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사업 재편 성공 후 내일을 위한 '내 일' 마련 부족
과거 위기 극복 저력으로 돌파구 마련해야
두산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맥주와 햄버거를 팔던 기업이 대수술 끝에 중공업 회사로 전환하며 가까스로 회생했지만 이제는 중공업이 두산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0년대 초, 중후장대 기업으로 전환 당시 두산의 구조조정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산 스스로 위기를 시인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소비재 위주의 사업을 영위하던 두산은 저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대신 과감히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며 현재의 사업 토대를 닦았다.
사업 재편이 성공하자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은 2012년 4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면서, 가장 빠르게 변신하고 성장한 회사"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구조조정 약발이 다한 것일까. 두산은 이후 세계 변화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지속적인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를 겪었다. 수 년간 세계 에너지 기조가 친환경으로 변모해왔음에도 불구, 두산중공업은 매출의 70% 이상을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했다.
더구나 만성적자인 두산건설을 처분하는 대신 약 2조원을 쏟아부으며 부담을 가중시켰다.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정부의 '탈원전' 펀치까지 맞게 되자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 사업, 두산DST, 두산건설 HRSG 사업 등이 알짜 사업들이 모두 팔렸고 미래 먹거리로 육성한 두산솔루스·퓨얼셀마저 매각 대상으로 이름을 올렸다.
두산의 경쟁력 저하는 1990년대 구조조정 당시 보여줬던 냉철한 위기의식과 리더십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 것과 무관치 않다. 기존 사업 구조에 안주하며 신사업 투자에 속도를 내지 않았고 부실 자회사를 과감히 떼어내지 못한 채 좀비처럼 계속 살려낸 것이 문제였다.
전문경영인 체제였다면 진작에 칼질당했을 사업들이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한 경직적인 문화도 한 몫했다.
두산의 홍보 슬로건 '사람이 미래다', '두산은 지금 내일을 준비합니다'는 대부분이 알 정도로 유명하다. 슬로건이 무색하게도 두산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미래를 대비한 사람은 없었고, 내일을 위한 '내 일'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두산은 과거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저력을 보여줬던 회사다.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과거의 DNA를 되살려 다시 도약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두산에게 진짜 '내일'이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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