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이 수사 받는데 쉼터 소장이 자살하다니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6.08 08:31  수정 2020.06.08 09:39

검찰과 기자가 의혹을 만들었나

할머니들의 배신감은 어쩌고?

지난 5일 열린 21대 국회 첫 본회의에 참석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마스크를 만지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의기억연대의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으로 근무하던 A씨가 6일 밤 숨진 채 발견됐다.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의 회계부정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이다. 쉼터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이 평소엔 거의 들르지 않았다고 하는 먼 거리의 자택에 가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사회적 반향과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 윤 씨(끝까지 버텨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는 했다. 그렇다고 꼭 ‘윤 의원’이라고 불러야 할 까닭이 있을까)의 충격과 고통과 슬픔이 클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7일 이른 아침부터 그는 쉼터에서 우는 얼굴로 유가족과 정의연 관계자들을 맞은 것으로 보도됐다.


검찰과 기자가 의혹을 만들었나


그런데 윤 씨는 경황이 없는 중에도 생각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A 소장이 숨진 바로 그날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작년 1월 두 사람 사이의 추억과 상대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아 올렸던 글을 다시 공유했다. A씨의 소식을 들은 다음이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곧 이를 지웠다고 한다. 그리고 7일 오후에는 절절한 애도와 친애의 정을 담은 ‘추도사’를 역시 페이스북에 올렸다. 충격 고통 슬픔이 가시지 않았을 텐데도 그렇게 감성이 풍부한 글을, 그처럼 잘 정리해서 쓸 수 있었다는 게 놀랍다. 뛰어난 문재(文才)를 가졌거나 강심장이거나 둘 중 하나이겠다.


그런데 뜯어보면 꼭 추도사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호소문이나 원사(怨辭) 처럼 읽히기도 한다.


“우리 복동 할매 무덤에 가서 도시락 먹을 일은 생각했었어도 /이런 지옥의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도 못했지요.”


윤 씨 자신에겐 이 상황이 ‘지옥의 삶’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A씨까지 그 삶을 나눠 살아야 했던 건 아니다. 윤 씨가 감당해야 할 몫인데 왜 그 때문에 A씨가 죽어야 했는지 짐작이 안 된다.


“기자들이 쉼터 초인종 소리 딩동 울릴 때마다./그들이 대문 밖에서 카메라 세워 놓고 생중계하며, /마치 쉼터가 범죄자 소굴처럼 보도를 해대고, /검찰에서 쉼터로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고, /매일같이 압박감.. 죄인도 아닌데 죄인의식 갖게 하고,”


기자들이 쉼터를 범죄소굴로, A씨를 범죄자로 봤을 까닭이 없다. 검찰이 A씨를 조사대상으로 삼았던 것 같지도 않다. 정의연 쉼터의 소장으로서 함께 괴로워했을 수는 있겠지만 윤 씨와 똑 같은 피해의식을 가질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윤 씨보다는 오히려 A 소장이 더 심한 압박을 받았다는 말이 되는데 이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윤 씨가 ‘우리 복동 할매’에 대한 애틋한 정은 추억하면서 다른 할머니들 말은 않는 것도 의아하다. 그 쉼터에는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함께 거주했던 모양인데 이제는 길 할머니만 계신다고 한다. 그렇다니까 드는 생각이다. 이 단체 저 단체에서 할머니들을 나누어 보호하면서 자기들 단체의 활동 명분과 근거로 삼아왔던 것은 아닐까?


할머니들의 배신감은 어쩌고?


윤 씨가 검찰과 기자들이 자신에게 ‘지옥의 삶’을 강요하는 듯이 썼던데. 그 자신은 이용수 할머니 같은 분들의 처지를 염두에 두고 살아 왔을까? 이 할머니는 A 씨가 숨진 그날 ‘대구‧경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에 참석해서 “정대협(정의연의 전신)이 위안부를 30년이나 팔아먹은 게 지금 드러났다”고 개탄했다. 또 “안 죽고 살아온 우리를 왜 팔아 먹냐”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2008년에 세상을 떠난 심미자 할머니와 그의 ‘세계평화무궁화회’ 회원들도 윤 씨와 그가 이끌던 정대협에 심한 거부감을 표했었다. 특히 심 할머니는 ‘정대협은 위안부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정대협은 고양이, 위안부는 생선’이라는 말을 일기장에 남겼다.


이분들이 그 오랫동안 윤 씨 자신과 정대협으로 인해 겪었을 마음의 고통과 배신감에 대해서는 왜 한 마디도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정대협 편’이 아니어서? 내가 알게 모르게 남에게 끼친 고통에 대해서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과 측근에게 닥친 고난에 대해서는 이처럼 절절히 애통과 슬픔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 심리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여러 지원 단체들의 30년에 걸친 정성과 노고를, 윤 씨의 문제 때문에 가벼이 여길 생각은 전혀 없다. 진심으로 피해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해온 분들의 단체라면 감사와 존경을 보내야 마땅하다. 그래서 더욱, 윤 씨 의혹의 조속한 해소가 요구된다.


윤 씨는 이미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의원의 특권 뒤에 숨을 뜻이 없음을 밝혔다. 그런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A 소장의 죽음을 여론 반전의 계기로 삼을 생각 같은 것은 아예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오히려 이 상황을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는 것이 진정한 봉사자로서의 자세일 것이다. A 소장의 극단적 선택도, 검찰 언론 여론의 탓으로 돌릴 일이 결코 아니다. 이 또한 윤 씨 자신에게서 비롯된 일임을 깊이 깨달아야 옳다.


그는 너무 잘 정리되고 심금을 한껏 울리는 긴 추도사를, 영결식전에서도 아니고 자신의 SNS에, 부고가 전해진 바로 그날 올렸다.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마련이지만 의아함을 떨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말인데 검찰은 ‘강압 수사’ 오해를 받을까봐, 이를 부인하는데 신경을 쓰기보다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사필귀정’을 국민에게 입증해 보여주는 것이 바로 검찰의 책무일 것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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