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물갈이 통합당, 28% 교체 민주당에 참패
시대 변화의 흐름 못 읽고 밀실공천 구태 답습
이젠 공천 과정·절차부터 투명·공정 보장돼야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2월 26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4·15 총선 공천 과정에서 현역 국회의원 '물갈이'를 더 많이 한 정당이 패배했다. 총선 승리 공식이던 '물갈이 신화'가 깨지면서, 밀실공천의 구습을 타파하고 투명하며 공정한 새로운 공천 문화를 논의하는 장이 열릴지 주목된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공천 과정에서 현역 의원 44.0%를 '물갈이'한 미래통합당이 103석에 머물러, 현역 의원 27.8%를 '물갈이' 하는데 그쳤는데도 180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에 참패했다. 현역 의원의 '물갈이' 비율이 큰 정당이 승리한다는 역대 총선의 '승리 방정식'이 깨진 것이다.
통합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유독 '현역 의원 물갈이'에 집착해왔다. 통합당 관계자는 "다른 혁신이나 이렇다할 쇄신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저 현역 의원 '물갈이'만을 유일한 승리 공식으로 여기고 집착한 탓"이라고 말했다. 현역 의원 '물갈이'를 많이 해야 이긴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심지어 공천관리위원회가 구성되기조차 전에 총선기획단에서 먼저 현역 의원 '물갈이' 비율을 못박고 나설 정도였다.
반대로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 본인이 2016년 총선에서 왜 공천배제됐는지도 모르고 공천 탈락된 아픔이 있어, 감점은 있을지언정 경선 기회만은 폭넓게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이석현·이종걸 의원은 물론 심지어 금태섭 의원까지도 낙천은 됐지만 그 과정에서 경선을 거쳤다. 대부분의 현역 의원들이 경선 과정에서 인지도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승리하면서, 민주당의 현역 '물갈이'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총선 승리 방정식'이 깨지게 된 원인으로는 시대의 변화가 꼽힌다. 과거 정당 구성원들이나 유권자는 공천 결과만 참신해보이면 인정했으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공천 결과 뿐만 아니라 그 과정과 절차에서도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통합당 관계자는 "'물갈이 공천'이란 본래 후보의 공천 뿐만 아니라 공천 준 후보의 당선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제왕적 총재'의 정치적 결단으로부터 비롯됐던 것"이라며 "실제로 옛날 '3김'은 새로 '젊은 피'를 수혈할 때 오랜 '가신'이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그 지역구에 지원 유세 한 번 가서 손만 들어주면 신인을 당선시켜줄 수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정당이 인물 중심 정당에서 가치 중심 정당으로 변화할 뿐만 아니라, 시대 흐름에 따라 더 이상 그런 카리스마적인 정치지도자도 존재하지 않게 됐다. 당장 통합당만 해도 이번 총선에서 황교안 전 대표가 누구 한 명 당선 책임져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자기자신조차 스스로 구해내지 못했다.
각 지역구의 통합당 후보자들도 황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조차 공보물에 싣지 않는 판국이었다. 이처럼 당선을 책임질 수 없는 인물이 공천에 관여해서 '물갈이'를 좌우하는 행태가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들로부터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세상이 됐다는 지적이다.
통합당 관계자는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의원회관 방 하나 잡고 들어앉아 전화기 꺼놓고 자기들끼리 서류를 뒤적이며 공천을 낙점 주던 구시대적 밀실공천 행태가 반복됐다"며 "이같은 모습이 아무도 납득시키지 못하고 누구도 승복시키지 못하면서 총선 패배를 자초했다"고 개탄했다.
또다른 정치권 관계자도 "통합당의 김형오 위원장은 '저승사자'처럼 '칼날'을 마음껏 휘두른 반면, 민주당의 원혜영 위원장은 국민들이 누가 공관위원장인지도 모를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라면서도 "결국 총선 결과를 보면 누가 공천을 잘했는지는 드러난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새누리당, 휴대전화 안심번호 경선 도입 주장
정작 이번 총선에선 민주당이 쏠쏠히 써먹어
당헌당규 개정할 때 상향식 공천 고민 담아야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1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당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통합당의 시각에서 볼 때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같은 시대 변화의 흐름을 보수 정당이 먼저 읽어냈는데도 이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더 이상 '밀실공천'을 답습하지 않고 전국 253개 모든 지역구에서 휴대전화 안심번호 추출을 통한 전면적 상향식 공천을 실시하려 했다. 이를 위해 미리 더불어민주당과 협상해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당내 경선 등을 위한 여론조사에 휴대전화 안심번호 사용을 가능하게끔 하는 조항까지 마련했다.
종래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라 불리던 당내 공천 기구의 명칭을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로 바꾼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더 이상 공천을 '심사' 하지 말고, 경선을 '관리'만 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같은 파격적 시도는 청와대의 하명에 따라 임명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전횡에 따라 무위로 돌아갔다.
이번 4·15 총선을 앞두고서는 현역 의원을 대량 '물갈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전면적인 상향식 공천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 사이에 오히려 민주당이 과거 새누리당이 주장해 삽입된 휴대전화 안심번호 조항을 적극 활용해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잡음 없이 경선을 치러냈다.
기왕 '물갈이 많이 한 쪽이 공천에서 승리한다'는 헛된 '신화'가 깨진 이상, 보수 정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헌·당규를 정비할 때 투명하고 공정한 새로운 공천 문화 정립을 위한 고민을 담아내야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보수 정당이 공천 때마다 내홍을 겪는 것이 2008년 총선부터 연속 네 차례 16년째 반복되고 있다"며 "같은 실수를 두 번만 반복해도 '바보' 소리를 들을 판인데 네 번째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으니 당원과 지지자들도 한심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왕 '물갈이 많이 한 당이 이긴다'라는 잘못된 '승리 방정식'이 깨진 이상, 새로운 공천 문화를 차분히 정립하면 좋을 것"이라며 "당헌·당규를 정비하면서 이번 공천 과정에서 악용된 추가 공모의 무한정 남발 등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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