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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백스테이지] 1930년대 대공황과 '씨비스킷'의 전설


입력 2020.05.24 09:54 수정 2020.05.24 09:55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뮤지컬 '알렉산더' 배경 된 1930년대 경마

'씨비스킷'과 '알렉산더' 관통하는 경주마의 슬픔

뮤지컬 '알렉산더' 공연 장면. 뮤지컬 '알렉산더' 공연 장면.

"난 혼자 있을 때만 달려. 내가 얼마나 빠른지 들키면 안 되니까."


어린 말 알렉산더는 자신의 재능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숲속에서만 달린다. 왜 재능을 숨겨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세상을 떠난 어미말의 당부만을 가슴에 새긴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알렉산더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뭉클하다.


뮤지컬 '알렉산더'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배경으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경마를 소재로 한다. 당시 주 정부들은 기업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양산되고 세금이 걷히지 않자, 재정확충 및 고용창출을 위해 경마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때부터 경마는 메이저리그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지만, 돈이 오고 가는 현장은 말들에게 지옥과 같았다.


혹독한 훈련으로 정상에 필드를 질주하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것도 잠시, 늙고 지쳐 전성기가 지나거나 부상이 찾아오면 한순간에 생명을 잃게 된다. 당시 경주마는 돈벌이의 수단이었을 뿐, 누구도 치료해주지 않았다.


뮤지컬 '알렉산더'는 바로 그 당시 경주마의 이야기다. 누구보다 빠르고 누구보다 강했던 알렉산더를 바라보는 어미말은 늘 불안하기만 하다. 자신이 걸어온 고통스러운 삶을 자식이 되풀이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이야기는 1930년대 경주마 씨비스킷의 이야기와 비슷한 면이 많다. 서로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씨비스킷과 알렉산더 모두 경주마로서의 삶을 철저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1933년 태어난 씨비스킷은 명마 맨 오 워(Man o' War)의 손자 말이었던 만큼, 사람들의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맞고 자란 씨비스킷은 훈련을 거부하며 미친 말처럼 날뛰었고, 혈통과는 어울리지 않는 놀림감이 됐다. 누구도 씨비스킷을 감히 조련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람이 직접 연주하는 만큼, 알렉산더에겐 애틋한 모성애가 더해졌다. 어미말의 당부 덕에 재능을 숨긴 알렉산더는 마차를 끌며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혹독한 훈련과 채찍질에선 자유롭지만, 어딘가 모를 허전함이 알렉산더를 감싼다.


뮤지컬 '알렉산더' 공연 장면. 뮤지컬 '알렉산더' 공연 장면.

하지만 명마는 결국 명조련사가 알아본다고 했던가. 씨브스킷과 알렉산더 내면에 불길처럼 솟아 있는 불굴의 영혼은 명조련사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씨비스킷은 기수 레드 폴러드와 조교사 톰 스미스를 만나면서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무례하고 거칠었던 씨비스킷은 이들의 조련을 받으며 신기록 제조기로 변모했다. 씨비스킷은 큰 상금이 걸린 경마대회를 하나씩 제패해나갔고, 씨비스킷의 반전 드라마는 미국의 라디오를 타고 전국을 뒤흔들었다.


특히 1938년 서부의 최강 명마 시비스킷과 동부 최고 명마 '워 애드미럴(War Admiral)'과의 맞대결은 아직도 '세기의 대결'로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알렉산더를 알아본 건 조교사 빌리다. 당시 경주마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쓰고 버리는 행태에 회의를 느껴 마사를 떠났던 빌리는 우연히 알렉산더의 특별함을 알아본 뒤 마사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차를 끌던 알렉산더는 빌리의 조련 속에 어미말처럼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트랙으로 향한다.


씨비스킷과 알렉산더의 이야기 속엔 인간의 욕망으로 처절하게 짓밟힌 말들의 삶이 담겨 있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준 조련사 덕분에 당대 최고의 명마로 우뚝 설 수 있었지만, 결국 그들 또한 혹독한 훈련과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과연 정상을 밟은 이들의 삶은 행복했을까.


뮤지컬 '알렉산더'는 돈과 명예, 성공한 삶과 평범한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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