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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는 안되고, 보상부담은 커지고"…시중은행 펀드 리스크 속앓이


입력 2020.05.14 06:00 수정 2020.05.14 05:28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기업은행 '디스커버리 펀드' 투자원금 중 일부 지급 검토 중

은행 사모펀드 판매 크게 줄어들어 '여론 리스크 관리' 절실

서울 을지로 은행가 모습(자료사진) ⓒ데일리안 서울 을지로 은행가 모습(자료사진) ⓒ데일리안

기업은행이 환매 중단된 '디스커버리 펀드' 투자 원금 일부를 투자자들에게 선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부실이 발생한 펀드를 판매한 은행들이 투자 피해금 선지급 문제를 두고 고심이 커지고 있다.


은행권 내에선 투자자 피해 보상 방안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는 불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라임‧DLF사태 등 대형 금융사고의 여파로 은행을 통한 펀드 판매실적이 뚝 떨어진데다 당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무리한 보상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펀드 배상과 관련해 선지급 비율을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다. 이미 기업은행은 수석부행장을 단장으로 하는 '투자상품 전행 대응 TF'를 꾸리고 피해보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하나은행은 1100억원어치를 판매한 이탈리아 헬스케어 사모펀드의 손실이 예상되자 투자자에게 선제적으로 보상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신한금융도 3799억원 규모의 독일 헤리티지 펀드에 대해 투자 원금 50% 가지급을 결정했다.


그사이 은행의 펀드판매 창구는 썰렁해졌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사모펀드 판매 규모는 23조 5805억원으로 8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2월 말 기준 개인 투자자 대상 사모펀드 판매 잔액은 22조7004억원으로 DLF‧라임사태 이전인 지난해 6월 말(27조258억원)에 비해 4조원 이상 줄었다.


판매 은행별로 보면 우리은행의 판매 잔액은 3조7499억원으로 지난 7월(7조5533억원) 대비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펀드 사태 리스크'가 없었던 국민은행은 8개월 간 1조4168억원이 홀로 증가했다.


은행권 입장에선 선제적 보상이라는 '배임 위험'이 도사리는 무리수를 둬서라도 고객유치에 나설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거액의 손해가 불가피한 성난 투자자들이 은행 본점 앞에서 현수막을 펴고 시위를 벌이는 것도 무시 못 할 리스크다.


'펀드사태' 논란에 휩싸인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은행 이미지가 펀드 사태로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 선제적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권 내에선 '투자에 따른 손실은 투자자 본인이 책임져야한다'는 투자 기본원칙과 어긋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펀드 판매에 따른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원금을 보전해달라는 투자자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는 '떼법'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우려다.


아울러 은행권의 투자자 보상 검토 움직임에는 금융당국 압박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본격적인 제재조치로 칼을 뽑아들기 시작하면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까지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선제적 대응으로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뜻도 숨어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자신이 직접 나서야하는 분쟁조정 보다 금융사와 투자자 간 자체해결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최근 펀드 판매와 관련해 담당 임직원이 금융당국에 불려갔다 온 뒤로 '선제적 보상 적극 검토'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면서 "은행들 입장에선 당국과 더 엮이기 전에 사태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작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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