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정계성의 여정] "공정한 척이라도 하자"는 한동훈 말이 공감되는 이유


입력 2020.07.28 07:00 수정 2020.07.28 05:29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한동훈 검사장과 이동재 전 채널에이 기자의 이른바 '부산 녹취록'이 화제다. 검언유착 공모의 정황이 발견됐다고 일각에서 주장한 그 녹취록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자의 취재활동에서 나올 수 있는 대화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내용으로 보인다. 사실 저 정도 대화가 검언유착이라면 아마 정치부 기자는 거의 매일 티타임 혹은 식사를 빙자한 정언유착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른 '증거들'이 있다고 하니 검언유착 여부는 차치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게 본 대목은 한 검사장의 처절하리만큼 현실적인 '정의관'이 드러난 부분이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검사들은 정의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던 터였다.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회가 모든 게 다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어. 그런 사회는 없다고.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국민들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돼. 그 뜻이 뭐냐? 일단 걸리면 가야 된다는 말이야. 그리고 그게 뭐 여러 가지 야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걸렸을 때, ‘아니 그럴 수도 있지’하고 성내는 식으로 나오면 안 되거든. 그렇게 되면 이게 정글의 법칙으로 가요."


한 검사장의 정의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염치'다. 국민들이 보는 공론장에서 잘못한 점이 드러나면 속으로는 억울할지언정 사과부터 하라는 얘기다. 염치야 말로 우리 사회가 '약육강식'의 법칙과 힘의 논리로 가지 않도록 막는 최소한의 장치이며 이것만은 지키자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잡은 최고 '칼잡이'의 정의관 치고 소박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의 모습은 이러한 소박한 염치 마저도 사치가 되는 듯하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여권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176석의 거대여당이 된 민주당에서도 '쿨한' 사과는 자취를 감췄다. 박원순 피소 입장을 묻는 취재진에게 'XX자식'이라고 했던 이해찬 대표는 끝내 공개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수석대변인의 개별적인 대리사과만 있었을 뿐이다. "천박한 서울" 발언에 대해서는 언론보도 탓을 했다.


'잠행'을 풀고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에 대해 본인의 입장을 밝히던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입에서도 사과는 들을 수 없었다. 물론 유 이사장이 범죄혐의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 이사장을 믿고 신라젠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피해자들이 있을 수 있기에 최소한의 사과 정도를 기대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아들의 군복무 당시 휴가연장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마찬가지다. 추 장관의 주장대로 설사 군 복무규정 위반이 아니더라도 2번의 휴가연장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혹여 제 아들 사례로 허탈감을 느끼는 병사나 가족이 있다면 유감이다. 어떤 병사라도 질병이 있다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이라도 내놨어야 하지 않을까.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