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칩거도 외유도 곤란…옛 '제3지대' 거물들 향후 행보는


입력 2020.04.20 04:00 수정 2020.04.20 05:12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국민이 부를 것 같지 않으면 오히려 못 물러나"

손학규, 과거엔 위기마다 춘천·강진 칩거 선택

이번엔 "건강 있고 왕성한 정신 있다" 활동 의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손학규 민생당 전 상임선거대책위원장, 정동영 민생당 의원(사진 왼쪽부터).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손학규 민생당 전 상임선거대책위원장, 정동영 민생당 의원(사진 왼쪽부터).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4·15 총선을 통해 완전 소멸한 '제3지대'를 이끌던 명망가 정치인들의 행보가 아리송해졌다. 너무나도 거대했던 정치실험이 너무나도 거대한 파국으로 끝나버렸기에, 예전과 같이 시대와 국민이 언젠가 다시 부를 것을 확신하고 칩거하거나 외유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손학규 민생당 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손 전 위원장은 한창 정치적으로 주가가 있고 다시 불려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에는 위기에 몰릴 때마다 줄곧 정치일선 후퇴나 칩거를 선택해왔었다.


손학규 전 위원장은 2008년 직전해에 정권을 빼앗기고 야당으로 전락한 통합민주당 대표를 맡아 직접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 하지만 박진 의원에게 패하자 미련없이 대표직을 내려놓고 강원 춘천으로 내려가 꼬박 2년여 칩거 생활을 가졌다. 칩거 생활은 2010년 7·28 재보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에서 복귀 요청이 나오면서 끝났다.


2012년에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하자 독일로 떠났다가 약 1년여만에 귀국했으며, 2014년 7·30 재보선 때는 수원 팔달에 출마했다가 김용남 전 의원에게 패하자 이튿날 바로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 만덕산 토굴에 칩거했다. 이 때에도 2년여 칩거 끝에 국민의당의 거듭된 '러브콜'을 받고서야 정계에 복귀했다.


춘천 칩거, 독일 외유, 강진 칩거 때에는 시대와 국민이 언젠가 자신을 다시 찾고 불러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여건은 그렇지가 못하다.


2018년 9·2 전당대회 때 바른미래당 대표를 맡은 이후 계속되는 내홍 끝에 유승민·안철수 전 대표와 연속적으로 결별했으며, 바른미래당과 대안신당·민주평화당의 3당 합당도 당대표에 연연하다 타이밍을 놓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스스로 비례대표를 신청하고 잠시나마 순번 2번을 받았던 것은 손 전 위원장의 정치적 이미지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시켰다는 분석이다.


옛 바른미래당 핵심관계자는 "정치인은 국민이 부를 것 같으면 역으로 물러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부를 것 같지 않으면 오히려 물러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손학규 전 위원장은 과거 위기 때마다 미련없이 정치일선 후퇴나 칩거를 선택했던 것과는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총선 이튿날인 1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에 선거를 하면서 여러 군데 가니까 '어이구, 그렇게 젊으세요' 그러더라"며 "내게 아직 건강이 있고 새롭고 왕성한 정신이 있다"고 강한 현역 정치활동 연장 의지를 드러냈다.


민생당 일각에서는 김정화 공동대표가 천명한 5월말 전당대회에 손 전 위원장이 다시 출마해 민생당 당권을 잡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동영, 험지출마·칩거 뒷배 됐던 전북 지지 상실
순창 칩거는 총선 '부름'에 대한 확신 있었지만…
이젠 "향후 진로, 천천히 생각" 정계은퇴 선그어


전북 전주에서 첫 낙선의 고배를 마신 정동영 민생당 의원도 마찬가지다. 정 의원은 지난 1996년과 2000년에 전주 덕진에서 출마했을 때에는 88~89%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정 의원이 대선 출마와 서울 동작·강남·관악 등 각종 '험지'를 떠도는 정치 모험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전북의 압도적 지지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2007년 대선과 이듬해 총선에서 잇달아 패한 정동영 의원은 미국으로 훌쩍 출국했다. 당시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미국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배웠다는 정 의원은 8개월 간의 외유를 마치고 2009년 귀국, 전주 덕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그 스스로 72.2%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된 것은 물론 이웃 지역구인 완산갑에 무소속 연대로 출마한 신건 전 의원까지 동반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2012년 총선에서 다시 험지 출마를 단행했다가 낙선한 정동영 의원은 이후 여러 차례의 재보선에서 출마 의지를 드러냈으나 이뤄지지 않자, 2015년 재보선에 무소속으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러자 돌연 고향 전북 순창으로 내려가 칩거하며 감자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동은 언젠가는 누군가가 자신을 찾고 부르리라는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한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2016년 총선이 다가오자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물론 국민의당 권노갑·정대철 고문, 국민회의 천정배 의원 등이 잇달아 순창까지 찾아와 손을 내밀었다. 정 의원은 국민의당의 손을 잡고 정계에 복귀해 전북을 휩쓰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전주 덕진에서 김성주 당선인에게 큰 격차로 패배한 지금은 해외 출국이나 칩거 등을 함부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 의원은 투표일 직전 "이번 총선이 마지막 선거"라고 배수진을 쳤으나, 선거 결과가 나온 뒤에는 "(향후 진로는) 천천히 생각하겠다"며 정계은퇴와는 선을 그었다.


'3석 확보' 국민의당 안철수 상황 가장 낫지만…
地選 직후와 같은 '외유 카드'는 꺼낼 수 없어
대선까지 2년도 안 남아…각자 역할 모색할 듯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지난 2018년의 서울시장 선거 패배 직후와는 달리 지금은 독일이나 미국 외유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시와 달리 지금 그랬다가는 정말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안 대표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의 국민의당은 친안철수계 단일 계파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총선 결과가 3석 획득에 불과해 당초 내건 목표나 기대에 크게 못 미쳤는데도 당내에서 안 대표의 '책임론'을 추궁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3석이나마 국민의당을 기반 삼아 향후 정계개편을 기대해볼 수 있는 처지인 셈이다.


한때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됐고 실제로 대선 본선이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바 있는 이들 명망가 정치인들은 향후 정계의 변화 과정을 예의주시하며 자신이 역할을 할 공간을 모색할 것으로 점쳐진다.


2022년 3월에 대선이 치러진다. 채 2년도 남지 않았다. 오는 8월에 열릴 예정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양당의 전당대회는 사실상 대권 레이스의 시작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2022년 대선은 이번 총선의 연장선상에서 양자 구도로 치러질 게 분명하다"며 "손학규 대표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정동영 의장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정치적 인연이 깊으며, 안철수 대표는 아직까지 본인이 대권주자로서 가치를 상실하지 않았다. 각각 진보와 보수 측의 대권 레이스에서 역할을 할 여지가 남아 있다"고 내다봤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