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제작드라마 KBS '태양의 후예'가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 KBS
요즘 수요일과 목요일에 술집들에 손님이 늘고 있다. 한 가지 주의 깊게 바라 볼 특징은 남성 손님이 대부분이라는 것.
남성 시청자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고 여성 시청자가 선호하는 드라마가 있다. 남성 시청자가 선호하는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 술집에 손님이 급감한다. 드라마를 보러 집에 간 것이다. ‘모래시계’가 한창 인기를 끌 당시엔 길거리에 오가는 차량도 급감했다고 한다.
반면 여성 시청자자 좋아하는 드라마는 도심의 밤 풍경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는 조금 다르다. “태양의 후예할 땐 아내에게 말 걸지 말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태양의 후예’는 여성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이 드라마를 볼 때 여성 시청자들은 엄청나게 집중한다. 괜히 말 걸어서 그런 집중을 깨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아예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늦게 퇴근할 것을 요구하는 아내들도 늘고 있다. 요구까진 아니어도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회식이 있거나 야근을 한다고 하면 환영하는 아내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아예 술 약속을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잡는 남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술 먹고 늦게 귀가한다고 잔소리 하던 아내들이 ‘태양의 후예’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요일과 목요일의 늦은 귀가에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 이처럼 여성 시청자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대한민국의 밤 풍경을 바꿔 버린 것은 ‘태양의 후예’가 처음인 듯하다. 그만큼 열풍이다.
대박 드라마의 등장이 반갑지 않은 이들도 있다. 바로 영화계다.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태양의 후예’로 인해 배우 캐스팅이 더욱 곤란해 질 것이라는 게 영화계의 한숨 섞인 만응이다.
과거에는 드라마로 데뷔해 스타가 되면 영화계로 건너가고 다시 인기가 시들해지면 드라마로 되돌아오는 배우들이 많았다. 브라운관에서 인기를 얻으면 스크린으로 진출하는 게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져 있던 시기도 있었다.
한류 열풍과 함께 드라마 시장에 활력이 생기면서 이런 흐름이 많이 달라졌다. 드라마로 인기를 얻어 영화계로 갔던 톱스타들이 대거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것. 요즘 톱스타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소화하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수입을 놓고 보면 드라마가 더 좋다. 영화나 드라마 모두 톱스타를 캐스팅하는 과정에선 출연료를 아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드라마의 경우 대박이 나면 엄청난 CF 수입이 동반된다. 게다가 요즘은 한국 드라마가 한류의 중심인 터라 해외 진출에도 유리하다. 이런 장점이 부각되면서 주로 영화에 출연하던 배우들도 대거 드라마 시장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배우 입장에서 작업 환경을 고려하면 영화가 훨씬 좋다. 드라마의 경우 워낙 타이트한 흐름으로 촬영이 진행된다. 미니시리즈 촬영에 본격 돌입하면 주연급 배우의 경우 하루 두세 시간밖에 잠을 못자고 하루 종일 촬영만 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대본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쪽대본이 날라 오는 현장은 정말 정신없이 촬영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여유 있게 촬영이 진행되고 대본을 연구할 시간도 충분히 보장되는 영화를 선호하는 톱스타들이 많은 수밖에 없다. 수입을 중시하는 소속사에선 배우의 드라마 출연을 선호하고 배우들은 반대로 영화 출연을 더 반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곤 한다.
사전제작드라마 KBS '태양의 후예'가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 KBS
그런데 ‘태양의 후예’가 이런 흐름을 또 한 번 바꿔 버렸다. ‘태양의 후예’는 사전제작제를 통해 이미 100% 촬영이 끝난 상태다. 송중기는 요즘 수요일과 목요일이면 시청자가 된 기분으로 TV로 여유롭게 자신의 드라마를 시청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드라마에선 불가능한 그림이다. 쪽대본까지 날아올 경우 사실상 생방송 수준의 촬영이 진행되는 드라마의 경우 본방이 방송되는 상황에서도 드라마를 볼 틈이 없다. 빨리 다음 회를 촬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태양의 후예’가 최초의 사전제작 드라마는 아니다. 다만 기존의 사전제작 드라마는 대부분 흥행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 업계에선 사전제작제가 우리 시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분석을 내놓는 방송 관계자들도 많았다.
‘태양의 후예’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드라마 업계는 발 빠르게 사전제작 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 여러 편의 기대작들이 대기 중이다. 김우빈 수지 주연의 ‘함부로 애틋하게’, 박서준 박형식 고아라 주연의 ‘화랑:더 비기닝’, 이준기 아이유 주연의 ‘보보경심:려’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영애의 복귀작인 ‘사임당 the Herstory’ 역시 사전 제작 드라마다.
배우 입장에서 ‘태양의 후예’와 같은 사전제작 드라마는 촬영 여건이 영화와 유사해 훨씬 좋은 환경이 보장된다. 시간에 쫓겨 촬영을 하지 않아도 되며 미리 대본이 나와 있으므로 대본을 보다 깊이 있게 분석하고 연구할 수 있다.
게다가 수입은 더욱 폭증할 수 있다. 드라마가 아무리 대박이 나서 CF 계약이 몰려 들어와도 드라마가 종영될 때까진 CF 출연이 불가능했다. 드라마 촬영할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CF 촬영 스케줄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회를 거듭하며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CF 제안도 늘어날 것이며 이를 충분히 소화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군 입대를 고려중인 남자 배우들에게 사전 제작 드라마는 최고의 카드다. 요즘 연예계에는 ‘현빈 효과’라는 말이 있다. 군 입대를 앞두고 드라마 ‘시트릿 가든’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현빈은 군 입대 직전까지 엄청난 CF를 촬영했다. 이로 인해 현빈은 군 복무 기간 동안 CF를 통해 시청자를 꾸준히 만날 수 있었고 그만큼 군 복무 공백도 줄어들었다.
물론 공백기 없이 꾸준히 시청자들과 만난다는 장점 이면엔 엄청난 CF 출연료라는 더 큰 장점도 숨겨져 있다. 그래서 군 입대 앞둔 마지막 작품을 선정하는 데 고민을 거듭하는 연예인들이 많다.
대박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드라마를 선택했지만 시청자의 반응이 그리 좋지 않다면 군 입대 직전까지 바쁘게 촬영에 임하느라 휴식 기간만 줄어들 뿐 ‘현빈 효과’를 누리는 게 힘들어 진다.
반면 사전 제작 드라마의 경우 확실한 보험이 될 수 있다. 미리 촬영이 끝나기 때문에 군 입대를 앞두고 휴식기를 가질 수 있으며 군에 입대한 뒤에 방영이 되면 군 공백도 크게 줄 일 수 있다.
방송 관계자들은 당장 모든 드라마가 사전 제작이 될 순 없겠지만 미니시리즈 시장을 중심으로 사전 제작 드라마가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사전제작 드라마가 주연급 배우 캐스팅을 원활하게 할 것이라는 점 등 장점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너무 모험적이라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가 이런 우려를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이처럼 시청자들이 ‘태양의 후예’라는 콘텐츠에 빠져 들어 있는 동안 드라마 업계는 주판알 튕기기에 바쁘다. 사전 제작 드라마의 경쟁력이 충분히 입증되면서 이제 새로 기획하는 드라마들의 첫 번째 고민 역시 사전 제작 여부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영화계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톱스타급 배우들의 스크린을 떠나 브라운관으로 활동 영역을 옮기는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전제작드라마 KBS '태양의 후예'가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 KB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