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공공기관 취업시 학벌·성별·출신지역을 배제하는 '블라인드 채용' 지침을 내리고 전면 시행에 들어간 가운데, 취업시장 속 당사자인 청년들 사이 공정성 시비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자료사진) ⓒ고용노동부
공정성 시비 속 모호한 평가기준 쟁점 "명확한 채용툴(tool) 없이는 '시기상조'"
"학벌사회를 타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 vs "개인 노력 무시하는 모순이자 역차별"
정부가 지방공공기관 취업시 학벌·성별·출신지역을 배제하는 '블라인드 채용' 지침을 내리고 전면 시행에 들어간 가운데, 취업시장 속 당사자인 청년들 사이 공정성 시비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공정한 취업 경쟁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노력의 객관적 지표를 배제하고 별도 평가기준을 적용하면서 오히려 역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견이 팽팽하다.
정부는 일자리 채용 과정에서 학연이나 지연을 배제하고 직무와 관련된 교육훈련 경험 등을 바탕으로한 지원자의 실력을 중점 평가해야 한다며 '블라인드 채용' 방침을 발표하고, 이를 지방공공기관 전체로 확대하는 지침을 배포했다. 정부는 오는 9월까지 모든 공공기관에 이를 적용하고, 향후 민간기업으로도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이제 모든 지방공공기관 응시생들은 입사지원서에 학력이나 어학점수를 기재할 수 없고, 면접관들은 인적사항을 질문할 수 없게 된다. 인적사항에 대한 증빙서류는 합격 결정과 관련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종 합격자 발표 전에 요구할 수 없도록 했다.
정부가 이 같은 지침이 담긴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정작 취업시장에 놓인 청년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서열화된 학벌구조를 타파할 것이라는 기대와 오히려 역차별 등 공정성 시비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공정성 시비 속 모호한 평가기준 쟁점…"명확한 채용툴(tool) 없이는 '시기상조'"
우선 학벌, 지역, 외모 등의 여러 기준을 차단하고 동일선상에서 경쟁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큰 틀에는 동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다만 정교화된 기준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명분만으로 정책이 시행될 경우 사회적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가 지방공공기관 취업시 학벌·성별·출신지역을 배제하는 '블라인드 채용' 지침을 내리고 전면 시행에 들어간 가운데, 취업시장 속 당사자인 청년들 사이 공정성 시비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자료사진) ⓒ연합뉴스
현장의 취업준비생 반응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먼저 공정경쟁 부분에 공감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소재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김정연(가명·26) 씨는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때마다 내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멋지고 예쁜 사람, 소위 난다 긴다하는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과 경쟁할 때 지원서에서부터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블라인드 채용이 시행되면 적어도 학교 성적으로, 외모로,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우선 배제되지는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된다"고 전했다. 서울소재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주호영(가명·28) 씨도 "고용자도 사람인데 특정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안 생길 수가 없다"며 "실질적인 업무 투입에 있어 누구나 새롭고 배우는 입장인데 학력이나 다른 요소가 업무능력으로 연계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반면, 취지는 좋지만 노력에 대한 공인된 지표 없이 객관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냐는 지적도 이어진다. 특히 블라인드 채용에 능력중심 평가 항목, 지역인재할당제 등이 포함되면서 역차별 문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시내 주요대학을 졸업한 취준생 정모(28) 씨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남보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가 모두 무시되는 것 같아 무기력하다"며 "취지는 좋지만 시험성적 등 객관적 지표를 무시하고 공정한 채용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가능했다면 이미 시행됐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취업준비생 박재원(가명·27) 씨는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지역할당제의 경우 남보다 노력해 수도권으로 대학을 진학한 학생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중이 커진 면접·능력중심 평가 항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취업준비생 김솔이(가명·26) 씨는 "면접이 중시되면서 말과 표정, 아이콘택트까지 가르치는 면접학원이 인기를 얻고 있다"면서 "입학사정관제로 논술학원이 커진 것처럼 또 다른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방공공기관 취업시 학벌·성별·출신지역을 배제하는 '블라인드 채용' 지침을 내리고 전면 시행에 들어간 가운데, 취업시장 속 당사자인 청년들 사이 공정성 시비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찬반 양측 모두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효성에는 한계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실제 채용 관계자 사이에서는 '직무능력'에 대한 평가항목이나 기준이 모호해 평가자의 주관적 견해가 개입되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력이나 스펙 없이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거를 수 있는 정교화된 기준마련이 우선이라는 게 취업 컨설턴트의 중론이다. '깜깜이 채용'으로 낙하산 인사가 횡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민사회단체 한 관계자는 "응시자가 채용을 위해 노력해온 그간의 노력을 배제하고 주관적인 면접에 의해 채용을 결정하게 되면 낙하산 인사가 더 횡행할 수 있다"며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면 그만큼 부작용도 초래한다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우려를 더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블라인드 채용에 있어 지원자의 직무 관련 역량과 의지를 판단할 수 있는 보다 체계화된 채용툴(tool)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학력이나 공인시험성적 등 객관적 지표가 차단된 상황에서 응시자가 납득 가능한 세부적인 평가기준을 마련한 뒤, 검증을 거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이 같은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지원자의 업무적합성을 증명할 보다 정교한 평가기준이 증명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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