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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열전⑨] '스토리'의 김동연, '반기문 트라우마' 불식이 과제


입력 2020.08.05 04:00 수정 2020.08.05 05:14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정권에서 중용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에 우려 표명

"김동연과 보수정당 심리적 거리 가까워졌다"

자천타천으로 범보수 진영의 잠룡(潛龍)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사진 왼쪽 위부터 홍준표 무소속 의원, 김태호 무소속 의원, 나경원 미래통합당 전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홍정욱 전 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검찰총장,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 순서는 원내와 선수(選數)를 우선으로 하되, 선수가 같을 경우 성명 가나다순이다. ⓒ데일리안 사진DB 자천타천으로 범보수 진영의 잠룡(潛龍)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사진 왼쪽 위부터 홍준표 무소속 의원, 김태호 무소속 의원, 나경원 미래통합당 전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홍정욱 전 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검찰총장,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 순서는 원내와 선수(選數)를 우선으로 하되, 선수가 같을 경우 성명 가나다순이다. ⓒ데일리안 사진DB

미래통합당 당헌 제73조는 대선 240일 전부터 대선예비후보 등록을 받도록 규정한다. 20대 대선은 2022년 3월 9일이다. 역산하면 통합당의 대선예비후보 등록은 내년 7월 12일부터다. 우리나라 적통(嫡統) 보수정당의 대권 레이스가 불과 1년 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최근 통합당 내에서는 흥행과 감동, 확장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대선후보 경선을 하자는 논의가 물밑에서 한창이다. 한 종합편성채널의 인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처럼 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기류로 볼 때 대선후보 경선 일정이 당헌에 정해진 것보다 더 빨라지면 빨라졌지, 늦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4년만에 다시 미래통합당 안팎의 화제로 돌아왔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4년 전인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한 직후, 정진석 대표권한대행과 기획재정부 차관 선배인 김광림 의원에 의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삼고초려를 받으면서 화제가 됐었다.


총선 직후 패배한 보수정당의 '구원투수'로 거론된다는 점에서 4년만에 도돌이표처럼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다만 그 사이에 체급은 확 불었다. 이번에는 대권주자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거론이 된다.


문재인정권의 첫 경제사령탑을 맡았던 김동연 전 부총리가 보수정당의 대권주자나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있는지 의아해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김 전 부총리는 비단 문재인정권에서만 중용됐던 게 아니라,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성향이 다른 네 개의 정부에서 중용이 됐었다.


노무현정권 때는 기획예산처에서 2030년 국가의 예산 전망을 다루는 '비전 2030' 보고서 작성을 담당했으며, 대선 직후에는 이명박 당선인의 인수위원회에 발탁됐다. 인수위 기조분과 전문위원으로 활약한 김동연 전 부총리는 청와대로 직행해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냈다.


이명박정부 최대 업적 중 하나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에 공을 세운 김 전 부총리는 2010년 기재부로 복귀해 예산실장과 차관을 잇달아 맡았다. 박근혜정부에서는 2년간 국무조정실장, 문재인정권에서도 2년간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정치권 관계자는 "봉직한 기간이나 맡은 역할, 신임 등을 고려하면 '실용정부'라 불렸던 이명박정부에서 도드라져보였다"며 "지난 총선을 통해 보수정당에서 친박(친박근혜) 세력이 사실상 청산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전 부총리와 보수정당 간의 심리적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셈"이라고 귀띔했다.


이명박정부 최후반부였던 2012년 총선 당시 김동연 전 부총리가 여야 정치권을 향해 일으켰던 '반란'을 돌이켜봐도 이 점은 분명해진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던 새누리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부산 사상에 출마했던 민주통합당이 서로 '내가 더 퍼주겠다'는 식으로 복지공약 대결에 골몰하자, 기재부 차관이던 김 전 부총리는 예산실 엘리트 관료들을 불러모아 극비 TF를 꾸렸다.


며칠밤을 새우며 여야 정당의 총선 복지 공약을 분석한 이들은 "공약대로라면 5년간 300조 원이 소요돼 국가 재정이 '재앙'에 빠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현재권력'인 이명박 대통령이 이미 레임덕에 빠져 있어 뒤를 받쳐줄 수 없던 상황에서 유력 '미래권력'들을 향한 '반란'에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어겼다는 지적도 나왔으나, 복지 재원 부담에 허리가 휠 위기였던 국민의 입장에서는 '유쾌한 반란'이었다는 평가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문재인정권에서 첫 경제부총리를 지내기는 했으나, 소득주도성장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과격한 정책드라이브는 꾸준히 우려해왔다.


2018년 정기국회 때 기재부 선배인 김광림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통해 이 점을 지적하자, 김 전 부총리는 "가슴에 숯검댕이를 안고 사는 것 같다"며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의 정책을 신축적으로 보완·수정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해 11월 예결특위 종합정책질의에서는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갈등으로 인한 사의 표명을 사실상 시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만 봐도 어느 정당·정파의 사람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정국을 상식과 비상식·정의와 불의의 대결로 보면 상식의 편이자 정의의 편이라는 게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통합당의 한 충청권 의원은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김 전 부총리에게 고향인 충북 모 지역구 출마를 권유했지만 고사한 것으로 안다"며 "민주당에서 정치를 하려면 그 때만큼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었겠느냐. 민주당에서 정치를 할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라고 바라봤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올해초 사단법인 '유쾌한반란'을 설립한 뒤, 전국을 돌며 특강 행보를 펼치고 있다. 여의도에서 바라보기로는 전형적인 정계입문 전의 수순이다.


판잣집에서 광주대단지로 강제이주…상고 출신
'낮엔 은행원, 밤엔 고시생' 생활 거쳐 경제사령탑
자신에겐 엄격, 남에겐 관대한 성품도 미담 회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만약 정치를 한다고 하면 김동연 전 부총리의 최대 강점은 '경제'다. 경제·고용 상황이 나날이 악화되고 부동산 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나 2022년 대선이나 '경제'가 최대 화두일 수밖에 없다. 경제 전문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물음표를 달 수 없다는 것은 김 전 부총리의 최대 자산이다.


또 하나의 강점으로는 큰 정치인이 되기 위한 필수요소인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김 전 부총리를 눈여겨보고 있는 통합당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말이 "김동연 (전 부총리)은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청계천 판잣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1세 때 부친을 여읜 뒤, 도심정비사업에 따라 광주대단지(현 성남)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허허벌판에 철거민 10만 명이 천막을 치고 살았던 그곳에서 김 전 부총리는 끼니를 걱정하며 자라야했다.


덕수상고를 거쳐 한국신탁은행(지금은 하나은행이 된 서울은행의 전신)에 입사한 김 전 부총리는 '낮에는 은행원, 밤에는 고시생'의 생활을 하며 국제대학교 야간학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도 합격했다. 이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야말로 '흙수저' 출신이 엘리트 경제관료가 된 것이다.


고생하며 큰 사람은 본인에게 엄격한 것은 좋은데, 남에게도 엄격하기 일쑤다. 김 전 부총리는 딴판이다. 본인은 휴가 반납과 밤샘 근무가 일상이고, 심지어 큰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날에도 발인을 마치고 오후에 출근했을 정도다.


하지만 기재부 후배 공무원들에게는 토요일 업무카톡을 금지하고, 9월 정기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해야해 여름 휴가를 못 가는 예산실 직원들에게는 예산안을 제출한 뒤에라도 휴가를 꼭 챙겨가라고 거듭 당부하고 점검한 미담이 전해져내려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동연 전 부총리는 아주대 총장 시절에도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매우 높았다"며 "'스토리'를 갖췄으면서도 요즘 젊은 세대들로부터 '꼰대''노력충' 소리 듣지 않기가 쉽지 않은데, 이 부문에서 김 전 부총리는 탁월한 강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김동연 전 부총리도 만약 정계에 입문할 생각이라면 극복해야할 과제가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충청권을 중심으로 통합당 일부 의원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영남권의 통합당 의원들은 아직 유보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1957년생으로 이미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아직까지 선출직 경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 걸린다. 정치를 뒤늦게 시작하는 시점에서 도전 무대가 대선이나 서울시장 선거라는 '큰 무대'라는 점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다.


뭣보다 김동연 전 부총리의 고향은 충북 음성이다. '충북 음성 출신 관료 대권주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보수 진영의 인사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시기, 일부 통합당 의원들은 충북 음성 출신 관료 대권주자를 봉대(奉戴)해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한 번 막아보겠다고 현직 대통령 탄핵도 무릅쓰고 당까지 깼다. 그런데 정작 봉대의 당사자는 20일만에 대권 레이스에서 탈선하고 말았다. 그 결과, 보수 진영은 힘 한 번 못 써보고 대선에서 패배하며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지금까지 대선을 자신의 첫 선거 무대로 삼아 당선됐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에는 경제학자 출신 조순 전 시장과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전 시장이 다른 선출직 경력 없이 바로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해 당선됐던 적은 있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홍정욱 전 의원과 함께 김동연 전 부총리의 실명을 들어가며 묻는 질문에 "그 중의 몇 분은 그런 (대권) 욕망을 갖고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전개되는 상황을 놓고보면 어떤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하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며 "거기에 적합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등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난 3일에는 서울시장 후보와 관련해 "경영 능력도 있고, 시민과의 소통 능력을 갖는 사람을 찾겠다"고 밝혔다. 모두 김동연 전 부총리를 향한 통합당 안팎의 관심이 더욱 높아질 수 있는 발언들이다. 이제 다음으로 주목해봐야할 것은 김 전 부총리 본인의 선택일 것이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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