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헤게모니의 상대적 우위가 승리 관건

김정열 기자 (kimjy21@naver.com)

입력 2007.09.13 09:28  수정

<데일리안 대선기획/전문기고>´2007 대선정국´키워드<12·헤게모니 이론> 김정열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으로 보는 대선정국

김정열 정치문제 애널리스트
그람시와 헤게모니 이론

이탈리아 정치가이며 이론가였던 안토니오 그람시는 1891년 사르데냐의 알레스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대학에서 학구파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제 1차 세계대전 뒤엔 마르크스 계열의 잡지 ‘신질서’를 창간하였고 편집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1924년에는 하원의원에 선출되었다. 1926년 무솔리니 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체포되어 20년 형을 언도받았으나 11년 뒤 감옥에서 폐결핵으로 병원에 옮겨져 외롭게 지내다 파란만장한 혁명가의 삶을 마감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 46세였다.

무솔리니 당국은 재판에서 “우리는 이 자의 두뇌작동을 20년 간 중지시켜야 한다” 고 선고하였지만 육체가 살아있는 그람시의 두뇌를 결코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건강이 악화되는 가운데서도 그는 감옥과 병원에서 총 2,848 페이지의 필사본을 남겼는데 그것이 이탈리아 공산당뿐만 아니라 마르크스 이후 전 세계의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친 <옥중서신>이다. 이 중에서도 시민사회와 헤게모니 이론은 탈냉전 시대에 들어서 기반을 상실한 좌파 이론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국의 좌파들도 그람시의 사상의 망토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처럼 그람시의 생애를 자세하게 설명한 것은 이탈리아 당시 상황과 그의 헤게모니 이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젊은 시절 열정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으나 당시 이탈리아는 무솔리니가 지배하였고 자신이 감옥에 갇힌 현실 속에서 그람시는 마르크스의 경제적 토대에 의한 하부구조결정론을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혁명을 위해서는 피지배층에 물리적 가치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를 수반하는 동의에 기반을 두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도덕적 가치로써 동의에 기반을 두는 지배가 바로 헤게모니이다.

안토니오 그람쉬
그의 이론을 ‘패배한 마르크시즘’ 또는 ‘지성의 비관주의’ 라는 비판도 있고 마르크시즘의 베버적인 해석으로 치부하는 견해도 있지만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인간의 정신을 그 물질적 관계로부터 독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비범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람시가 죽은 지 50여년이 지난 다음 공산권이 붕괴되면서 마르크스를 비판한 그람시의 이론을 오히려 좌우 세계 양쪽에서 높이 기리고 있다. 탈냉전 시대에 NGO의 성장과 그들과 국가의 대항관계 등 이론은 그가 추구한 혁명이론보다 사회변동이론으로 매우 훌륭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헤게모니 이론과 선거

그러면 이 헤게모니 이론의 핵심인 도덕적 가치란 무엇인가? 물론 도덕이란 윤리와 같은 뜻으로 인간이 지켜야 할 상위 습속이다. 그러나 좀 달리 표현하면 도덕이란 생활양식이나 생활관습의 경험을 정리한 것으로 공존(共存)을 위한 인간집단의 질서나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요약하면 도덕적 가치는 인간집단의 공존에 필요한 질서 또는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변동이론과 연결해보면 결국 인간의 공존을 위협하는 질서나 규범은 언젠가는 무너지며 이러한 체제는 결국 변동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세상 역사도 결국 이 변동의 기록이다.

18세기에 시작된 자본주의가 20세기 문턱을 넘어 질주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소외와 사회적으로는 가난과 불균형, 국제적으로 식민지 전쟁을 유발하며 인간의 공존을 위협할 때 많은 지식인들이 의지한 곳이 사회주의였다. 그런 지식인들 중 한 사람이 그람시였으리라! 그러나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등장한 공산체제가 산업화를 위한 무자비한 테러로 귀결되고 생산성 하락으로 나타나면서 인간의 공존의 테두리가 위협당할 때 무너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헤게모니 이론은 명쾌하다. 그래서 이 이론은 헤게모니 안정이론 등 국제정치에서도 원용되고 있다.

나는 이 헤게모니 이론으로 선거를 통한 변동을 설명하려고 한다. 물론 논리상 견강부회의 구석도 없지 않다. 그동안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며, 누구를 찍을 것인가는 연구는 많았다. 헤게모니 이론으로 볼 때는 집단의 공존에 필요한 질서 또는 규범에 충실하고 솔선수범하는 자를 선거라는 형식의 동의체제를 통해 선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지배층도 주로 선출의 형식으로 결정되는 데 내면을 보면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공존을 위한 도덕적 가치에 대한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배층도 공존을 위한 도덕적 가치를 상실하면 붕괴된다.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 측의 정권교체논쟁도 이 헤게모니 이론으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80년대 학생들과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본격 시작된 진보운동은 1997년 외환위기 국면에서 보수세력이 한국 사회의 공존을 위한 질서와 규범의 창출에 실패했다는 논리의 공세로 대중의 동의를 확보하여 성공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그해 대선의 결과로 나타났다. 2002년 대선도 이러한 진보우위의 연장이었다. 그러나 2007년 보수세력은 그 간의 진보세력이 오히려 공존보다 자기들만의 독선에 치우쳤고 사회발전을 후퇴시켰다고 지적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헤게모니 이론과 한국 대선 - 이른바 감성적 정당성

김대중 전 대통령
나는 1997년 대선 결과 즉 DJ가 대선에서 승리한 결과를 전문가들과 분석한 뒤 그 내용과 관련하여 당시 DJ 정치의 위기의 본질을 2001년 1월 지방의 한 신문에 기고한 바 있다. 먼저 1997년 대선에서 DJ가 승리한 결과를 놓고 그 원인으로 냉전구도의 변화, DJP에 의한 야권의 단합과 이인제씨의 출마로 인한 여권의 분열로 설명하면 간단하였지만 학자 등 전문가들에 의해 어느 사회에서든지 그 사회를 위해 가장 헌신해온 사람이나 단체가 선거에서 뽑힌다는 최소무임승차론도 등장하였으나 당시 가장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 이 헤게모니 이론이었다.

자세하게 언급하자면 당시 검찰이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자금을 수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IMF 위기라는 상황이 기업들의 선거자금지원을 어렵게 함으로써 물리적 가치보다 도덕적 가치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자제의 병역문제가, 이인제 후보는 경선불복이라는 약점이 있었는데 비해 김대중 후보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당선되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유권자들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동의 즉 헤게모니가 선거판세를 장악했다는 이야기이다. 실제 당시 수도권 중산층 이상의 유권자들이 의외로 DJ를 많이 찍었다.

유권자들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동의 즉 헤게모니가 대선의 판세를 장악한 경우는 97년 대선의 경우만은 아니다. 자 87년의 경우를 보자!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6.10의 정신을 이어받아 군부독재 종식이란 슬로건이 난무한 그해 격동의 대선은 그들에게 상상하기조차 싫은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내팽개치고 천재일우로 찾아온 야권의 정권교체의 기회를 눈앞에 놓고 자신으로 후보단일화를 위해 이전투구하는 양김과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지역감정의 분위기에 무임승차한 JP가 더 싫었던 것이다.

92년 대선은 이미 3당 통합으로 YS는 절반의 당선을 보장받았지만 많은 국민들은 도덕적으로는 바로 전의 대선에서 당을 깨고 나가며 경선을 회피한 DJ와 기업자금을 마음대로 쓰며 정치에 입문하며 금권정치(plutocracy)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 정주영씨보다 YS가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2002년 대선은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구도 자체가 고루한 이회창씨에 비해 신선한 노무현 당시 후보가 감성적으로 정당성을 더 갖는 것으로 비춰지게 만들었다. 유권자들은 결국 이 감성적 정당성에 더 동의를 하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헤게모니 이론과 2007년 한국 대선

이명박 후보의 신승으로 끝난 한나라당의 경선도 결국 도덕적 가치에 의한 헤게모니 투쟁의 결과이다.
지난 한국의 대선을 지배한 도덕적인 가치를 살펴보면 패배를 인정하고 양보하는 민주주의의 정신, 청렴성 또는 순수성, 일관성 또는 원칙주의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가치는 언제나 선거구도상 상대적인 것이었으며 변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DJ의 도덕적 가치는 87년, 92년 대선에서 비교적 열위에 있었으나 97년에는 비교적 우위에 있었으며 각 대선마다 주도적인 도덕적 가치 역시 다르게 나타났다. 2002년 ‘바보’ 라고 부르며 노무현 후보를 우위에 두었던 순수성은 이번 대선에서는 일종의 미성숙과 무능으로 평가되고 있다.

왜 여권후보의 지지율이 아직 답보상태인가? 많은 국민들은 지금 평화와 개혁 그리고 통합의 가치를 DJ가 등장하던 당시에 비해서 우위에 두지 않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지금 평화란 북한에 무조건 주는 것이고, 개혁은 대의도 없이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이고, 통합은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원래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에 비해서 청렴성과 진보성을 내세우며 탈당한 손학규 전 지사의 지지율도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아직 저조한 것은 세월을 따라 이 도덕적 가치가 변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의 신승으로 끝난 한나라당의 경선도 결국 도덕적 가치에 의한 헤게모니 투쟁의 결과이다. 이명박 후보는 각종 의혹은 있었지만 경제우선과 실용주의라는 도덕적 우위가 있었고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는 일관성과 원칙준수라는 우위가 있었다. 초반에 큰 차이로 앞서던 이명박 후보가 결국 당심에서 밀리게 된 것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전략적인 투표의 결과라고 할 수 있고 청렴성이라는 기준이 매우 파괴력이 있다는 증거였다. 경선 후 박근혜 전 대표가 돋보인 것은 패배를 인정한 민주주의의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 이명박 후보를 서브프라임 상품이라고 보는 이유도 경제우선과 실용주의로 외연을 확대하는 장점은 있지만 그동안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 잘 대응하지 않으면 한 방에 갈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선두를 달리는 이명박 후보의 필승전략은 경제우선과 실용주의라는 도덕적 가치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끌고 가며 당심을 어떻게 추슬러 가느냐의 문제이다. 영국의 문호 서머세트 모옴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성공 속에 언제나 실패가 있다. 최근 박 전 대표를 만났지만 그녀의 진정한 협력을 끌어내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다.

도덕적 가치와 시대정신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지금이 9월 초이니 올해 대선전도 서서히 종반을 향해 달리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도 경주를 하다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토끼처럼 목표를 향해 급히 달리고 있다. 그래서 컷 오프 경선도 실수투성이었다. 경선이 흥행이 되고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하는 데 그들로서는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 반면 민주노동당은 뚜벅뚜벅 경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가끔 3인의 후보가 손을 들고 포즈를 취한 장면은 어디 먼 나라의 선거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민주노동당도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진정성은 당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사람으로 나의 관심을 끄는 사람이 바로 문국현씨이다.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 는 대학생의 말을 카피로 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는 유한 킴벌리의 CEO출신이며 환경운동 등 사회운동에도 열심히 활동한 사람으로 차별성이 있다. 그리고 그의 톡톡 튀는 발언은 인터넷으로 널리 유포되고 있다. 이른바 ‘문풍’ 이다. 여권에서는 앞으로 손학규 전 경기 지사와 겨룰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나는 그 카피를 보며 그가 시대요구를 잘 파악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물론 문씨의 등장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확정 이후 반사적인 현상으로 일시적일 수도 있는 있다. 그러나 늦게 시작한 그가 여권에서 손학규 전 지사와 함께 그래도 경제를 잘 아는 사람으로 알려져 각광을 받는 것은 이제 한국 정치도 전통적 정치인의 시대에서 기업가형 정치인의 시대로 바뀌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지배 헤게모니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증거이다. 국가보다 시장이 주도하고, 이번의 아프간 인질사태에서 보다 시피 이제 각종 사건이 세계화와 연관되고 있음을 볼 때 정치적 패러다임의 유형이 바뀌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쨌든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부국과 국내의 현안 문제인 상생과 남북 간 위험이 없이 공존하는 평화가 실현되어야 한다. 그간 보수는 부국을 강조해 왔고 진보는 상생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부국없이 상생이 없고 상생없이 부국이 없다. <주1>그래서 앞으로 대통령은 이러한 목표를 잘 인식하고 정교한 우선순위로 이러한 목표를 잘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을 뽑는 도덕적 가치가 그래서 중요하다. 그람시가 70년 전 갈파한 이 도덕적 가치가 바로 우리의 시대정신(Zeitgeist)이기 때문이다.

<주1> 김호기, ‘87년 체제, 민주주의 그리고 대통령 선거’ 책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 P 121 당대비평

* 이외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유팔무, 김호기 편집, 한울), 그람시의 옥중수고 1-정치편(안토니오 그람시 저, 이상훈 옮김, 거름), 민주주의 민주화(최장집 지음, 박상훈 편, 후마니타스) 등 책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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