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짝사랑’ 배영수, 역시 돈이 아니었다

데일리안 스포츠 = 이경현 객원기자

입력 2014.12.04 10:11  수정 2014.12.04 10:16

15년 뛴 삼성 떠나 한화와 FA 계약 체결

송은범과 비교해도 부족한 금액 ‘돈보다 가치 인정’

배영수는 한화에서 김성근 감독을 만나 제2의 야구인생을 기약하게 됐다. ⓒ 연합뉴스

이제는 ‘푸른 피’가 아닌 낯선 ‘주황 피’가 흐르게 됐다.

원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와 FA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베테랑 우완 배영수(33)의 행선지는 한화 이글스로 결정됐다.

한화 이글스는 3일 "배영수와 3년간 총액 21억 5000만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세부계약 내용은 계약금 5억원, 연봉 5억 5000만원이다. 이로써 배영수는 2000년부터 무려 15년간 뛰어온 삼성을 떠나 한화에서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

배영수의 한화행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삼성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스타 가운데 하나인 배영수가 다른팀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을 불과 한두 달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다. 올해 FA 신청 때도 ‘당연 잔류’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삼성과 배영수는 우선협상기간 중 이견을 보이며 결국 협상 테이블을 접었다. 배영수는 FA시장에 나오면서 "나만, 삼성을 짝사랑했다보다"라는 발언을 남기며 우회적으로 구단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파악한 삼성 팬들은 자발적인 성금 모금을 통해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며 배영수의 잔류를 적극적으로 호소했다. FA 대어급들의 행선지가 속속 결정되는 상황에서도 배영수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으면서 결국 삼성으로 귀환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결국 배영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한화였다. 이적도 이적이지만 한화가 배영수를 잡는데 들인 비용은 21억원. 올해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현역 최다승인 124승을 올린 투수의 몸값으로서는 결코 높은 금액이라고 할 수 없었다.

배영수와 동갑내기인 윤성환은 삼성과 4년 80억에 재계약했다. 먼저 한화와 계약한 송은범도 2년간 7점대 평균자책점에 단 5승에 그치는 형편없는 성적에도 34억을 제시받았다.

최근 FA 시장의 과열화 양상을 감안했을 때, 배영수만 10년 전 물가로 되돌아간 듯한 '착한 가격'에 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배영수가 삼성을 떠나 한화행을 선택한 이유가 돈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올해 FA 중 롯데를 떠나 두산으로 이적한 장원준의 경우, FA 역대 최고액인 84억을 기록했다. 당초 롯데가 제시했다던 88억보다는 적은 액수지만 여전히 장원준 커리어에 비하면 지나치게 높은 몸값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돈 욕심이 지나쳤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배영수도 FA 시장에 나오면서 비슷한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배영수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돈보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팀에서 얻는 기회였다.

배영수는 삼성과의 협상과정에서 액수보다 구단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많은 서운함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배영수는 눈에 보이는 기록 그 이상으로 삼성의 야구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선수다.

특히, 2000년대 중반 팔꿈치 부상의 후유증을 감수하며 팀을 위해 역투를 마다하지 않던 모습은 '배영수의 전성기와 팀 우승을 맞바꿨다'는 말이 나올 만큼 삼성 팬들에게 지금도 강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삼성 입장에서 배영수를 놓친 것은 당장 전력의 공백문제는 크지 않더라도, 삼성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 팬들의 서운함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배영수는 한화에서 김성근 감독을 만나 제2의 야구인생을 기약하게 됐다. 마운드가 그리 두껍지않은 한화에 배영수는 송은범, 이태양, 유창식 등과 3~4선발을 놓고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에서 축적한 풍부한 경험과 우승 DNA를 한화의 젊은 선수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기대할 만하다. 주황색 유니폼을 입게 될 배영수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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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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