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만나자' 공개 구애하는 트럼프 대통령
"30일 오후 만남 배제 못해"…판문점 움직임도
北美 '물밑 접촉' 소식 들리지 않아…가능성 낮다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만난 북미정상 ⓒ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 의지를 거듭 밝히며 '깜짝 만남'을 유인하고 있다.
지구상 마지막 냉전의 섬으로 불리는 한반도, 그중에서도 분단과 대결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 파주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는 장면이 또다시 연출된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될 전망이다.
두 정상의 예측 불가능한 스타일상 이른바 '번개회동'과 같은 회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직전 최선희 북한 외무상의 러시아·벨라루스 순방을 발표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27일 백악관 공동 취재단에 따르면 지난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순방길에 미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 안에서 전날 언론과 가진 문답에서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려면 뉴클리어 파워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에 열려 있느냐'는 질의에 "나는 그들이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 말은, 나는 그들(북한)이 얼마나 많은 무기를 갖고 있는지 알고 있고,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나는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들이 뉴클리어 파워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글쎄, 나는 그들이 핵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 방문 도중 김 위원장과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날 가능성을 묻자 "그가 연락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며 "지난번(2019년 6월) 그를 만났을 때 나는 내가 한국에 온다는 걸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가 만나고 싶다면, 나는 분명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터넷 말고는 방법이 별로 없다. 알다시피, 전화 서비스가 거의 없다"며 "하지만, 그는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를 만나는 데에) 100% 열려 있다. 나는 그와 아주 잘 지냈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대언론 전화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이번 순방 일정에는 없다"면서도 "대통령이 물론 미래에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한 일정은 총 1박 2일이다. 오는 29일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30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 회담이 계획돼 있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30일 오후 일정이 따로 계획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북미 정상 '깜짝 회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번 만남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는 자신들이 내건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의제에서 제외하라'는 요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보유국' 발언은 북미 정상 회동을 성사시키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유인책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의 호응 여부에 따라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진행됐던 '깜짝 회동'이 재연될지가 한반도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북미 양측에서 회동 가능성에 대비하는 징후와 단서들을 종합해 보면 만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유엔군사령부의 판문점 특별견학이 중지와 북측에서 최근 판문점 북측 시설을 1년 만에 미화 작업하는 동향이 관찰됐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북한이 최근 판문점 일대에서 청소·화단 정리 등 미화 작업과 사진촬영을 하는 동향이 포착됐다며 1년 넘게 없던 움직임이 최근 일주일 사이 관찰됐다고 전했다. 북미 접촉 가능성에 대해서는 공식 확인된 물밑 접촉은 없지만 여러 단서와 징후가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이미 확인됐고, 김 위원장도 메시지를 신중히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방한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 2019년 판문점 회동 당시 핵심 역할을 했던 최선희 외무상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순방길에 오르면서 회담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미 외교 실무 총책인 최 외무상이 없는 김정은-트럼프 회동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는 측면도 유의해야 한다"며 "만약 깜짝 회동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최 외무상을 비롯한 모든 대미 실무팀들이 비상대기 상태에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본격적인 회담보다는 '짧은 만남'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해석된다. 공식 회담이 아니더라도 DMZ에서 북미 정상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면, 양측이 다시 대화의 불씨를 살릴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이번 만남이 이뤄질 경우 교착된 북미 대화의 새로운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예측 불가능한 성향을 감안할 때, 즉석에서 제3차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반면 우리 정부는 북미 대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데일리안에 "현재 북미 간 물밑 접촉에 대한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오현주 국가안보실 3차장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 간담회에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날 가능성에 대해선 "추측과 기대는 구분해서 다뤄야 한다"며 "두 분이 만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미국으로부터 '북미 회동을 성사시켜 달라'는 요청이 없었느냐는 질문에도 "내가 아는 지식과 정보로는 그런 요청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지난 2019년 (판문점) 북미 회동도 30시간 만에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그 30분 안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지금 그런 상황이 오면 저희도 그 정도 시간 안에 내부적으로 준비할 역량이 된다"며 "북미 간 회담은 일단 어떤 상황이든지 만나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3일 미국 CNN 방송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상대를 만나 대화하는 것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첫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며 북미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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