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를 선언했던 문대성 의원이 김무성 대표의 출마 권유를 받아들였고, 김태호 최고위원을 향한 공개적인 '험지 출마' 요구가 제기됐다. 그러나 정작 장기판의 알을 이리저리 움직이듯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중진들은 제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을 향한 험지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불출마를 선언했던 문대성 의원이 김무성 대표의 출마 권유를 받아들였고, 26일에는 김태호 최고위원을 향한 공개적인 '험지 출마' 요구가 제기됐다. 그러나 정작 장기판의 알을 이리저리 움직이듯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중진들은 제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있다.
김 최고위원의 '서울 출마요구'는 그간 물밑에서 거론됐으나 이날 공개적으로 터져나왔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SBS 라디오에 나와 "김 최고위원이 무슨 이유 때문에 불출마 선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에 꿈이 있다면 당이 어려울 때 어려운 곳에서 싸워줘야 한다"며 "김 최고위원에게 몇몇 분들이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서울, 수도권의 어려운 곳에 나가 싸워주는 게 어떤지 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등은 전날 열린 최고위원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 김 최고위원에게 불출마 선언을 철회하고 서울 험지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지역으로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인 마포을과 강남의 분구 예정지 등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마포을에는 김성동 전 의원, 황인자 의원, 최근 입당한 최진녕 변호사 등이 예비후보로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이장우 대변인도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태호 최고위원이 정청래 더민주 의원을 왜 못 이기겠느냐"며 김 최고위원의 출마를 압박했다. 이 대변인은 "'김 최고위원이 20대 총선에서 수도권 험지에 나서달라'는 최고위원들의 전방위적인 요구가 있었다"며 "지금 당이 어렵고 수도권 선거가 여러가지로 어려운 만큼 나서주는 것이 정치하는 사람의 도리라는 의견 등이 나왔다"며 재차 서울 험지 출마 요구했다.
당 지도부의 압박에 김 최고위원은 "다시 출마하는 게 당에 도움되는 일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에서 서울 험지 출마 압박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성찰과 배움의 시간을 갖겠다며 불출마 선언을 했던 것은 국민과의 약속인데 그걸 저버릴 만한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김 최고위원의 '서울 험지'를 공식 제기한 6선 이인제 최고위원은 자신에게는 험지 출마를 요구한 사람이 없다며 지역구인 충남 논산·계룡·금산을 고수하고 있다. 이 최고위원은 SBS 라디오에서 "제 지역구가 사실 굉장히 민감하고 어려운 곳"이라며 "저는 제 지역구 주민들과의 약속도 있고 여러가지 때문에 출마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저에게 험지 출마 얘기를 한 사람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중진 의원들 역시 당을 위해 지역구를 옮겨 험지에 출마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5선 중진인 이재오 최고위원은 지난해 12월 "기존의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면 떠돌이가 된다"면서도 "새로 정치하겠다는 사람들은 어차피 정치를 처음하는거니까 지역구가 없다. 그러면 호남 같은 불모지에 승부를 걸어야 국민들이 볼 때 신선하다"고 '호남차출론'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현역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와 약속이 있다"며 "설사 내가 다른 지역에 가서 당선된다 하더라도 자기 지역 주민들과의 약속과 공약이 있고 계속해서 뽑아줬는데 그 지역을 홀라당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것은 정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최고위원의 발언은 당시에는 정치 신인을 겨냥한 것이었겠지만, 지역구에서 터를 닦고 자리를 잡아가는 초재선 의원들에게까지 기존 지역구를 떠나 험지로 향하라는 명령이 돼버린 것이다.
앞서 같은 당 초선인 문대성 의원(부산 사하갑)은 "지난 4년 동안 목도한 현실정치는 거짓과 비겁함, 개인 영달만 난무하는 곳이었다"며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한 달만에 번복해 논란이 일었다. 문 의원의 인천 남동구갑 출마를 권유한 김무성 대표도 본인의 험지 출마에 대해서는 일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서울 지역에 정통한 한 의원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험지 출마를 하려면 일찍 했어야지 지금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고위원들은 당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기 때문에 최고위원의 입장에서 볼 때 험지 출마가 판단되면 얘기는 할 수 있다"면서도 "모든 국회의원이 경선 체제에 돌입해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지목해 이쪽 저쪽으로 가라고 강요하는 시점은 지났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당의 분열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마포을에는 새누리당에서 영입한 최진녕 변호사가 이미 가 있다"며 "새로운 인물이 가 있는데 김태호 최고위원에게 가라고 하면 중복되는데다, 당내 갈등을 일으켜서 자칫하면 야당에 유리한 패를 만들어주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돌 던지는 사람은 쉽게 던지지만 맞는 사람은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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