처럼 이 사건을 무관용의 원칙으로 조치를 취해야 하며, 아울러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물론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여비서 성추행 사건 당시엔 일언반구 없이 침묵하던 민주당이 다른 정당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 비난을 쏟아부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다른 정당이 '성추행 정당'이라는 오명을 대신 뒤집어 써줬으면 좋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 스스로는 이미 잘못을 완전히 망각했기에 남 얘기하듯 당당한 것인가.


평생을 여성운동에 매진했다는 당 여성 최고위원이 '피해 호소인'이라는, 생전 처음보는 해괴한 표현을 만들며 피해자의 눈물어린 호소를 애써 외면했던 것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가해자'에게 성대한 장례까지 치러주며 관용을 베풀었던 것 역시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한다.


최인호 대변인의 논평과 함께 머릿 속에 물음표가 떠오르게 했던 부분은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터진 이후 보여진 정의당의 행보다. 가해자인 김 전 대표가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고, 피해자는 심지어 자당의 의원임에도 형사고발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데 더해 해당 사건에 분개한 한 시민단체(제3자)의 김 전 대표에 대한 고발을 '2차 가해'라 규정하며 공세를 가한 것이다.


정의당은 성 관련 사건에서 피해 당사자가 원치 않는다 해도 제3자가 고발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친고제 폐지' 방안에 적극 찬성해 왔던 정당이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의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범죄 자체를 예방하고 가해자를 엄벌하자는 취지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던 정의당이 정작 김 전 대표에 대한 제3자의 고발을 비판하는 점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아리송할 따름이다.


많은 국민들도 진보 진영의 이런 이중적 태도에 의아함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직 여성가족부 장관의 발언을 빌려 표현하자면, 집권여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과 유력 대권주자의 성추행 사건으로 열리게 된 보궐선거에 '800억원이 넘는 혈세'를 들여가며 전 국민이 값비싼 '성인지 감수성 교육비'를 지불하게 된 상황이 작금의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민주당이 집권여당으로서 모범을 보이며 스스로 만든 당헌·당규에 따라 후보를 내지 않는 결정까지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는다. 박원순 전 시장이나 오거돈 전 시장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같은 당 소속 개개인의 서울시장이 될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다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정치 공세를 위한 성인지 감수성이 아닌 피해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성인지 감수성이 바로서는 대한민국 사회가 오길 바라며, 그 과정에 집권여당과 진보 진영이 앞장 서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최현욱 기자 (iiiai072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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