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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지리산 산책 ⑪] 살짝 엿보는 구례장 인심


입력 2018.06.28 16:38 수정 2018.06.28 17:14        데스크 (desk@dailian.co.kr)

경남 하동에 살면서 시장은 전남 구례로 자주 갑니다. 집에서 가자면 구례장이 하동장보다 두 배는 더 멀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례장을 가는 이유는 아직 남도의 예스러움과 정감을 보다 더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년 이상 친구(?)처럼 지내는 뻥튀기 할머니와 식당 아주머니, 또 다른 할머니들이 시장 도처에 있기에, 그들을 만나는 재미도 구례 장에 가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장마당을 돌아다니다 보면 남도의 유머가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대세 패션, 꽃무늬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꽃가게 앞을 지나는 할머니들에게 괜히 말을 걸어봅니다. 앞에 매달린 꽃이 무어냐고.

“난초인데 이상한데 묶어났네. 기왓장에 묶어놓은 건 봤는데 목매단 건 처음보네.” 무덤덤하고 시크하게 말씀하시고 휙 지나쳐 가셨습니다. 입가의 미소는 남아 있는 나의 몫입니다.


가축 장터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새끼 고양이의 성별을 감식 중입니다. 성별이 들통 난 새끼 고양이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야옹’ 외마디 소리를 질러댑니다. 잠시 옆에 서서 분위기를 파악해보니 고양이를 사실 마음은 없는 듯하고 할아버지 혼잣말로 “이놈 암놈 같은데! 집에 있는 암놈하고 싸우겠네” 하시며 철창(?)에 다시 가둡니다. 새끼 고양이의 억울함이 사료 몇 알갱이로 해결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가야식당’. 우리들의 아침밥과 반주를 해결하는 곳입니다. 남도의 소박한 밥상과 할머니의 후덕한 인심을 맛보는 식당입니다. 이집의 최고 메뉴는 매번 동일한 시래기 된장국입니다.


일년 열두달, 국은 시래기 된장국에 쪼그마한 조기 구이가 기본이고, 계절 음식으로 오늘은 호박 잎 쌈이 놔왔습니다.
“호박 잎은 두 장 싸먹어야 맛있어! 하나 싸면 찢어지고 맛도 없으니 두 장씩 싸 먹어.”
“네 네. 이미 두 장씩 싸먹고 있어요.”
“어 어, 그래야지.”
할머니 인심에 녹아나고, 막걸리에 취한 아침입니다. (막걸리 두 병은 공짜랍니다.)


왼 무릎에 팔꿈치를 얹어서, 무겁고 아픈 허리를 받치고 병어를 손질하고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마음이 짠합니다. 아마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 그 분들의 뒷모습은 거의 이와 같지 않을 까 합니다. 세월의 길에서 남편과 아들을 위해 항상 비켜 걸으신 우리들 어머니의 뒷모습입니다.

“할머니 옷에 예쁜 꽃이 잔뜩 피었네요.” “예쁘긴 뭐가 예뻐.”
“집에서 가져온 양파 사가요! 정말 맛있어. 깻잎도!”

부끄러워하며 웃는 얼굴이 꽃보다 예쁜 할머니가 채소를 팔고 계십니다.
“무릎 아파서 다리 뻗고 있는데 사진 찍으면 어떡해! 부끄럽게.”
“할머니 그냥 편하게 다리 뻗고 계세요.”


할머니가 사라는 양파는 사지 않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뒤돌아섰습니다. 안타깝게 저는 어제 마트에서 양파를 사 놔서 더 살 수 없었습니다.

장마당의 구석구석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처음 본 사람이든, 원래 아는 사람이든 웃는 얼굴로 마주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대합니다.

그러면 단박에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경계를 내려놓으시면 그리됩니다. 취기 오른 발걸음으로 장마당을 빠져나왔습니다.

섬진강 따라 구례장에 갔고, 섬진강 따라 집에 왔습니다. 대밭이 아름다운 섬진강변을 지나왔습니다. 이리저리 오늘은 참 좋은 아침입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취했나봅니다. 이쯤이면 한 숨 자야죠.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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