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카의 차' 서버번 딜레마…수요예측에 판매 간섭까지

박영국 기자

입력 2018.05.29 06:00  수정 2018.05.29 08:45

소비자 관심 높지만…실제 판매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판매간섭 가능성도…가격차 두 배 이상

쉐보레 서버번.ⓒ쉐보레

소비자 관심 높지만…실제 판매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판매간섭 가능성도…가격차 두 배 이상


쉐보레의 대형 SUV ‘서버번(SUBURBAN)’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 보좌관이 방한 당시 이용하며 화제가 된 이 차는 지난달 한국지엠이 진행한 ‘쉐보레 글로벌 차량 중 국내에서 만나보고 싶은 차량이 있으십니까’라는 설문에서 많은 선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이 차를 들여와 판매하는 데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요 예측에 대한 불안감이 남아있고, 캐딜락 브랜드까지 포함한 전체적인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SUV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과거 현대차 베라크루즈와 기아차 모하비 정도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모하비 뿐 아니라 쌍용차 G4렉스턴도 큰 인기를 끌고 있고 포드 익스플로러도 수입 베스트셀링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은 차량 교체시기에 한 차급 높은 차종을 선택하는 경향이 많다”면서 “기존 중형 SUV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대형 SUV 시장 확대 전망은 매우 밝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차종의 수입 판매는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 매우 구미가 당기는 일일 수 있다.

쉐보레 서버번이 바로 그런 차종이다. 사실 국내 소비자들은 이방카가 타기 전부터 알게 모르게 서버번을 자주 접해왔다. 헐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 상당히 잦은 빈도로 출연하는 차종이기 때문이다.

주로 액션 신에 많이 등장하며 옆에서 들이받아도 꿈쩍 없이 달리고 총알 구멍 정도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터프한 이미지의 차다. 안에는 보통 무장한 정부 요원, 혹은 은행강도가 타고 있다. 이 차를 들여온다면 PPL(간접광고)은 자동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지엠은 이처럼 인기가 높은 서버번을 왜 들여와 판매하지 않는 것일까.

데일 설리번 한국지엠 영업·서비스·마케팅부문 부사장은 지난 23일 ‘더 뉴 스파크’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웹사이트에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서버번 선택이 많았고 평점도 좋았다”면서도 “하지만 적기에 이 제품을 한국에 가져올 수 있는지, 한국에 적정한 수요가 있는지, 워낙 대형 사이즈의 차량인데 한국의 주차 및 주행환경이 적절한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TV를 통해 국가수반들이 서버번을 타는 것을 많이 봤을 텐데, 최종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는 부분에서는 다소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실 서버번은 개인이 몰고 다니기에는 다소 부담스런 사이즈다. 길이는 5699mm로 웬만한 미니버스 크기고, 폭은 2m를 넘는다(2044mm).

서버번(왼쪽)과 타호 차체 길이 비교.ⓒ쉐보레

하지만 차체 크기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6m에 육박하는 길이가 부담스럽다면 서버번의 숏바디 버전인 타호(TAHOE)를 들여오면 된다. 서버번과 타호는 전장만 롱바디, 숏바디로 나뉜 형제차다. 타호의 전장은 5181mm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국내 판매모델과 동일하고, 포드 익스플로러(5040mm)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전폭 2m 내외의 차는 이미 국내에도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에스컬레이드(2045mm)를 비롯, 익스플로러(1995mm), G4렉스턴(1960mm)도 만만치 않은 차체 너비를 자랑한다.

문제는 수요 예측이다. 서버번의 미국 판매가격은 기본트림이 5만200달러(약5400만원)이다. 타호는 4만7500달러(약5100만원)부터다. 시작 가격이 3000만원대 중반인 G4렉스턴이나 4000만원대 초반인 모하비보다는 5000만원대 중반인 익스플로러와 경쟁해야 한다.

물론 숏바디 버전 타호를 기준으로 해도 익스플로러보다는 덩치가 크고 강력한 엔진을 달고 있는데다, 가격을 좀 더 낮출 수도 있고, 한국지엠의 서비스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A/S에서도 이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익스플로러가 수입 대형 SUV 중 가장 잘 팔린다 해도 월 500대 내외다. 설령 이 물량을 모조리 빼앗아온다고 해도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숫자다.

높은 인지도를 가진 차종이 추가되며 시장 자체가 넓어진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은 것과 실제 구매로 이어질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며 “서버번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긴 하지만 실세 시장에 내놓으면 신모델 추가에 따른 고정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판매로 이어질지는 자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서버번-타호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에스컬레이드 롱바디 버전은 서버번과 플랫폼을 공유하며, 국내에 판매되는 에스컬레이드 숏바디는 타호와 같은 플랫폼을 쓴다.

쉐보레가 GM의 대중 브랜드라면 캐딜락은 고급 브랜드다. 당연히 가격차도 상당하다. 에스컬레이드는 기본 트림이 1억2980만원인 고가 차종이다.

서버번-타호와 에스컬레이드는 배기량도 다르고 각종 편의사양과 내외장재도 다르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같은 차급으로 인식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에스컬레이드는 가격이 절반 이하인 동생들에게 ‘팀킬’을 당할 수도 있다.

어차피 판매가 많지 않은 차종이라면 5000만원짜리 차를 파는 것보다 1억3000만원짜리 차에 주력하는 게 한국지엠 입장에서는 그나마 나을 수 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출시가 확정된 이쿼녹스가 국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끈다면 한국지엠이 상위 차급인 트레버스, 타호, 서버번 순으로 라인업을 확장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수요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바로 서버번을 들여오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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