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하정우 '극한 원맨쇼'…'터널'

부수정 기자

입력 2016.08.07 07:03  수정 2016.08.07 04:04

하정우·배두나·오달수 출연…재난 영화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 연출

'터널'은 매일 지나던 터널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그 안에 갇히게 된 한 남자와 그를 구하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드라마다.ⓒ쇼박스

만약, 당신이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히게 된다면?

터널 안 생존자는 나뿐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구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상황 속에서 외로움, 추위 등과 싸워야 한다. 당신은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자동차 세일즈맨인 이정수(하정우)는 아내와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 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생일 케이크를 사고 퇴근하던 중 터널이 무너져 내리면서 고립되고 만다. 터널은 형체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정신을 차린 정수의 눈에 보이는 건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와 묵직한 바윗덩어리들. 정수에겐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과 생수 두 병, 딸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대형 터널 붕괴 사고 소식에 대한민국은 들썩이고 정부는 사고 대책반을 꾸린다. 사고 대책반의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은 꽉 막힌 터널에 진입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지만 구조는 더디게만 진행된다.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남편의 생존을 간절히 바라며 터널 밖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지지부진한 구조 작업 탓에 인근 제2터널 완공에 차질이 생기고, 정수의 생존과 구조를 두고 여론이 분열되기 시작한다.

바깥 상황을 모르는 정수는 구조만 애타게 기다린다. 구조는 진척이 없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던 어느날 정수는 인기척을 느끼는데...

배우 하정우가 영화 '터널'에서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히는 평범한 시민 이정수 역을 맡았다.ⓒ쇼박스

올여름 영화 시장의 마지막 주자 '터널'은 매일 지나던 터널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그 안에 갇히게 된 한 남자와 그를 구하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드라마다. 웰메이드물 '끝까지 간다'(2014)를 만든 김성훈 감독이 연출과 각본 모두를 맡았다.

기존 재난영화가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대규모 참사를 그렸다면 '터널'은 무너진 터널에 갇힌 단 한 명, 이정수를 주축으로 해 재난 영화의 뻔한 공식을 비틀었다.

평범한 사람이 재난 상황에 빠지는 상황을 통해 현실감을 높였다. '만약, 내가 정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정수의 상황을 지켜본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극한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생존 본능과 인간의 본성을 보노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타인보다 내가 중요한 게 삶인지라, 생과 사를 다투는 급한 상황에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정수가 또 다른 생존자에게 물을 줄까 고민하는 부분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터널'은 재난 영화의 특유의 긴장감을 주는 동시에 극한 상황에서 터지는 유머를 곳곳에 배치해 예상 밖 웃음을 준다. 시작 후 바로 터널이 무너지는 장면, 중간중간 위험한 상황을 터뜨리는 점, 무거운 상황 속에서도 여유와 긍정적인 가치관을 잃지 않는 정수의 모습이 그렇다.

희망의 메시지도 놓치지 않는다. 모두가 포기했을 때도, 끝까지 살아남으려 애쓰는 정수와 극한 상황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인간의 '선의'는 한 줄기 빛이 된다.

영화 '터널'은 평범한 시민이 재난 상황에 빠지는 모습을 통해 우리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쇼박스

재난 상황을 통해 우리 사회를 꼬집은 점은 꽤 인상적이다. 허술한 구조 작업, 무능한 정부, 개인의 생명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한국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부실공사 덩어리 터널을 시작으로, 의전에 급급한 정부 관계자들, 회의만 하는 윗사람들, 언론사의 과잉 경쟁 보도, 대충 만든 터널 설계도 등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의 '극한 원맨쇼'라 할 만큼 그의 연기가 돋보인다. '더 테러 라이브'(2013)에서 홀로 영화를 이끈 하정우는 특유의 익살스럽고, 준수한 연기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한정된 공간에서 분노했다가, 절망하고, 또다시 일어서는 정수의 다채로운 모습을 흠잡을 데 없이 연기했다. 먼지에 뒤덮인 얼굴 사이로 보이는 충혈된 눈까지 연기하는 배우다.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는 서로 붙는 신이 많지 않음에도 훌륭한 앙상블을 빚어냈다.

126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재밌는 영화다. 연출도 매끄럽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다만 후반부에 극이 너무 쉽게 마무리되는 부분은 아쉽다.

김 감독은 "'터널'은 결국 생명에 대한 이야기"라며 "생명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는 또 "너무 무거운 이야기는 싫어서 유머 코드를 넣었다"며 "재난 상황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유머를 통해 극을 수월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터널'은 제 69회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피아짜 그란데(The Piazza Grande) 갈라 섹션과 제 49회 스페인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오피셜 판타스틱 오르비타(Official Fantastic Orbita) 섹션에 공식 초청됐다.

8월 10일 개봉. 상영시간 126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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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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