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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대통령 개헌안, 국민 뜻 반영 vs 신의 한수


입력 2018.03.23 03:00 수정 2018.03.23 09:35        이슬기 기자

여론 반영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권력 분산 조항 등 담아

야당 반발 예고된 부결수순…대통령 발의로 정쟁 불가피

여론 반영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권력 분산 조항 등 담아
야당 반발 예고된 부결수순…대통령 발의로 정쟁 불가피


문재인 대통령이 20~22일 대통령 헌법개정안을 공개하고 오는 26일 발의할 예정이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20~22일 대통령 헌법개정안을 공개하고 오는 26일 발의할 예정이다. ⓒ청와대

청와대가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을 공개했다. 그간 논란의 핵심이었던 권력구조 개편을 비롯해 헌법전문(前文)과 총강,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 등 전 분야에 걸쳐 개정 작업이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오는 26일 개헌안을 발의한다.

청와대는 22일까지 사흘에 걸쳐 개정안의 요지를 순차적으로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국민에게 설명함으로써 국민적 관심도를 높이는 동시에 국회의 결단을 압박하고, 대통령이 발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여론의 지지 기반을 형성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대통령 개헌안에는 △지방정부 권한 강화 △대통령 4년 연임제 △토지 공개념 명시와 같이 국회는 물론 학계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가 큰 사안들이 담겼다. 무엇보다 자치분권을 지원하기 위해 지방정부의 입법권과 재정권을 대폭 강화하고, 지방자치 관련 법률안을 의결할 수 있는 국가자치분권회의도 신설했다. 여기엔 ‘제2국무회의’ 위상을 부여했다.

여론·학계서도 이견 분분한 ‘지방분권’

지방의 권한은 강화하는 반면 중앙정부의 권한은 나눴다.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해 국회의 정부 통제권을 강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결선투표제를 실시해 최다득표자라 하더라도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하지 못하면 2차 투표를 실시키로 했다. 단 한 표라도 더 받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상대적 다수대표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를 삭제하고 자의적 사면권도 제한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했다. 국무총리는 현행대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신, 현행 헌법 86조에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삭제해 총리가 책임지고 행정 각부를 통할할 수 있게 했다. 정부가 법률안 제출권을 행사하기 위해 국회의원 10명의 동의를 받도록 제한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헌법 제1조는 국민적 큰 이견 없이 합의가 된 시대정신이지만, 지방분권은 일반국민과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며 “상징적인 헌법 제1조에 넣을 만큼 지방분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나 합의가 이뤄졌느냐”고 되물었다.

또 정치권이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유사 의미로 오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특히 지방정부의 조례가 대통령령이나 국회가 제정한 법과 배치될 경우, 혼란이 가중될 소지가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국립인천대 교수)도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지역감정이 여전히 심각하고 지역 이기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지방분권을 하기에는 시기적·상황적으로도 더 고려해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 대한민국이라는 특정 국가 헌법의 주체는 ‘사람’이 아닌 ‘국민’이라면서, 기본권 조항에 ‘국민’을 ‘사람’으로 변경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조국(가운데)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 주요 내용을 발표하는 모습. ⓒ청와대 조국(가운데)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 주요 내용을 발표하는 모습. ⓒ청와대

대통령 4년 연임제, ‘국회 합의’ 요원

가장 논란이 됐던 권력구조 부문에선 대통령 4년 연임제를 택했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 다수가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각종 여론조사에 근거했다. 특히 국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 의원내각제와 다를 바 없는 ‘국회의 총리 선출권 또는 추천권’을 도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도 반영됐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문제는 국회 합의다. 야권은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의원내각제·이원집정부제 형태의 권력구조 개편을 요구해왔다. 즉, 개헌안의 내용이나 개정 자체의 정당성은 획득하더라도, 야당의 반대가 예고된 상황에선 ‘합의’라는 헌법 정신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통령 개헌안인 4년 연임제에 대해 야당이 반대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며 “청와대가 26일 발의를 천명한 것은 야당의 반대와 부결될 것을 알면서도 발의하겠다는 것인데, 이처럼 야당의 무릅쓰고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해왔던 노력과 상충한다”고 지적했다.

‘예견된 부결’ 속 발의 강행

청와대는 현행법에 명시된 입법 절차에 따라 오는 26일을 ‘대통령의 시간’으로 규정했다. 국회의 심의 기간 60일과 의결 후 공고 기간 18일 등을 더한 뒤,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할 6·13 지방선거로부터 역산한 날짜다. 아울러 청와대는 현재 국민투표법이 위헌 상태인 만큼,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입장에 관계없이 우선 국회가 내달 27일까지 국민투표법부터 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를 통해 ‘개헌에 대한 의지’가 드러날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야당의 반발은 한층 거세졌다. 개헌안이 통과되려면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지만, 현재 자유한국당 의석수(116석)만으로도 개헌 저지선인 3분의 1이 넘는다. 한국당이 대통령 개헌안에 반대하는 한 가결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학계에서도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야당의 반대가 뻔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권 시점을 천명하며 국회를 압박함으로써 개헌안 논의가 정쟁의 도구로 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문 대통령의 구상 자체에 정치적 의도가 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통과가 되든 안 되든 청와대는 최선을 다했고, 야당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은 오로지 야당에게 있다는 논리 아닌가. 개헌안 논의 자체가 정쟁의 도구로 쓰이게 됐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민호 교수도 “개헌이야말로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필히 이뤄져야 하는 과업”이라며 “대통령이 중심이 돼서 개헌안을 내놓은 것은 ‘대선 공약을 이행했다’는 일종의 명분에만 너무 기운 것이다. 또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모든 책임이 자유한국당 등 야당에 전가된다는 정치적 계산도 작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정무적으로는 청와대가‘한 수’를 정말 잘 뒀다. 한국당은 완전히 무력한 상황”이라면서도 “이 상태에서 개헌이 안될 거라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인데, 결국 개헌을 실제로 완수하겠다는 것보다는 정치적 주도권을 제대로 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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