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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탐구⑧] ‘다만 악’ 레이 VS ‘신세계’ 이자성, 이정재가 멋있어 보일 때


입력 2020.08.02 14:00 수정 2020.08.09 19:33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이정재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정재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부산행2’라 할 ‘반도’, ‘강철비’의 후속작 ‘강철비2: 정담회담’이 연이어 개봉하자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신세계’ 2편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는 아니라 해도 그럴 만한 것이 황정민-이정재 ‘브라더’가 다시 만났고, 사나이들의 뜨거운 액션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 악’, 감독 홍원찬,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그야말로 ‘피가 끓어오르는’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다. 쫓는 자 이정재(레이 역), 쫓기는 자 황정민(인남 역)의 끝을 모르는 추격전. 코엔 형제가 연출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연상케 하는 두 남자의 대결과 추격이 일품이다.


인남을 쫓는 레이. '다만 악'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인남을 쫓는 레이. '다만 악'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저 남자에게 쫓기면 지레 포기하고 싶겠다’ 싶은 레이의 무섭고도 맹렬한 추격. 만일, 그저 레이를 따돌리는 것만이 인남의 목적이었다면 평가가 달랐을 수 있지만, 한국영화답게 영화를 풍성하게 할 이야기가 인남에게 보태졌다. 인남은 레이에게 맞설 힘이 없는 게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이 있기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고 그것이 레이의 추격을 피하는 결과가 된다. 그럴수록 레이의 추격은 거칠게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하지만 태양이 둘일 수는 없는 법, 두 남자는 뜨겁게 맞붙는다. 정면대결의 결과는 의외다,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볼 만하다.


‘다만 악’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인남 캐릭터는 애초에 다층적이다. 국정원 요원인데 버림받아 킬러가 됐고, 몰랐는데 한 아이의 아버지였고, 정상급 킬러였지만 내 가족을 지키는 건 버겁다. 그런데 이정재가 연기한 레이는 인물의 전사가 중요하지 않고, 인남을 쫓는 명분조차 강하지 않다. 내 형을 죽인 놈을 추격하는 것이지만 살갑게 지내온 형제도 아니다. 레이에게는 내 것에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독점욕이 있고, 영화 ‘추격자’의 엄중호(김윤석 분)와 같은 추격 본능이 있고, 백정 아버지에게서 보고 자란 ‘기법’이 있다. 그래서 더 레이는 쿨하고(cool, 멋진), 게임 캐릭터 같은 느낌이 있다.


매트릭스 세상에서 현실로 '다운로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매트릭스 세상에서 현실로 '다운로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정재는 레이를 무섭도록 잘 표현했다. 덕분에 레이에게는 잔인성을, 영화에는 추격의 속도감을, 관객에게는 공포감과 액션의 쾌감을 준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딴 생각할 틈 없이 즐겼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자꾸만 ‘신세계’의 이자성이 생각났다. 왜일까.


정청과 이자성. 영화 '신세계' 스틸컷 ⓒ㈜NEW 제공 정청과 이자성. 영화 '신세계' 스틸컷 ⓒ㈜NEW 제공

영화 ‘신세계’에서 이정재는 최민식과 황정민, 직업과 인정 사이에서 흔들렸다. 경찰청 수사기획과 강 과장(최민식 분)은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며 이자성(이정재 분)을 조폭 정청(황정민 분)이 회장인 기업형 범죄조직 골드문에 던져놓고는 8년을 방치한다. 들키지 않으려 신임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조직의 2인자가 된 이자성. 경찰은 나를 잊은 것 같은데, 정청은 “우리 브라더는 그냥 딱, 이 형님만 믿으면 돼야!” 형제애로 감싼다. 조직에 잠입한 언더커버 이자성, 나는 조폭인가 경찰인가.


이정재는 ‘신세계’에서 정중동의 연기를 펼쳤다. 대사가 많지 않아도 그의 고뇌가 이그러지는 표정에서, 흔들리는 눈빛에서 읽혔다. 조폭인데 조폭 같지 않은, 나쁜 편인데 나쁜 놈 같지 않은, 이정재는 ‘숨긴 패’가 있을 때 더 빛난다.


흔들리는 이자성 ⓒ출처=네이버영화 흔들리는 이자성 ⓒ출처=네이버영화

되짚어 보면, 영화 ‘태양은 없다’의 홍기는 절도와 사기에 능한 양아치인데 도철(정우성 분)을 그저 이용만 하는 건지 도철에게만큼은 또 다른 진심이 있는 건지 끝없이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홍기의 캐릭터는 풍부해진다. ‘오! 브라더스’의 오상우 역시 조로증에 걸린 이복동생 봉구(이범수 분)를 돈벌이수단으로만 여기는 건지 일말의 형제애를 느끼는 건지 매 순간 헷갈리고 하고, 그런 서로 다른 감정을 동시에 드러내기에 도대체 상우를 미워할 수가 없다.


영화 '관상' 스틸컷 ⓒ㈜쇼박스 제공 영화 '관상' 스틸컷 ⓒ㈜쇼박스 제공

‘도둑들’의 뽀빠이는 뻔뻔한 배신자지만 팹시(김혜수 분)를 향한 연정은 진심이다. ‘관상’의 수양대군은 내가 왕이 되기 위해선 조카의 목숨도 앗는 패륜아지만 누구보다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는 위정자이기도 하다. ‘신과 함께’의 염라는 단순히 지옥의 제왕이기만 하지 않고 강림(하정우 분)의 아버지라는 패를 가지고 있었다. ‘사바하’의 박 목사는 사이비종교 단체 비판 기사로 돈을 뜯는 사이비 목사처럼 보이지만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 사건에는 두려움 없이 맞선다. 단순히 변화를 보여 주는 다층적 캐릭터여서 빛난 게 아니다. 이정재는 그 누구보다 이중적 상황이나 인성을 한 얼굴에 표현해서, 그것도 조용히 표출해서 관람의 재미를 주는 데 능한 배우다.


데뷔 28년차, 다시 새로움, 이정재 ⓒ 데뷔 28년차, 다시 새로움, 이정재 ⓒ

물론 ‘다만 악’의 면모만 드러내고도 멋진 영화도 있었다. 영화 ‘하녀’. 주인남자, 훈을 그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영화 ‘다만 악’의 레이는 훈의 계보를 잇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감각 넘치는 패션, CG로 그린 것 같은 근육질 몸매마저도 패션의 일부다.


‘관상’에선 검은 털을 어깨에 두르고 짐승 이리처럼 등장하더니, ‘다만 악’에선 목도리 같은 문신을 목부터 귀 뒤까지 그렸다. 누아르 영화 같은 잿빛 영화에서 이정재는 혼자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느낌을 발산하며 황정민과 ‘퀵 앤 데드’, 먼저 쏜 자가 살아남는 정면승부를 펼친다. 레이가 훈처럼 배우 이정재의 필모그래피에 잊히지 않는 캐릭터로 남을지, 복합적 캐릭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지는 관객의 평가에 달렸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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